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제103화,제104화
?(영조3)임금이 천민의 자식?
영조가 천민의 자식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아버지는 조선 제19대 왕숙종이지
만, 어머니가 천민, 궁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종이었지요.
그런 사람을 어머니로 둔 이가 어떻게 임금이 되었냐고요?
이게 좀 복잡합니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았습니다.
(기사환국)
그런데 숙종의 희빈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그녀의 지지 세력인 남인이 왕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거든요.
이런 사연 속에 숙종은 내심 인현왕후의 복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종은 궁궐 뜰을 산책하고 있었어요. 달이 휘영청 뜬 늦은 밤, 한가롭게 뜰을 걷고 있는데, 불 켜진 방 하나에서 토닥토닥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숙종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방문을 여니, 떡을 썰던 궁녀 하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숙종이 물었어요.
“야심한 밤에 웬 떡이냐?”
궁녀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자초지종을 여쭸어요.
“내일이 사가로 쫓겨 나간 인현왕후의 생일날이라 사가에 보낼 떡을 조금 썰고 있나이다.
죽을 죄를 졌사옵니다. 마마!”
사연을 들어 보니, 인현왕후가 시집올 때 함께 따라온 몸종으로, 왕비는 쫓겨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 궁녀는 궁궐에 계속 남아 일을 하고 있었어요. 성이 최씨라 최 무수리라 했지요. 무수리가 뭐냐고요? 궁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여자 종을 '무수리'라고 합니다.
아마 숙종이 인현왕후를 미워하던 시기였다면, 최씨는 치도곤을 당했을 거예요. 그러나 최씨가 왕의 눈에 띄었을 때는 숙종의 마음이 다시 인현왕후에게 기울던 시기였어요.
왕은 갸륵한 마음을 지닌 최씨가 너무 기특했어요.
그날 밤을 최씨와 함께 보냈고 이후 그녀의 몸에 태기가 생겨 떡두꺼비 같은 남자 아이를 낳았어요.
이 아이가 바로 후에 영조가 되었습니다.
어때요? 길게 설명해 놓고 보니, 영조가 천민의 자식임에 틀림없지요.
아무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조는 ‘천민의 자식이 임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공연한 반대 속에 왕위에 올라야 했으며, 재임 기간 내내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 신경을 곤두세워
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연 속에서 발생한 트라우마 때문에 영조는 자신의 뒤를 이을 세자의 몸에도 천민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던지, 어릴 적부터 아들에게 만큼은 혹독하게 대했습니다.
딸들은 애지중지하며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만, 사도세자는 아무리 잘해도 칭찬은 커녕 매번 눈치만 줬으니,
그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지요.
**기사환국(1689)
숙종의 부인 민씨가 왕비로 책봉된 지 여러 해가 되도록 후사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숙종은 후궁인 숙원 장씨를 총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숙종은 이 아들을 자신의 뒤를 이을 원자(元子)로 책봉하고 장씨를 빈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당시 집권 세력이던 서인은 ‘정비 민씨가 아직 나이 젊으므로 그의 몸에서 후사가 나기를 기다려 적자로서 왕위를 계승함이 옳다’ 하여 원자 책봉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인은 숙종의 주장을 지지하였고, 숙종은 서인의 독주를 누르기 위하여 남인을 등용하는 한편, 원자의 이름을 자기 뜻대로 정하고 숙원 장씨를 빈으로 책봉하였습니다.
이때 서인의 대표 지도자 송시열은 상소를 올려 숙종의 처사를 잘못이라고 간하였는데, 하지만 숙종은 오히려 송시열을 제주로 귀양 보냈다가 후에 사약을 내려 죽였으며, 이 과정에서 남인이 득세하여 민비는 궁에서 쫓겨나고 장희빈이 정비가 되었습니다.
이를 기사년에 정치적 국면이 뒤집어졌다 하여 ‘기사환국’이라 합니다.
※갑술환국(1694)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권력을 잡았지만, 스스로 정치력을 발휘하여 집권한 것이 아니라 서인에 대한 숙종의 염증과 혐오 때문에 거저 얻은 것이었습니다.
특히 궁녀였던 장씨를 두고 서인과 숙종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었기 때문에 남인이 집권할 수 있었습니
다.
이런 이유로 남인은 자신들의 위치를 항상 불안하게 여겼으며, 언제든 또다시 실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인은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의 복위 운동을 전개했는데, 남인이 이를 눈치채고 서인 탄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숙종의 심경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었는데, 정비로 삼은 장희빈의 방자한 행동에 염증이 난 것입니다. 게다가 장씨 보다는 무수리 출신의 후궁 최씨(영조의 생모)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황 속에서 숙종은 남인을 내치고 민씨를 지지했던 서인을 조정의 중요 자리에 다시 등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희빈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이 사건을 '갑술환국'이라 하며, 이후 남인의 정치력은 급격히 쇠퇴하였습니다.
***사도세자가 생각하는 아버지 영조***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늘그막에 지은 『한중록』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동궁(사도세자)의 글 읽는 소리는 크고 맑았으며, 글의 뜻을 이해함에도 그릇됨이 없었으니 뵙는 사람마다 동궁의 거룩하심을 일컬어 궁중 밖에서도 좋은 명성이 많이 떠돌았다.
사도세자가 혜경궁 홍씨와 결혼한 것은 10세 때로 이때 당시 세자가 매우 영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시절에 사도세자는 이미 아버지인 영조에게 매우 주눅이 들어 있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한중록』의 한 장면을 더 살펴보면,
10세 된 아기 네가 감히 (아버지와) 마주 앉지도 못하였고 신하들처럼 몸을 굽혀 엎드리고 보셨으니 어찌 그리 지나치게 하셨던가 싶다.
영조의 냉대와 카리스마 넘치는 스파르타식 교육 탓에 열 살밖에 안 된 아들은 아버지만 나타나면 벌벌 떨며 감히 쳐다볼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영조는 학문을 좋아하고 부지런했으며 매사를 균형 있게 처리했지만, 한번 미워한 사람은 끝까지 용서하지 않고 멀리했을 정도로 좋고 나쁨의 기준이 명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성격이 아들을 대할 때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아들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었죠.
삭막한 부자 관계 속에서 세자는 새 옷만 입히려 하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버리는 의대증과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생긴 울화병으로 심신이 날이 갈수록 황폐해졌습니다.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둔 것은 누구일까요?
영조 시절에 나랏일은 주로 서인이 이끌었는데, 사도세자는 자신이 왕이 되면 서인을 모두 없애 버리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얘기는 서인의 귀에도 들어가, 그들은 자파의 미래를 위하여 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저지 작전을 꾸몄어요. 그것이 뭐냐고요? 세자의 잘못된 행동 열 가지를 적어 영조에게 고자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조는 세자가 공부는 도외시하고 맨날 술타령이나 하면서 나쁜 짓만 일삼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세자를 불러 크게 꾸짖었습니다.
이때 사도세자가 적극적으로 변명했다면, 죽음은 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오그라드는 세자였기에, 눈을 부릅뜬 아버지 면전에서 변명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쩔쩔매다가 결국은 뒤주 속에 갇혀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인연의 끈을 맺었지만, 결말은 ‘불행’ 그 자체였
지요.
아들을 죽여 놓고 아버지는 편히 잘 수 있었냐고요? 물론 그렇지 못했어요. 영조 또한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던 것 같아요. 영조는 죽은 아들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으며, 세자의 아들 ‘이산’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했어요.
이산이 누구냐고요?
조선의 학문과 예술을 크게 발전시킨 제22대 임금 정조로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입니다!
?다음 제10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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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104편
?(영조4)
조선왕조 27대 역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영조는 무려 52년의 긴 세월 동안 왕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또한 경종과 영조를 포함한 숙종 3부자는 102년간 조선을 통치해 518년 조선역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 경종의 치세가 4년에 불과하니, 가히 조선의 한 세기(世紀)를 영조와 숙종이 통치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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