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지시? 이후락 단독 범행? DJ가 본 DJ 납치사건 전말 ⑧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내 옆에 나타나셨다.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내가 아직도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1973년 8월 9일 0시를 갓 넘은 시각. 나, 김대중(DJ)은 현해탄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국 중앙정보부(중정)의 공작선 ‘용금호’에 감금당한 상태였다. 몸은 관(棺) 속 바닥에 까는 칠성판 같은 판자에 송장처럼 묶였다. 입에는 재갈이 물렸고, 두 눈은 붕대로 가려졌다. 손과 발에는 30~40㎏은 됨 직한 돌처럼 무거운 물체가 매달렸다.
1975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희호 여사(왼쪽)와 함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 73년 납치 사건 당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나를 납치한 괴한들은 “솜이불을 덮어야 물속에서 안 떠오른다” “후까”(일본어로 ‘상어’라는 뜻)란 말들을 쑥덕였다. ‘나를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주고 죽여버릴 모양이구나’라는 끔찍한 생각이 스쳤다. 수장(水葬)의 공포에 떨던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죽음의 벼랑에 섰다.
일본 호텔에서 백주 대낮에 피랍
한나절 전만 해도 나는 멀쩡했다. 8일 낮 ‘형님·동생 하는’ 양일동 의원을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에 있었다. 양 의원은 신민당을 탈당한 뒤 유진산 당수를 반대하는 세력을 모아 민주통일당을 창당한 상황이었다. 신병 치료차 일본에 왔고, 나의 친척뻘인 민주통일당 김경인 의원도 동행했다.
1973년 8월 8일 납치 사건이 발생한 일본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의 최근 모습. 사진 그랜드팰리스 호텔 홈페이지
양 의원이 묵은 호텔 22층 2212호실에서 같이 식사한 뒤 오후 1시쯤 방을 나서던 참이었다. 옆방 2210호실에서 검정 양복의 건장한 괴한 네댓 명이 갑자기 뛰쳐나와 나를 덮쳤다. “놓으라고, 이놈들” 하며 반항했지만 막무가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