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제29화, 30화
?(단종, 세조 7)사육신(死六臣)
지난 회에서 본 바와 같이,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 시도는 한명회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성삼문 등은 김질의 고변으로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댓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성삼문 등을 우대했던 세조는 격분 하여 성삼문 등을 더욱 혹독하게 고문하였으나, 성삼문 등은 끝내 그 기개를 꺾지 않았다고 합니다. 야사에서 전하는 장면을 조금만 소개합니다.
※성삼문은 세조를 “나으리”라 칭하고, 나라를 도둑질했다면서 세조를 꾸짖었고, 격분한 세조가 “그러면서 왜 나의 녹을 먹었느냐”
라고 하자,
“나으리가 준 녹은 창고에 손도 안 대고 쌓아놓았다”
라고 답했으며, 사실이 그러했다.
성삼문은 세조가 나으리란 말을 거두라며 형리로 하여금 시뻘건 인두로 몸을 마구 지지게 하자
"나으리의 고문은 참으로 가혹하오"
라는 말을 남겼다.
- 박팽년은 세조가
“너는 내게 신(臣)이라 칭하며 장계를 올렸던 것을 잊었느냐”
라고 하는 말에 대해,
“나는 신(臣)이라 칭한 적이 없다”
라고 하여, 확인해 보니
“신(臣)”이 아니라 “거(巨)”
라 되어 있었다.
- 성삼문 등은 국문 담당 신숙주에게
“세종께서 어린 상왕을 안고 우리에게 이 아이를 잘 보살펴달라는 당부를 한 것을 잊었느냐”
라면서 오히려 신숙주를 문책하였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를 우리는 사육신이라 부르는데(남효은이 명명한 것임), 이들은 집에서 자결하거나 고문으로 죽거나 혹은 능지처사되었고, 모두 3일간 효수되었으며, 그 가문은 사실상 멸문의 화를 입었습니다.
한편 고발자인 정창손, 김질은 세조의 총애를 받아 영의정, 좌의정까지 올랐습니다.
위 사람들이 이즈음 지었다는 시가 많이 전래되는데, 그 중 성삼문이 형장에 끌려가며 읊었다는 시가 가장 가슴을 울립니다.
<둥둥둥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고
뒤돌아보니 해는 벌써 저물고 있구나
황천길엔 주막도 하나 없을텐데
오늘 밤에 누구 집에서 잘꼬>
세조는 이어서 국왕살해기도 사건의 책임을 물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영월로 유배를 보내버렸으며, 자신의 친동생인 금성대군과 단종의 장인을 역모를 이유로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단종은 부인과도 헤어진 채 홀로 영월로 끌려갔다가 그 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산군은 금성대군과 장인 송현수의 죽음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기록입니다.
?다음 제30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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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30화
?(단종, 세조 8)한 마리 원통한 새
단종은 그 유명한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곧 홍수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영월 객사로 나와 살다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으나 차마 전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자, 단종은 스스로 목을 메고는 줄을 창 밖으로 빼내 당기게 하여 자살을 하였답니다.
이 외에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많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단종의 죽음 경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그만큼 단종이 어이 없게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때 단종의 나이 열일곱, 즉위한 지 5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임금의 아들로 태어나 누구보다 영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권력 추구의 희생양이 되어 얼마 되지도 않는 생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다 이렇게 쓸쓸이 죽게 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단종의 시신은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고을 향리인 호장 엄홍도가 거두어 장사를 지냈고, 중종조에 이르러서야 단종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무덤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들이 밝혀졌으며, 단종이란 묘호를 받고 능으로 단장된 것은 숙종때의 일입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부모와 남편을 잃고 폐서인이 된 단종의 부인 송씨는 동대문 밖에 조그만 초가를 짓고 살았는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여든 두 살까지 장수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단종의 이러한 죽음에 가장 앞장 선 종친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내 준 양녕대군입니다.
양녕대군은 종실의 제일 큰 어른으로서 수양의 쿠데타를 막아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었지만, 스스로 수양을 지지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동생인 세종의 손자인 단종을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 지원자가 됩니다.
태종이 뿌린 살육의 업보가 여기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다음은 단종이 영월객사에서 지내며 지은 시라고 하는데, 참으로 심금을 울립니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에서 쫒겨나와
외로운 몸 그림자 푸른 산 헤매네
밤마다 자려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구나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어스름 달
비추고
봄 골짜기엔 피 토한 듯 떨어진 꽃이
붉어라
하늘은 귀먹어서 이 하소연 못 듣는데
어찌하여 서러운 이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가>
?다음 (특) 정축지변 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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