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亡命). 망명은 정치적 핍박과 박해를 피하려는 쫓기는 자의 고독한 운명이다. 고향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삶이다.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죄책감을 떠안아야 한다. 망명객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체제를 비판하고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망명 투쟁은 험난하고 절박하다.
김대중(DJ)은 졸지에 망명객이 됐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10월 유신 체제’는 반대 세력에 정치적 탄압을 가했다. 이에 맞서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엄혹한 시대를 열었다. 1년 전 대권에 도전해 박정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DJ는 표적의 정중앙에 섰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48세의 정치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본에 체류 중이던 DJ는 망명을 결행했다.
3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7월 1일 서울 중앙청 광장(현 광화문 앞)에서 7대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기록관
박정희와 대결의 대가…기약 없는 망명객 신세
“왜 나는 언제 고국에 돌아간다는 기약도 없이 망명객 신세가 됐을까.” 박정희 정권에 척지게 된 1971~72년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DJ의 머릿속을 스쳤다.
71년의 4·27 대통령 선거와 5·25 국회의원 선거는 ‘정치인 김대중’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했다. 박정희와의 대결에서 비록 패했지만 패기 있는 젊은 지도자라는 강한 여운을 남겼다. 혼신의 힘을 쏟은 총선에서 신민당의 선전을 주도하면서 낡고 늙은 정치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세인의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