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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67~68

碧空 2022. 2. 1. 23:59

?조선왕조실록 제67화,제68화

?(선조 15) 전쟁의 참화...
                                   상상초월.

일본군이 한양을 뜬 것은 4월이지만 선조는 환도를 계속 미루다 10월에야 한양으로 돌아왔다.

(다시 올라올까 걱정했나?) 

전쟁의 참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했다.
전쟁과 굶주림, 역병 등으로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판마다 수없이 널려 있었고, 들개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도했다. 

한양 도성 밖에는 도성 안에서 갖다 버린 시체들이 곳곳에 산을 이루었고, 농토는 황폐화되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굶주림이 극에 달한 백성들 사이에는 인육을 먹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다음은 선조 27년 1월, 사헌부가 아뢴 내용입니다. 

기근이 극도에 이르러 인육을 먹으면서도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를 않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굶어 죽은 시체에 온전히 붙어 있는 살점이 없을 정도이며, 심지어는 산 사람을 도살해 내장과 골수까지 먹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정은 백성을 구제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이지 못했고, 군사 역량은 오히려 약화되었다. 

명의 참전 이전에 이미 자력으로 전세를 반전시켰던 조선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의병, 이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조정의 무대책으로 이러한 자발성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 중 일부는 세력을 형성해 약탈을 하는가 하면 더러는 의병의 행세를 하기도 하였는데, 그 와중에 의병장 토정 이지함이 참소를 받아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목이 잘려 나가는 일까지 발생하니 의병 운동이 지속될 수가 없었다. 

또한, 신망 높은 의병장 김덕령 마저 약간의 오해가 있자 자세한 조사도 없이 목을 쳐버리니, 이 후 용력이 있는 자는 모두 숨어 버리고 다시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다음 제68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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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68화

?(선조 16) 파탄난 대 사기극  

진주성 대학살을 벌인 일본군은 부산 인근 왜성으로 모두 들어갔고, 명나라 측은 진주성 대학살을 전혀 문제 삼지 않은 채 강화에 열을 올렸습니다.

(명 군대가 조선에서 벌인 약탈, 강간 등 만행은 왜군 못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진주성 대학살에 대한 보복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나라가 벌이는 강화 협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화 협상의 두 주인공인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는 죽이 잘 맞았고 형세판단도 현실적이었습니다.  

즉, 심유경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계속 싸울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상태로 명나라 정복은커녕 조선 지배도 어렵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황제와 일본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이 두명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명나라 황제의 강화 조건은 히데요시가 항복하고, 즉시 철군하며, 영원히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명나라가 황녀를 일본 왕의 후궁으로 보내고, 조선 4도를 일본이 지배하며, 조선의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이면 강화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강화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고, 양국에 강화를 전제로 한 보고(강화를 위한 사실상의 허위보고)와 조치가 계속 이루어진 상태였으므로, 이제 와서 강화가 되지 않을 경우 심유경과 고니시의 목이 떨어질 판이었다.  

이에 심유경과 고니시는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벌이기로 모의 하였다.  

즉, 고니시가 히데요시의 항복문서를 가짜로 만들어 심유경에게 전달하고, 심유경은 명나라와 조선의 사신을 항복사절인 것처럼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양쪽을 속여 일단 강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1월에 중국을 출발한 명나라 사신이 11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산에 도착할 정도로 나라 간의 연결 고리가 느슨하고, 그럴듯한 통신수단도 없었기에, 이런 사기극의 시도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심유경과 고니시의 위와 같은 사기극은 히데요시의 면전에서 발각되었고, 불같이 화가 난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침략을 결정했으며, 고니시의 목을 베는 대신, 고니시에게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였다.  


?다음 제69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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