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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회고록9

碧空 2023. 6. 12. 15:50

“내겐 처복이 두 번 있었다”…정치인 김대중 만든 두 여인 ⑨

  • 카드 발행 일시2023.06.01

내 삶에는 두 여인의 향기가 서려 있다. 두 여인의 지고한 사랑과 헌신이 정치인 김대중을 만들었다. 이제 내 운명의 연인(戀人)에 관해 이야기하련다.

1959년 8월 어느 날, 나의 첫 여인이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궁핍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 차용애가 아들 둘(홍일·홍업)을 남긴 채 32세 나이로 요절(夭折)했다. 그녀를 본 첫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첫부인 차용애 여사와 장남 김홍일 전 의원(오른쪽), 차남 김홍업 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왼쪽, 17대 의원).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나는 목포공립상업학교(목상)를 졸업하고 해방 직전인 1944년 전남기선㈜이란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연안 화물 운송 사업을 하는 회사인데, 회계 서무를 맡았다. 그해 여름, 사무실 앞에 앉아 길거리를 내다보다 한 여성에게 눈길이 꽂혔다.

하얀 원피스 차림에 양산을 받쳐 든 젊은 여성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얀 피부에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겼다. 우중충한 항구도시 목포에서 그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봤다.

첫눈에 반한 첫 아내 차용애 

첫눈에 반했다. 스무 살의 청춘 김대중은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그녀의 자태를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녀의 신상을 수소문했다. ‘용애’라는 이름을 가진, 목포상고 동기동창 차원식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다 일본 본토에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아버지의 부름으로 얼마 전 귀국했다고 한다.

친구의 여동생이라니 행운이었다. 친구 핑계를 대고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말문을 트고, 극장도 같이 가면서 차츰 가까워졌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고백하고, 장래를 약속했다.

그런데 그녀의 부친이 우리 결혼에 반대했다. 내가 징집돼 일본의 전쟁터에 언제 끌려갈지도 모르고, 심지어 죽어버리면 시집간 딸이 과부로 살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그 당시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젊은이들을 징집해 전선으로 내몰았다. 나는 1924년 1월의 원래 출생 연도를 2년 가까이 늦춘 25년 12월로 바꿨다. 징집을 피하기 위한 우리 부친의 기지였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 징집당할 위험은 상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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