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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97-98

碧空 2022. 2. 24. 21:23

?조선왕조실록 제97화,제98화

?(숙종 7)장희빈(속4편)


숙종이 폐비의 뜻을 거두려하지 않자, 86명의 대신, 대간이 폐비 반대 상소를 올렸다.

대노한 숙종은 이들의 상소가 모반대역보다 더하다면서 국청을 설치하고 친국을 시작하였다.

숙종은 이들이 임금을 배반하고 부인을 위해 절의를 세우려한다며 고문을 가하였고, 박태보 등이 모진 고문에도 의연히 대처하자 이들에게 압슬을 가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주었다.

결국 박태보, 오두인이 대표로 고문을 받고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숙종의 이러한 행위는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사실은 모두 숙종의 의도된 과잉행위였다.

(“이래도 반대할래?”)

더 이상 반대가 없자 드디어 숙종은 1689년(숙종 15년) 인현왕후를 폐서인하여 친정으로 쫒아내고 장희빈을 새 중전으로 책봉하였다.

한 나라의 국모가 특별한 잘못도 없이(희빈을 투기했다는 죄목) 폐서인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너무나도 쉽게 일어난 것이다.

곧이어 장희빈의 친정은 3대가 의정에 추증되어 부는 영의정, 조부는 우의정, 증조부는 좌의정의 직함을 받았고, 이듬해 원자는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장희빈과 그 가문의 영광이 정점에 오른 것이다.

얻을 것을 모두 얻은 숙종은 이제 남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리라 맘먹고, 송시열의 처분을 신하들에게 맡겼다.

더 이상 왈가불가할 일이 없었다. 남인들은 “송시열의 죄상이 흉역하나 나이가 80이 넘었으니 국문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했고, 숙종은 “대신들의 말이 이와 같으니 사사하되 금부도사가 만나는 곳에서 즉시 죽게 하라”라는 명을 내렸다.

제주에 안치되어 있던 송시열은 어명에 의해 바다를 건너 상경하던 중 정읍에 이르러 금부도사를 만나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이렇게 조선 후기의 거목이 특별한 죄목 없이 스러져 간 것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이 사람은 사림이 ‘송시열의 조선’이라 할 정도로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이었다.

조광조와 더불어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는 우리나라 학자 중 ‘자(子)’자를 붙인 유일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집인 일명 “송자대전(宋子大全)”

을 남기기도 했다.

송시열은 죽어서도 서인,

특히 노론의 구심점이 되었다.

사관의 인물평은 송시열과의 관계를 최우선의 잣대로 삼았다.

(“김 아무개는 평생을 송시열의 뜻에 따른 사람으로서~~~”)

숙종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거목 송시열마저 한 방에 보내버리게 할 정도로 숙종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한 장희빈의 비기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전하는 문헌은 안타깝게도 없다.

?다음 제98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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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98화

?(숙종 8)장희빈(속5편)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했으나 집권세력다운 면모를 보일 수가 없었다.

두 번의 환국을 통해 언제든지 또 다른 환국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인은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른 중전의 오라비 장희재와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임금의 뜻에 순종하는 등 복지부동하였다.

그런데 기사환국이 있은지 4년이 흐른 숙종 19년, 남인을 긴장시키는 일이 있었으니, 숙종이 새로이 궁인 최씨를 숙원으로 삼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실록에는 별 기록이 없으나, 야사에는 언제나 폐비에게 의리를 다하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즈음부터 숙원 최씨를 총애하기 시작했고, 중전인 장희빈의 경계심이 커졌으며, 남인의 긴장감도 고조되기 시작했다.

(언제 환국이 있을지 모른다!)

한편, 기사환국으로 물러난 서인 진영에서는 일군의 무리가 비밀 자금을 모우고 궐내와 연결해 궁중의 소식을 수집하는 등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이 남인측에 포착되었고, 남인 최고 실세 우의정 민암은 그들 중 “함이완”이란 자를 협박해 역모를 고변하게 하였다.

함이완의 고변에 따라 관련된 서인들을 잡아다 고문을 하던 중, 이번엔 유학, 김인 등이 “장희재가 김해성을 매수해 최숙원을 독살하려 했다”라는 고변을 하였다.

내용상 정반대되는 고변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니, 조정 안팎은 초긴장 상태가 된 채로 숙종이 있는 대전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또 다시 뒤집기를 할 것인가!)

이러한 때에, 고심하던 숙종이

드디어 비망기를 내렸습니다.

-우의정 민암(남인)이 함이완과

혼자 만나 수작한 것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증좌도 없이 임금을 우롱하고 진신을 함부로 죽이는 정상이 매우 통탄스럽다.

-국청에 참여한 대신은 모두 삭탈관직하여 문외 출송하고, 민암과 금부 당상은 절도에 안치하라.

숙종은 집권 남인 세력의 고변을 무고로 단정하고 영의정 권대운 이하 남인들을 모조리 쫒아내고 즉시 영의정, 훈련대장, 병조판서 그리고 승지와 삼사 관원들을 서인들로 채워버렸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일어난 환국이었다.

이와 같이 숙종이 1694년(숙종 20년) 남인에서 서인으로 순식간의 물갈이를 해 버린 일련의 사건을 갑술환국이라 한다.

?다음 제99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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