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별거없네” 이랬던 박정희…DJ 돌풍에 충격, 유신 꺼내다 ⑥
- 카드 발행 일시2023.05.11
1971년 4월 18일 일요일,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나, 김대중은 장충단공원에 있었다. 4·27 7대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유세를 했다. 기호 1번 박정희 공화당 후보의 장기 집권이냐, 기호 2번 김대중 신민당 후보의 반란이냐.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었다.
오후 2시쯤 안국동 신민당사에서 출발해 유세장인 장충단까지 갔는데 수많은 인파가 내 차를 에워싸고 행진했다. 길거리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넘쳐흘렀다.
유세가 시작한 오후 3시, 장충단공원은 물론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방향의 도로와 장충체육관 광장까지 약 6만 평에 청중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한남동에서 유세장으로 넘어가는 남산순환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선 채로 나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7대 대선 유세를 벌였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정권 교체 못하면 박정희 종신 총통제”
연단에 오른 나는 청중을 향해 외쳤다.
“이번에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총통제가 되고 말 것입니다. 4·19는 학생의 혁명이었습니다. 5·16은 군대가 저질렀습니다. 오는 4월 27일은 학생도, 군대도 아니고 전 국민이 협력해 이 나라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손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위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해야 합니다.”
유권자들은 ‘기호 2번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을 열렬히 연호하며 호응했다. 환희와 기대의 도가니였다. 나는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약속했다.
“여기 장충단공원의 백만이 넘는 유례가 없을 대군중이 보인 것을 보고, 서울 시민의 함성을 보고 정권 교체는, 우리의 승리는 결정이 났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550만 서울 시민, 승리는 결정이 났습니다. 7월 1일 청와대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