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지평(持平) 정석견(鄭錫堅)이 아뢰기를,
“무릇 과장(科場)의 시험날에는 와 사령(使令)을 모두 공궤(公饋)하는데, 시권(試券)을 고사(考査)하는 날에는 공궤가 없기 때문에 각자 물러가서 밥을 먹으므로 출입을 금함이 없으니, 거자(擧子)와 시관(試官)이 서로 통할 듯합니다. 청컨대 파장(罷場)할 때까지 한하여 모두 공궤하여서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국가에서 사유(師儒)로 선택한 사람은 비록 외임(外任)에 하지 아니한 자일지라도 모두 성균관(成均館)에 보임(補任)하여 가르치기를 오로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자에는 혹은 다른 관직에 제수하기도 하고 혹은 외방(外方)에 사절(使節)로 나가서 가르치는 일을 오로지하지 아니하여 나라 일이 허술합니다. 청컨대 다른 관사(官司)에 임명하지 말고 차례로 옮기게 하소서.”
“조종조(祖宗朝)에
윤상(尹祥)·
김반(金泮)·
김구(金鉤)·
김말(金末)이 성균관에 구임(久任)하였다가 올라서 겸사성(兼司成)에 이르렀기 때문에 제자(弟子) 된 자가 그 가르침을 공경히 받아서 인재가 배출(輩出)되었는데, 지금은 관원(館員)이 자주 바뀌어서 가르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청컨대 다시 사유(師儒)를 선택하여 홍문관(弘文館)의 예(例)에 의해서 차례로 옮기도록 하소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