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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81-82

碧空 2022. 2. 24. 19:34

?조선왕조실록 제81화,제82화

?(인조 3) 병자호란(1)

정묘년의 치욕을 당한지 얼마되지 않아, 인조는 자기 아버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승하여 명국의 승인까지 받게 되자,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는지 후금에 대한 복수와 배척의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조선이 진정으로 정묘년의 치욕을 갚고자 한다면, 왕실이나 종친, 훈신들 나아가 양반들이 가진 갖가지 특전을 버리고 재정을 확충한 다음 민심을 수습하고, 무기를 장만하는 한편 군대를 모아 훈련을 시키는 등 야무진 각오와 준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조와 중신들은 “소중화”라는 관념과 대의에만 빠져 숨가쁘게 돌아가는 주변 정세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물론이요 실질적인 준비도 전혀 없이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후금은 이즈음 중국 공략을 잠시 멈추고 서쪽과 몽고족 정벌에 나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드디어 홍타이지는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었다.

1636년(인조 14년) 후금의 사신 용골대가 사신으로 와 홍타이지가 황제로 오르는 일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자, 조선은 강력히 반발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소중화”를 외치는 조선이 오랑캐의 황제 등극을 동의할 수는 없었겠지요.

다음은 이 때 인조가 반포한 척화교서의 일부입니다.

- 정묘년의 변을 당해 임시로 기미할 것을 허락했는데 오랑캐들의 요구는 한이 없더니, 요즘은 더욱 창궐하여 감히 참람된 칭호를 가지고 의논한다고 하니, 어찌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 이에 존망의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한 결 같이 결단해 그들을 물리쳤으니, 충의로운 선비는 있는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들은 종군을 자원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조선이 위와 같이 척화의 변을 토하고 있던 그 때, 후금은 조선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라 이름을 청으로 하는 황제국을 세웠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청태종)는 명나라를 본격적으로 치기에 앞서 친명배금을 노골화한 조선을 확실히 복속시켜 배후의 후환을 없애겠다는 전략적 뜻을 분명히 하였다.

기어이 청나라가 대군으로 조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조선 조정은 조금 전까지의 의기는 어디로 갔는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청은 1636년(인조 14년, 병자년) 12월 3일, 3만의 군사만을 보냈던 정묘년과 달리 10만의 정예병을

보내 직접 한양을 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군 도상에 있는 성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으므로 진격 속도가 놀라웠고, 인조 일행은 늘 하던 대로 짐을 싸 강화도로 도망을 가고자 했으나, 이미 청군은 불광동 근처에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조선이었다.

?다음 제82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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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82화

?(인조 4) 병자호란(2)

청군의 급속 남진으로 인해

강화로 가지 못한 인조 일행은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는데, 곧 청군이 쫒아와 눈보라 치는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남한산성 안의 조선 조정은 죽기로 싸워야 한다는 의견과 화친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 가운데 청군과 굴욕적인 물밑 교섭을 이어가고 있었다.

(청나라 진영을 찾은 조선측 대표 박난영의 목이 잘리기도 했다)

남한산성 안의 조선 조정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갈팡질팡 하던 중 청나라 태종이 직접 남한산성까지 내려오게 되니, 조선 조정은 작은 계책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는 중대한 국면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해가 바뀐 1637년 1월 1일, 이 와중에도 조선 조정은 모두 꿇어 앉아 중화 대국 명나라 황제의 만수무강을 위한 망궐례를 올렸고, 이날 청 태종은 청군 진에 도착해 높은 곳에 올라 조선의 망궐례 의식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보라가 몹시도 휘날리던

1637년 1월 17일, 청태종은

드디어 다음과 같은 글을 인조에게 보내왔다.

?️정녕 그대가 살고 싶거든 빨리 성에서 나와 귀순하고, 죽고 싶거든 또한 속히 일전을 벌이도록 하라.

조선 조정은 화친하자는 의견을 펴 온 최명길이 답서를 초했는데, 신하들은 “왕이 성을 나가고도 임금이 보전된 경우는 없습니다.

그 때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며 최명길을 강하게 비난하였습다.

(그럼 어쩌라고!)

결국 왕이 성을 나가는 것만은 면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최명길 초안의 국서가 청군에 보내졌고, 청군에서는 “황제가 이미 이곳에 온 이상 조선 국왕이 성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고, 더불어 척화를 주장한 신하 몇을 묶어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조선 조정이 이 문제로 또 다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던 때에 용골대가 최후통첩을 했다.

?️황제께서 내일 돌아갈 예정이니,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 다시는 사신을 보내지 마라.

추후에 남는 것은 조선의 멸망뿐

이다.

그러면서 용골대는 봉림대군과 비빈 등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어 쑥대밭이 되었으며(살아남은 자들이 거의 없었다),

봉림대군과 인조의 비빈 등을 청태종의 동생 도르곤이 잡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결국 조선 조정은 모두 울며 다음과 같이 인조에게 간하였습니다.

?️성상께서 성에서 나가시면 보존될 확률이 반반이지만, 나가지

않을 시엔 열이면 열 망하고 말 것이옵니다.

저~언하!

삼전도의 굴욕이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제8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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