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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33~34화

碧空 2022. 2. 1. 23:08

?조선왕조실록 제33화, 34화

?(예종, 성종 3) 예종의 죽음,

 *성종의 등극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세자가 되었고, 5년여의 세자 생활을 거친 후 등극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한명회 등 공신들이 정사를 농단하는 공신의 시대였는데, 온건한 성품의 예종은 등극하자 의외로 강하게 공신들을 압박하였습니다.

예종은 즉위 후 “권세가의 집에 드나드는 자가 있으면 공신을 불문하고 칼을 씌워 잡아와라”, “탐오 불법이 있다면 공신, 당상관을 가리지 말고 구금하고, 고문을 해서라도 진상을 밝혀라”는 명을 내리는 등 공신들을 장악하는 한편,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아울러 몇 년 안에 기어코 부왕인 세조를 능가하는 강력한 군주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예종은 실제 그럴만한 재주와 배짱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종의 이러한 꿈은 채 봉우리를 피워볼 수도 없었으니, 이는 예종이 그 전부터 앓고 있던 족질이 원인이었습니다. 예종이 앓던 족질은 지금으로 말하면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조선 8대 왕인 예종은 왕성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족질로 급격히 기력을 잃고 졸하니, 재위 1년 2월, 20세의 나이였습니다.

한편, 예종의 이러한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서는, 겨우 족질로 그리 쉽게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 개운치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공신세력에 대해 강경 정책을 펼친 예종에 불안감을 느낀 한명회 등 공신세력과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는 의경세자의 부인이 독살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예종이 죽은 후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3명의 대상자가 있었습니다. 먼저, 죽은 예종의 아들인 원자(제안군)인데 나이가 겨우 4살에 불과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가 남긴 아들 중 첫째인 월산군과 둘째아들 자을산군이었습니다.

자을산군은 후계서열로는 3위이지만 결국 이 아이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이 아이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을산군의 어미가 진즉에 한명회의 4녀를 며느리로 들인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입니다.

또한, 후계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대왕대비(세조의 부인)도 실질적 권세가인 한명회가 새 임금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길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열세 살에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선 8대 임금 성종은 세종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임금다운 임금이었습니다. 성종은 할머니의 수렴청정을 거친 후에도 인수대비의 간섭, 한명회 등 공신들의 득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시간은 나의 편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가다듬기에 힘쓰니, 한명회를 비롯한 공신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건 자연의 이치인지라, 자연스레 성종의 치세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성종 치세에는 이렇다 할 외침이나 역모도 없는 가운데 수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으나, 성종에게도 다른 선대 왕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불행이 닥쳐왔으니, 이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폐비윤씨, 그리고 연산군으로 이어지는 잔혹사였습니다.

?다음 제3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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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34화

?(예종, 성종4)피 바람 광풍의

   *서곡, 폐비 윤씨

성종은 조선시대 전기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할 정도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12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30명의 자식을 둔 것을 보면 꽤나 여자를 좋아 했던 거 같습니다. 폐비 윤씨는 후궁으로 입궐하여 출중한 미모로 성종의 마음을 샀는데 성종의 어린 부인 한씨가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되자 마침내 왕비에 오릅니다.



폐비 윤씨는 왕비에 오르기 전 숙의 시절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후에 조선 최대의 폭군으로 불리는 연산군입니다. 왕비에 오른 후 성종을 보필하며 왕비로써 편안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폐비 윤씨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편 성종이 다른 후궁들에 빠지자 성종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성종은 질투가 많다며 멀리하기 시작했다.

성종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 역시 왕비 윤씨를 무시하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에게 윤씨를 헐뜯기 시작합니다. 엄숙의와 정소용 같은 후궁들이 자신과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에 후궁을 죽이기 위한 독약을 처소에 준비해 두었다가 성종에게 발각되고 성종과 다투다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이 일어나 성종의 주도하에 어전회의에서 왕비 윤씨를 폐비시키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폐비 되어 궁궐에서 쫓겨난 서인의 신분으로 어머니 신씨와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반성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폐비 윤씨를 측은히 여긴 성종이 동정을 살펴보기 위해 보낸 내시가 후궁 정소용 등에 매수되어 윤씨가 반성은 하지 않고 호화롭게 생활하고 나라를 원망하며 살고 있다고 거짓보고 하자 이에 화가 난 성종은 한명회등 원로공신 등이 참여한 어전회의에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명합니다.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며 소매 끝에 달린 한삼을 뜯어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서 어머니 신씨에게 나중에 왕에 오를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달라 말했습니다. 성종이 후일을 염려한 듯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아 죽었다는 것을 입 밖에 내면 모두 처벌하겠다고 공언 하였으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 이 피 묻은 적삼이 연산군의 피 바람을 만들어 내는 아주 결정적인 역사적 물건이 됩니다.

윤씨 폐비에 동의 했던 어전회의 참석자는 연산군 시절 모조리 숙청 되었습니다.

성종임금 시절 재상인 허침 형제는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한 어전회의 참석을 받고 궁궐로 향하는 도중 누이 집에 들렀는데 누이가 말하기를 '만약 어느 양반집 주인이 종들과 상의하여 부인을 내 쫓았는데, 훗날 그의 아들이 주인이 된다면 그의 종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말을 듣고 궁궐로 가다가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낙상을 입고 이를 핑계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숙청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다음 제35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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