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左議政) 신숙주(申叔舟)가 화종을 준 것을 사례(謝禮)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검교 찬성(檢校贊成) 안지(安止)가 김제(金堤)로부터 왔는데, 우의정(右議政) 권남(權擥)은 안지가 이고, 또 일찍이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맞이하여 술을 마시었습니다. 신도 또한 가서 참석하였는데, 하사(下賜)하신 술잔이 그때 마침 이르렀습니다. 성상의 은혜가 망극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화위당(華韡堂)에 나아가 〈
신숙주를〉 불러서 이를 묻고, 곧
안지·
권남 및 병조 판서(兵曹判書)
한명회(韓明澮)·이조 참판(吏曹參判)
성임(成任)·도진무(都鎭撫)
이윤손(李允孫)·
강곤(康衮), 우승지(右承旨)
유자환(柳子煥)·좌부승지(左副承旨)
홍응(洪應)·우부승지(右副承旨)
이문형(李文炯)을 불러 술자리를 베푸니,
안지 등이 임금에게 술을 올리었다.
안지를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김구(金鉤)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삼고,
안지에게 어의(御衣) 1령(領)을 내려주니
안지가 입고 춤을 추었다. 명하여 〈
안지〉의 사위
황맹수(黃孟粹)에게 관작 1품계를 더하여 주게 하였다.
안지가 를 올리기를,
“살아서 성주(聖主)를 만나니, 오히려 늦은 것이 원망스럽도다.”
하니, 임금이 곧 말하기를,
“옛 친구와 서로 기쁘게 노는데, 아직 초반도 안되었구나!”
하고,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계속하게 하니, 신숙주가 말하기를,
“낚시를 위수(渭水) 가에 드리우고 이미 80이 되었네.”
하고, 권남은 말하기를,
“어찌 성상의 은혜가 지금같이 넓고 큰 줄을 생각했으리오?”
하고, 한명회가 말하기를,
“지금 노성(老成)한 신하에게 예(禮)를 두텁게 함이여!”
하고, 성임은 말하기를,
“창성(昌盛)한 때에 손뼉을 치며 춤을 추니, 성상의 구레나룻이 소산(蕭散)하구나!”
하고, 이문형은 말하기를,
“호호탕탕하니, 노인이라고 이름하기가 어렵도다.”
하고, 유자환은 말하기를,
“에게 화답하여 시를 지으니 어찌 한적하게 노닐지 않겠습니까?”
하고, 홍응은 말하기를,
“순(舜) 임금과 문왕은 억년(億年)이 지나가도 참으로 꼭 같다네.”
하고,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은 말하기를,
“공적(功績)을 높이어 천만 년의 수(壽)를 드립니다.”
하니, 임금이 성임에게 명하여 이것을 쓰게 하고, 이문형에게 명하여 서문(序文)을 짓게 하였는데, 그 서문은 이러하였다.
“여름 6월 초5일 갑술(甲戌)에 임금이 화위당(華韡堂)에 나아가 옛 신하 안지를 부르시었다. 안지는 늙어서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 집에 있었는데, 이때 나이가 78세였다. 인하여 좌의정 신숙주 이하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화위당에 입시(入侍)하게 하고 술자리를 벌이고 아악을 베풀었다. 술이 이미 취하였는데, 안지에게 어의(御衣) 1령(領)을 내려주니, 안지가 공경하게 받아서 입고 춤을 추고, 여러 신하가 서로 번갈아 일어나서 헌수(獻壽)하였다. 성상께서 안지에게 판중추원사를 제수하고 또 그 사위에게 벼슬을 더하여 주시었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기이한 만남이다. 안지가 시(詩) 1귀를 올리니, 성상이 화답(和答)을 내려 주고 자리에 있는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글귀를〉 채우게 하였다. 이미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지자, 성상이 말하기를, ‘말의 뜻과 음절(音節)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으니, 가히 볼만하다. 문신(文臣)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짓게 하라.’ 하고, 곧 신(臣)에게 서문을 짓도록 명하셨다.
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은 옛부터 어려운 일이고, 노인(老人)을 중히 여기고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것은 더욱 제왕(帝王)의 성덕(盛德)이다. 안지는 3대(三代)의 임금을 섬기면서, 유교의 도를 높이고, 유악(帷幄)의 고문이 되었고, 사국(史局)에서 역사를 편찬하는 것을 총괄하였고, 학예(學藝)의 모범이 되었으며, 과거(科擧)의 제형(提衡)으로 1대(代)의 유가(儒家)의 이 되었다. 이제는 늙었으나, 전하(殿下)께서 그 옛일을 생각하고 그 나이를 존중하고 그 학문을 숭상하여, 직질(職秩)을 높이고 상(賞)을 후하게 하시어 하사하시는 것이 치우치게 많았다. 안지가 이에 은혜를 받고는 감격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백발(白髮)이 파파(皤皤)하고 단심(丹心)이 하였다. 이것은 비록 주(周)나라 임금의 잘 양호(養護)하는 것이라든가 한(漢)나라 황제의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이보다 더할 것이 없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기뻐하며 한 자리에서 화답(和答)하며 노래 부르는 것에 이르러서는 순(舜) 임금의 조정에서나 있었던 옛일이지 주나라나 한나라에서는 미치지 못할 바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의 성덕(盛德)이 널리 퍼지고 어진 소리가 멀리까지 미치어,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며 양육(養育)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진이를 존중하고 늙은이를 공경하는 데 이르러서는 비록 《시전(詩傳)》이나 《서전(書傳)》에 기재된 것도 더함이 없을 것이다. 장차 와 또한 모두 목을 길게 뻗치고 눈을 씻고 볼 것이니, 우리 전하를 위하여 쓰일 것이다. 지혜와 계책이 하늘로부터 나와서 나라를 위하는 가 왕화(王化)를 돕고, 민생(民生)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신이 엎드려 성(盛)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삼가 성상의 명을 받았으나 능히 큰 휴명(休命)을 할 수 없어서 삼가 대강의 줄거리만 기술하고 로 하여금 상고하게 하여 다른 날 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9책 24권 21장 A면
【영인본】 7책 467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