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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성종 8

碧空 2013. 10. 25. 22:32

성종 198권, 17년(1486 병오 / 명 성화(成化) 22년) 12월 11일(임오) 3번째기사
대사헌 박건 등이 정업원의 중수 등에 관해 상소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박건(朴楗)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신 등이 듣건대,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감통(感通)함이 있으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응한다고 하였는데, 근자에 겨울에 천둥하는 변(變)이 있자 전하께서 즉시 전지(傳旨)를 내려, 형옥(刑獄)이 오래 유체(留滯)된 것은 그 억울한 것을 다스리고 사송(詞訟)17789) 엄류(淹留)17790) 된 것은 그 곡직(曲直)을 분변하였으니, 재앙을 당하여 수성(修省)17791) 하는 일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계동(季冬)17792) 을 당해서 기온이 따뜻하여 얼음이 없으니, 어찌 전하께서 하늘에 응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어서이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지금 당면한 일의 잘못된 것을 조열(條列)하여 진술하겠습니다.
정업원(淨業院)은 궁장(宮墻) 곁에 있는데 범패(梵唄) 소리가 궁중[禁中]에까지 들리니 진실로 적당한 곳이 아닙니다. 만약 기울거나 무너져서 살 수 없다면 이로 인해 헐어 없애는 것이 가한데, 이제 중수(重修)해서 사치하고 크게 하여 단청이 비치어 사람의 이목을 빛나게 하였으니 그 비용이 무려 만만(萬萬)에 이르고, 경찬(慶讚)의 모임17793) 에 부녀가 가마를 탄 자가 길이 연했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자가 문과 골목을 메웠으며, 채백(彩帛)과 미곡으로써 다투어 시주를 바치니, 지난해 기근(飢饉)이 든 나머지에 한정이 있는 재물을 쓸데없는 곳에 주는 것이 옳겠습니까?
요즈음 정희 왕후(貞熹王后)인수 대비(仁粹大妃)·인혜 대비(仁惠大妃)의 족친(族親)에게 육촌(六寸)까지 한하여 각각 1자급(資級)을 가하였으니 이는 전하의 효성에서 나온 것이나, 작록(爵祿)은 조정의 공기(公器)인데 공기를 친한 데에 사사로이 하여 많음이 5백에 이르니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
대저 환관(宦官)은 궁문(宮門)을 지키고 소제(掃除)를 맡는 것뿐이므로 그 벼슬이 본래 한품(限品)이 있는 것인데 함부로 계급을 더하여 혹은 1품의 높은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관작(官爵)은 어진 선비를 대우하는 것인데 갑자기 환시(宦侍)에게 더하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종친(宗親)은 모두 한품(限品)이 있어서, 대군(大君)의 후예는 여러 군(君)과 차등이 있고 승습(承襲)17794) 한 아들은 중자(衆子)와 분별이 있는 것은 그 높고 낮음을 밝혀서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인데, 조금 공로가 있으면 갑자기 극품(極品)에 올리기도 하고 혹은 공이 없어도 계급을 올려서 왕자와 더불어 이름과 지위가 서로 맞먹으니, 이는 더욱 불가한 것입니다.
의사(醫士)와 역원(譯員)의 직책은 병을 치료하고 통역(通譯)하는 것뿐인데, 이제 하나의 공로로써 문득 당상관에 올리니, 관직의 외람됨이 여기에서 지극합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사방을 다스림에 오직 정공(正供)17795) 으로써 한다.’고 하였는데, 별진헌(別進獻)의 칙명(勅命)은 실로 소수(小竪) 정동(鄭同)이 천자(天子)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굳게 하기 위한 계책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지금은 한씨(韓氏)17796) 가 이미 죽었는데도 해마다 한씨의 친족이 보내는 별헌(別獻)이라고 가탁(假託)하여 정공(正供)은 수십 태(駄)17797) 에 불과한데 별헌은 거의 1백 태에 이르니, 평안도·황해도·동팔참(東八站)17798) 사이에 운반하는 고통으로 사람과 말이 쓰러져 날로 조잔(彫殘)한데, 만약 그대로 따라 항공(恒貢)17799) 으로 하면 우리 백성이 받는 폐단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학교(學校)는 풍화(風化)의 근원이며 인재를 양성하여 장차 훗날 쓰려고 하는 바인데, 요즈음 전강(殿講)의 유생(儒生) 가운데 글귀를 능히 읽지 못하는 자도 많으니, 비록 국가에서 사유(師儒)를 골라 뽑아서 문학(文學)을 숭상하고 존중하였으나 유생의 학업이 이와 같으니 어찌 그 말미암은 자가 없겠습니까? 대저 백사(百司)17800) 는 그 임무를 오래 맡아야 효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선왕조(先王朝)에 윤상(尹祥)·김반(金泮)·김구(金鉤)·김말(金末)·박욱(朴彧)이 서로 잇따라 학관(學官)이 되어 인재를 양육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니, 그 때에 학도들은 학교[黌舍]를 집으로 삼아서 쉬거나 목욕하지 아니한 것이 수십 일씩 되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재가 무리로 나와서 성(盛)하게 명신(名臣)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학도들은 항심(恒心)17801) 이 없이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에 흩어지고 학관도 자주 갈리고 혹은 다른 사무를 겸하기도 하여 그 임무를 오로지하지 아니하니, 어찌 공(功)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과거(科擧)로 취인(取人)17802) 하는 것은 참된 인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세상에서 이르기를, ‘공도(公道)는 오직 과거 한 가지 일뿐이다.’라고 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종조(祖宗朝)에 극위(棘圍)17803) 의 영(令)이 엄하여 거자(擧子)17804) 가 책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살펴서 금하는 것은 한갓 형식뿐이고 유생들이 책을 끼고 들어가는 것이 많고 젖내 나는 아이가 친구의 글을 빌려서 요행히 과거에 합격하는 자도 있으니, 이제 이 풍습을 고치지 아니하면 전조(前朝)17805) 홍분(紅粉)의 비난17806) 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모두 용렬한 자질로써 성(盛)한 때를 만나 외람되게 풍헌(風憲)의 임무에 있으면서 백 번 생각하여 한 번 얻는 어리석은 계책을 본받기를 생각하나 견문(見聞)이 넓지 못하고 지혜와 생각이 얕아서 보답하는 공이 없으니, 높은 위임을 깊이 저버렸습니다. 삼가 세도(世道)에 관한 것과 치체(治體)에 관한 것을 조목으로 진술하며, 엎드려 성상의 재량을 바랍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수릉관(守陵官)과 참봉(參奉)도 모두 벼슬을 올렸는데 유독 입번(入番)한 종친(宗親)은 상(賞)이 없겠는가? 한씨(韓氏) 족친이 북경(北京)에 가는 것은 형세가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정업원(淨業院)을 중수[重創]한 것은 오늘날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0책 198권 5장 A면
【영인본】 11책 167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외교-명(明) / *사상-불교(佛敎) / *과학-천기(天氣)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교통-육운(陸運) / *신분-중인(中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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