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서거정(徐居正)이 아뢰기를,
“성균관(成均館) 관원으로서 잘 가르치는 사람이 대개 적습니다. 전에는
김구(金鉤)·
김말(金末)이 모두 성균관의 구임(久任)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훈에 전업(專業)할 수 있어서 매우 인재를 작성하는 효과가 있었지마는, 근간에는 교관(敎官)이 자주 옮기어 전업하지 못합니다.
장계이(張繼弛)·
유진(兪鎭) 같은 사람도 다른 직임에 제수되었으므로 유생들이 실망합니다. 신은 전함(前銜)이 있는 조사(朝士) 중에서 경서에 밝고 행실이 닦아진 사람을 승문원(承文院) 예에 의하여 학관(學官)으로 두어 다른 직임에 서용하지 말고 교훈에 전력하게 하기를 청합니다.”
“좋다. 맡길 만한 사람을 적어서 아뢰라.”
“서울에 사는 유생은 얻기가 쉽지마는 외방 사람은 얻어 읽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그전에는 여러 고을에서 서적을 간행하는 것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판본(板本)이 이미 끊어졌으니, 거듭 밝히어 간행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서적을 많이 찍어서 널리 펴고자 한다. 비용은 많이 들지마는 인재가 배출하면 어찌 작은 도움이겠는가?”
하고, 승지(承旨)에게 명하여 찍어 낼 만한 서책을 적어서 아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