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관(經筵官)이 진강(進講)하니, 영경연(領經筵)
정인지(鄭麟趾)·
한확(韓確), 지경연(知經筵)
이사철(李思哲), 참찬관(參贊官)
박팽년(朴彭年), 시강관(侍講官)
김구(金鉤), 장령(掌令)
유성원(柳誠源), 정언(正言)
이계손(李繼孫)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유성원이 아뢰기를,
“전일에 전지(傳旨)하시기를, ‘환관(宦官)에게 봉군(封君)하는 일을 정지하라고 청하는 것은 다시는 입계(入啓)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전하의 실언(失言)이십니다. 이 말씀이 어찌 대신(大臣)이나 근시(近侍)가 감히 계달한 것이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전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신 등뿐만 아니라 조야(朝野)의 신민(臣民)들이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고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킨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실로 나라를 잃을 말씀입니다. 언로(言路)는 몸의 혈기(血氣)와 같은 것이니, 핏기운이 하루라도 통하지 아니하면 몸이 병들고, 언로(言路)가 하루라도 통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또한 병들 것입니다. 나라가 병들면 멸망이 또한 따르게 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습니까? 만약 이 말씀이 대신이나 근시가 아뢴 것이라면 이는 반드시 간사하기가 심한 것으로서 매우 충성(忠誠)스럽지 못한 말이니, 진실로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홍원용(洪元用)은 수양 대군과는 동서(同壻)간이고, 정창손(鄭昌孫)과는 외사촌 아우입니다. 세종(世宗)께서 상피법(相避法)을 세우심이 매우 엄하셨으니, 수양 대군이 혹시 이 법을 알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정창손은 반드시 이를 알았을 것인데, 틈을 타서 교묘하게 아뢰어 당상관(堂上官)을 제수하였으니, 그 분수 없이 함부로 함이 매우 심합니다. 지금 이미 벼슬을 제수하여 사조(辭朝)하였으나, 세종조(世宗朝) 때에는 벼슬을 이미 제수하였더라도 만약 옳게 된 것이 아니면 추후(追後)에 고친 것이 자못 많았으니, 한 사람으로 예를 들어 말하면 이인손(李仁孫)이 군자 판사(軍資判事)로 임기가 차지 않았는데 지병조(知兵曹)를 제수하였으므로, 법사(法司)에서 고치기를 청하여, 세종께서 그대로 따르셨으니, 이와 비슷한 일이 많았습니다. 선왕께서 법을 세운 것이 이와 같은데, 지금 이미 제수하여 사조(辭朝)하였다고 하여 고치지 않는 것은 심히 옳지 못합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30장 B면
【영인본】 6책 651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궁관(宮官)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