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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왈조실록 31~32화

碧空 2022. 2. 1. 23:06

?조선왕조실록 제31화, 32화

?(예종, 성종 1) 세조의 죽음,

 *예종의 등극(1)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거머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참 많이도 죽였고, 그 살육의 행진은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조의 이러한 무력질주에 대부분의 계책을 낸 사람은 한명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을 통해 무력으로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후대의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기본 방정식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방식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 공신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데다 한명회의 전략 구사 등 개인기가 장자방 못지않으므로 이들을 함부로 거세하려다가는 세조의 처지가 오히려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이 살맛나는 공신의 세상이었습니다.
이 당시 홍윤성 등 공신들의 전횡과 횡포가 극에 달해 백성의 원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으나, 세조는 대부분 이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조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습니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나이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여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제32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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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32화

?(예종, 성종 2) 세조의 죽음,

  *예종의 등극(2)

한명회는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1녀를 당시 한명회와 더불어 세조의 최고 측근인 신숙주의 장남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최고의 정난공신이 사돈으로 뭉친 것이지요

한명회는 이어서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리고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세자가 된 지 2년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아들을 제치고 세자가 되는데, 이는 해양대군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남편인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중전이 되어 보지 못한 채 대궐에서 밀려 난 의경세자의 부인(나중에 인수대비)은 세자가 된 시동생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간파하고, 시동생인 해양대군이 죽게 되면 그 후임으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울 요량으로(아니면 시동생을 죽여서라도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조에게 빌다시피 하여 한명회의 4녀를 자신의 둘째 아들 자산군의 며느리로 맞아들였고, 결국 소원대로 자을산군은 예종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정리하면, 한명회는 1녀를 신숙주에게,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4녀를 세조의 첫째 아들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고, 3녀는 남편인 해양대군이 왕(예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으며, 4녀는 남편인 자을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왕(성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된 것입니다.

참고로, 한명회는 말년에 한강가에 정자를 멋들어지게 지어 놓고 유유자적하였는데, 그 정자의 이름이 '압구정'이었고, 여기에서 오늘날의 압구정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칠삭둥이 한명회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것이었고, 죽기까지 영화를 누렸지만, 계유정난 이후 곧 동생이 죽고, 왕가에 시집간 딸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죽었으며, 본인도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니, 역사가 공평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아무튼 세조 이후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세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병에 몹시도 시달리다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해양대군(예종)이 즉위한 다음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뜨니 재위 13년 3개월, 향년 52세에 불과하였습니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상당한 치적을 쌓기도 했으나, 그 자식들이 모두 20세에 죽었고, 한명회의 여식이기도 한 며느리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요절하였으니, 세조와 한명회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복수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다음 제3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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