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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치·경제·과학 590

조선왕조실록75-76

?조선왕조실록 제75화,제76화 ?(광해 3) 임금 광해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선조 40년 10월, 선조는 갑자기 쓰러져 자리에 누웠다. 죽음을 예감한 선조는 오만 가지를 생각했으나 차마 두 살에 불과한 영창대군으로 어찌해 볼 수는 없었고, 결국 비망기를 내려 장성한 광해에게 전위 또는 섭정을 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갑자기 선조가 몸져누워 위와 같은 뜻을 밝히자 급해진 것은 영창대군에 올인한 소북파의 유영경과 인목왕후였다. 인목왕후는 현실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선조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으나 유영경은 여러 이유를 들어 선조의 뜻에 반대를 하였다. 반면에 정인홍을 비롯한 대북파는 유영경이 세자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불충을 저질렀다며 유영경을 강하게 공격하였다. 대북과 소북..

조선왕조실록73-74

?조선왕조실록 제73화,제74화 ?(광해) 광해의 恨(1) 광해군은 후궁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첫째는 임해군) 공빈은 아들 둘이 서너 살일 때 세상을 떴고, 왕실에는 달리 적자가 없었다. 광해는 비록 서자이나 형인 임해군과 달리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도량이 넓어 일찍이 왕재로 인정을 받았다. 왜란이 발발하자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는 부랴부랴 광해를 세자로 삼고, 곧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다. "나는 의주로 가 명에 원병을 청할 것이니, 세자는 남아 군무를 담당하라." 광해는 분조를 이끌고 사실상 적지나 다름없는 요소요소를 풍찬노숙하며 내달았습니다. 세자인 광해가 솔선하여 항전을 독려하고 백성을 위무하자 흩어졌던 민심이 다시 모이고 도망쳤던 사대부와 조정 중신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1..

조선왕조실록71-72

?조선왕조실록 제71화,제72화 ?(선조19)명량해전(1) 백의종군의 길을 가던 이순신에게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다.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을 난중일기에 가득 채울 만큼 효자인 이순신. 그는 1597년 4월 19일자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일찍 집을 나서야겠기에 어머니의 빈소 앞에서 울며 하직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어서 죽는 것만 못하다." 그리고 곧 그동안 애써 키운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수군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며칠 뒤 이순신은 선조로부터 3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라는 교서를 받고 곧바로 남해안으로 떠났다.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임명하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합니다. "출병을 독촉해 이런 일을 했으니, 이는 사람이 아니고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엥? 이런 썩을~..

조선왕조실록69-70

?조선왕조실록 제69,제70화 ?(선조17)이순신을 제거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 사기극을 벌인 고니시의 목을 베지 않는 대신, 고니시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지난 원정의 실패는 바닷길과 호남을 장악하지 못한데 있다. 조선 수군을 박살내고 호남을 장악하라. 그리고 조선 백성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신속히 남해안의 성으로 복귀하라.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조선 왕이 강화를 애걸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강화가 되어가던 차에 일본이 다시 침략을 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입니다. 또 다시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조선 수군의 격퇴, 호남 점령이라는 양대 과제를 명 받은 일본군 장수들에게 이순신의 제거는 최우선의 공통 과제였다. 히데요시로부터 마지막 기회..

조선왕조실록67~68

?조선왕조실록 제67화,제68화 ?(선조 15) 전쟁의 참화... 상상초월. 일본군이 한양을 뜬 것은 4월이지만 선조는 환도를 계속 미루다 10월에야 한양으로 돌아왔다. (다시 올라올까 걱정했나?) 전쟁의 참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했다. 전쟁과 굶주림, 역병 등으로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판마다 수없이 널려 있었고, 들개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도했다. 한양 도성 밖에는 도성 안에서 갖다 버린 시체들이 곳곳에 산을 이루었고, 농토는 황폐화되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굶주림이 극에 달한 백성들 사이에는 인육을 먹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다음은 선조 27년 1월, 사헌부가 아뢴 내용입니다. 기근이 극도에 이르러 인육을 먹으면서도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를 않다. 길가에 쓰러져..

조선왕조실록65~66화

?조선왕조실록 제65화, 66화 ?(선조 13) 이순신, 바다를 장악하다! 이순신이 2차 출동에 나선 5월 29일, 이 때에는 전라 우수영 이억기 부대, 원균 부대와 합류해 판옥선만 50척이 넘는데다 거북선이 앞을 이끌었다. 조선 수군은 사천포에서 왜선 12척을 모두 격파하고, 이튿날 당포에서 20척의 왜선을 깨트려버립니다. 거북선을 선봉에 세운 조선 수군은 이어 당항포에서 26척, 율포에서 3척을 격파한 뒤 각 군영으로 복귀하였다. 이 싸움에서 원균은 싸움보다는 왜군의 수급 확보에 혈안이 되었다 한다. (저기도 있다~ 건져 올려~~) 원균은 그렇게 확보한 수급과 함께 장계를 올려 선조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한편, 거듭된 수군의 참패에 경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00명으로 5만의 조선 관군..

조선왕조실록63~64화

?조선왕조실록 제63화, 64화 ?(선조 11) 승전의 시작 왜군 침입이 이순신에게 알려진 것은 왜군 부산상륙 이틀 후인 4월15일이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왜적 함대를 처음 대면하고는 그 규모와 위세에 눌려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을 친 후,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조정에 전라좌수군과 합세하여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는 장계를 올렸다. 원균의 구원 요청에 이순신은 "각자 맡은 지역과 소임이 있으니 함부로 쉽게 군사를 이동시킬 수 없다"며, 지원요청을 거절하여버립니다. 그러나 곧 이은 선조의 명령서의 내용은 "원균이 여러 포구에서 싸울 준비를 마쳤다고 하므로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이 힘을 합쳐 맞선다면 능히 왜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이순신이 출정을 위해 경상우수군의 상..

조선왕조실록61~62화

?조선왕조실록 제61화, 62화 ?(선조 9 ) 북으로 북으로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쳐 온 후, 한양 방어를 도원수 김명원, 유도대장 이양원에게 맡기고, 부원수 신각에게 한강 방어를 맡겼다. 한강 북단에 진을 친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 남단의 일본군이 헤엄쳐 강을 건너는 자세를 잡자, 겁을 집어 먹고 병사들에게 무기를 버리게 하고는 자신은 백성의 옷으로 갈아입고 임진강 방면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이런 겁쟁이,비겁자를 도원수에 앉힌 자가 선조 임금입니다. 부원수 신각은 양주 방면으로 후퇴한 후, 왜군이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약탈을 다닌다는 정보를 듣고는 해유령에 매복해있다가, 약탈하고 돌아가는 왜군 수십 명을 발견하고 이들의 목을 베었는데, 이것이 작지만 개전 이래 조선 육군의 최초 승리이다. 신..

조선왕조실록59~60화

?조선왕조실록 제59화.60화 ?(선조 7) 연전연패 부산이 함락되기까지 입은 왜군 피해는 전사 100여 명, 부상 400여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이 정도의 항전도 그나마 거기까지였습니다. 경상 좌병사와 경상 좌수사는 왜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고, 경상 우수사 원균은 배를 바다 속에 밀어 넣고 도망을 쳤습니다. 왜군은 실제적 전투경험에다 조총으로 무장까지 했고, 정보전에 전술전략까지 완벽했으니, 오합지졸 조선군이 이들을 이길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산에 속속 상륙한 5만의 왜군 선봉대는 세 갈래로 나누어 파죽지세로 북상을 계속했습니다. 한편, 일본의 침략소식은 나흘 뒤인 4월 17일 조정에 전해졌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조는 유성룡, 신립, 이일 등을 주요 자리에 임..

조선왕조실록57~58화

?조선왕조실록 제57화, 58화 ?(선조 5 ) 예고된 침략(2) 조선 통신사의 일본 내 활동과 귀국 후의 활동에 대해 실록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유성룡의 ‘징비록’을 근거로 한 ‘수정실록’에는 김성일이 당당하게 일본의 무례를 꾸짖은 반면, 황윤길은 재물확보에 급급해 비루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김성일이 유성룡과 같은 동인인데다, 전쟁발발에 대해 헛다리를 짚는 걸 보면, 유성룡의 김성일에 대한 후한 평가는 자기 붕당에 대한 자화자찬에 불과한 것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김성일은 유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워낙 세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정세파악을 그르치고 조정에 사실상 허위보고를 하고 마는 크나큰 우를 범한다. 조선에 돌아온 정사 황윤길은 히데요시의 눈빛이 빛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