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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59~60화

碧空 2022. 2. 1. 23:50

?조선왕조실록 제59화.60화

?(선조 7) 연전연패 

부산이 함락되기까지 입은 왜군 피해는 전사 100여 명, 부상 400여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이 정도의 항전도 그나마 거기까지였습니다. 

경상 좌병사와 경상 좌수사는 왜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고, 경상 우수사 원균은 배를 바다 속에 밀어 넣고 도망을 쳤습니다. 

왜군은 실제적 전투경험에다 조총으로 무장까지 했고, 정보전에 전술전략까지 완벽했으니, 오합지졸 조선군이 이들을 이길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산에 속속 상륙한 5만의 왜군 선봉대는 세 갈래로 나누어 파죽지세로 북상을 계속했습니다. 

한편, 일본의 침략소식은 나흘 뒤인 4월 17일 조정에 전해졌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조는 유성룡, 신립, 이일 등을 주요 자리에 임명하고 적의 북상을 저지토록 하였습니다. 

이 당시 조선의 방어체제는 제승방략제, 즉 각 고을의 군사가 약속한 장소에 모여 대군을 이루고는 중앙에서 보낸 장수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경상감사 김수가 대구 들판에 각 고을의 군대를 모아 진을 치게 했으나, 훈련 한 번 받아 본 일 없는 오합지졸 군대는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해 순변사 이일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거의 와해되고 깃발만 나부끼는 형국이었습니다. 

이일은 적정탐지라는 기초적인 작업도 할 줄 몰랐고, 적이 코앞에 온 것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적의 습격을 받아 저항도 못해 본 채, 군관 한 명 노복 한 명과 함께 도망쳐 당시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는 신립장군의 군진으로 들어갔고, 병사들은 당연히 몰살되었습니다. 

신립은 당시 당대 최고의 장군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던 자로, 기병싸움의 달인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조정은 신립장군이라면 왜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조정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신립은 “적이 많고 강하니 험준한 요새인 조령을 지키며 싸우자”는 휘하 장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병을 활용한 싸움방식을 선택했다.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방식, 즉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맞섰으나, 이곳은 논밭이 많아 말을 달릴 수 없는 곳인데다 비 까지 오니, 기마병은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왜군 조총부대의 쉬운 과녁이 되고 말았다. 

조선 최강 부대라는 신립부대는 이렇게 힘 한 번 못쓴 채 박살이 났고, 신립은 탄금대 강물에 몸을 던져 쟈결을 했다. 
배수진을 친것은 결심에 대한 표시이나 패하고 나면 전멸인데...
자타가 인정하는 명장이라는 신립, 정말 기가 차네요.

요사이 군의 소대장보다도 못한 군사 이론이니, 최소 장수가 되려면 병법은 통달하지 못하더라도 손자병법이나 병서는 몇권 읽었어야...ㅉㅉ

수하 의견을 듣지도 아니하고 자기 주장만 앞세워서 패하고 나면
전멸이니 죄없는 병사들만 죽어나가고 나라와 백성들은 어찌하나요 ㅉㅉ


?다음 제60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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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60화

?(선조 8 ) 선조임금, 파천하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 신립의 패전소식을 들은 조정은 공포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들은 속으로, 남은 한 가지 길은 파천, 즉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먼저 파천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이에 선조가 입을 열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파천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대부분의 대신들은 파천을 반대했고, 이산해와 유성룡이 파천에 부득이 동의하였으며, 신하들은 이산해를 파직할 것을 청하였다. 

파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이미 식솔을 피신시켰는가 하면, 스스로 물러나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도, 파천의 책임을 지지 않고자 마음에도 없는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천 반대에 실제로 목숨을 건 신하는 하나도 없었고, 결국 파천은 피할 수 없는 결정이 되고 말았다. 

선조는 부랴부랴 평소 마뜩찮아 하던 광해를 세자로 세우고, 4월 30일 백성의 눈을 피해 새벽에 피난길에 오르니, 파천 반대를 부르짖던 신하들도, 궁궐 호위를 맡은 갑사도 거의가 도망가 버려 호종하는 종친, 문무관이 100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울며 가로막는 백성들 몇을 본보기로 베고(명분만 찾는 신하들보다 평범한 백성이 훨씬낫네 그런데 베다니 하는짓마다 꼴통짓이야 선조) 황급히 길을 떠나 이 날 저녁에 간신히 임진강을 건넌 선조는 건너편나루를 끊고 배들을 모두 가라앉힐 것과 뗏목을 만들지 못하도록 인근의 인가를 모두 철거할 것을 명하였다.
왕이 도성을 떠나자 성난 백성들은 궁궐을 습격해 불을 질렀다.

이 때 실록의 사초, 승정원 일기, 노비문서를 보관하던 장례원, 형조 관아, 임해군의 집 등이 모두 불탔다. 임금은 도망가고, 백성은 궁궐을 습격하고...
기가 막힙니다. 

조정은 강행군 끝에 이튿날인 5월 1일 개성에 당도해 한 숨을 돌렸는데, 여기서도 조정의 삽질은 변함이 없었다. 
대간들은 파천을 주장한 이산해의 파직을 다시 주청했고, 결국 이산해와 유성룡은 파직되었다.

(이그 그놈의 명분)

이미 파천을 한 마당에, 그리고 전쟁에 나라가 망하게 생긴 마당에 파천을 먼저 주장한 사람을 파직하는 것이 말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파천을 결정한 것도 선조이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최고 책임자도 선조인데, 다 같이 도망쳐 온 주제에 누가 누구를 파직한단 말인지, 한심도 이런 한심이 없다 하겠다. 


?다음 제61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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