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자 !!

참되고 바르게

역사·정치·경제·과학

조선왕조실록99-100

碧空 2022. 2. 24. 21:25

?조선왕조실록 제99화,제100화

?(숙종 9)장희빈(속6편)

기사환국으로 남인으로의 권력 교체와 장희빈으로의 중전 교체가 이루어졌듯이, 갑술환국으로 서인으로의 권력 교체와 인현왕후로의 중전 교체가 이루어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숙종은 전 회에서 본 것과 같이 단칼에 권력 교체를 해버린 후 곧 “예로부터 임금은 참작하고 선처하여 용서하는 도리를 잊지 않았다.

이제 은혜가 아주 없을 수 없으니 폐비를 별궁으로 옮겨 수직하고 늠료(봉급)도 주도록 하라”라는 명을 내렸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별궁으로 옮기는 날 직접 편지를 썼다.

- 때로 꿈에 만나면 그대가 내 옷을 잡고 비 오듯 눈물을 흘리니...

이제 별궁으로 옮기면 어찌 다시 만날 일이 없겠는가!

이에 인현왕후는 다음과 같이 답장하며 숙종이 보내 온 의대를 사양하였다.

- 천만 뜻밖의 옥찰이 내려오니 감격에 눈물만 흘릴 뿐 무슨 말씀을 하리이까!

의대를 받네 안 받네를 두고 몇 번의 연애편지를 더 주고받은 후 인현왕후는 궁궐로 다시 들어왔고,

숙종은 자신의 경솔을 용서하라며 버선발로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중전 장희빈을 희빈으로 강등시켜 별궁으로 옮기게 하였다.

장희빈이 왕비가 된 지 5년 만의 일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35세였다. 이어서 인현왕후를 중궁전의 주인으로 삼은 것은 물론입니다.

한편 숙원 최씨는 이 일로 숙종과 인현왕후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되었고, 숙빈의 직첩을 받은 뒤 급기야 왕자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이 왕자가 훗날 영조가 됩니다)

졸지에 중전에서 밀려난 장희빈의 충격과 낙담은 매우 컸다.

그러나 과연 장희빈은 장희빈...

장희빈은 제주에 유배된 오빠 장희재, 그리고 그의 첩이었던 숙정과 일부 남인을 동원해 중궁전을 탈환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더 바뀌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장희빈의 뜻대로 일은 이루어치지 않았고, 그로부터 7년 후 오히려 비극의 종말이 다가왔다.

1701년(숙종 27) 8월 14일 인현왕후가 승하하였는데, 그 직후 장희빈이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설치하고 왕비가 죽기를 기도했던 일 등이 모두 발각된 것이다.

안 그래도 죽은 인현왕후에게 부채의식이 있던 숙종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대노해, 장희재를 참형에 처하고, 장희빈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 남구만 등 소론을 몰락시켰으며, 드디어 장희빈에게는 자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대신들은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를 생각해 사사만은 면하게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숙종은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장희빈은 내전을 질투해 모해했다는 죄목으로 42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사사되고 말았다.(묘소는 서오능)

장희빈의 인생 역정은 궁중 여인으로는 우리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다 할 수 있다.

장희빈으로 인한 개벽할 역사적 결과는 지금까지 본 것처럼 비교적 명쾌하게 드러나 있지만,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연유와 경위로 하늘과 땅을 거푸 밟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장희빈의 인생은 영원히 드라마의 극적인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다음 제100화 계속~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제100화

?(경종)비운의 왕


경종은 1688년(숙종 14) 10월 28일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듬해 그는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흔히 노론시대의 소론 왕으로 일컬어지는 경종은 1720년 왕위에 올라 재위 4년만인 1724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에 묻혔습니다.

경종이 죽자 그의 이복동생 영조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경종은 비운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종은 폐비 장희빈의 소생이라는 점과 정치적으로 남인에 속한다는 점으로 인해 송시열 등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서인 세력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숙종의 강력한 의지로 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그 결과 송시열은 사사(賜死)되고 서인 세력은 실각했습니다.

그러나 숙빈 최씨가 숙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이복동생 연잉군(延礽君)을 낳자 경종의 비운은 시작되었습니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경종 또한 부왕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면서 숙빈 최씨는 노론, 경종은 소론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희빈 장씨가 폐출되어 사사되고, 숙종으로 부터도 견제와 미움을 받아 경종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경종은 세제(世弟) 연잉군(영조)이 보낸 게장과 감을 먹고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그리고 연잉군이 왕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경종독살설이 나온 배경입니다.

소론과 치열한 정쟁을 벌이던 노론이 연잉군과 결탁하여 경종을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경종독살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음 제101화 계속~

'역사·정치·경제·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실록 103-104  (0) 2022.02.24
조선왕조실록101-102  (0) 2022.02.24
조선왕조실록 97-98  (0) 2022.02.24
조선왕조실록 95-96  (0) 2022.02.24
조선왕조실록93-94  (0) 202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