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집의(執義) 조문숙(趙文琡)이 아뢰기를,
“이번에 무신(武臣)들을 28개 편으로 나누어서 시사(試謝)하게 했는데, 편마다 으뜸가는 자에게는 각각 한 급(級)씩 가자(加資)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령 으뜸된 자가 모두 자궁(資窮)이 되었다면 28명이 함께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될 것이니, 그 외람됨이 심합니다. 지난번 평안도(平安道)의 고산리(高山里)의 싸움에서 참획(斬獲)이 매우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첨절제사(僉節制使) 강지(姜漬)는 반드시 당상관(堂上官)에 승진이 될 것으로 여겼었는데도 성상(聖上)께서 오히려 관작(官爵)을 아끼셔서 자급(資級)만 올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사한 자는 적(敵)을 참획한 공이 없었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나라에서 봄가을에 를 실시하는 것도 획수(劃數)를 합계(合計)하여 1등에 해당하는 자에게만 가자하고 있습니다. 신은 여러 편을 합해서 으뜸가는 2, 3명에게만 가자하고 그 나머지는 획수에 따라 물품을 차등 있게 줄 것 같으면 작상(爵賞)이 외람되지도 않고 권자의 뜻이 행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고문(顧問)하였다. 영사(領事) 윤필상(尹弼商)이 대답하기를,
“이권(李菤)·심형(沈亨)은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인데도 2, 3등에 해당되어 가자(加資)받을 수 없고, 다른 편에서 으뜸이 되어 가자를 받은 자는 그 재주가 이권·심형의 편보다 아주 못한 자이니, 잘 쏘는 사람은 상을 받을 수 없고 재주가 없는 자는 요행으로 상을 타게 됩니다. 이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편을 합하여 논상(論賞)을 한다면 잘 쏘지 못하는 사람은 끝내 가자(加資)를 받을 수가 없으니, 어떻게 격려(激勵)할 수 있겠는가?”
하니, 특진관(特進官) 이봉(李封)이 아뢰기를,
“재주 있는 무사(武士)는 반드시 제때에 발탁(拔擢)해야지 늙으면 쓸 데가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권장한다면 다음날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사는 마땅히 힘이 한창 강할 때에 등용해야 할 것이다. 젊었을 적에 시험하지 않으면 늙은 다음에 어디에 쓰겠는가?”
하므로, 조문숙(趙文琡)이 아뢰기를,
“비록 가자(加資)하지 않더라도 말을 하사(下賜)하거나 활과 화살을 하사한다면 이것 역시 임금의 하사이니, 누가 감격하게 여겨 힘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학교는 현사(賢士)들에 관계된 것인데, 현재의 유생(儒生)들은 사장(師長)에게 성심으로 수업(受業)하지 않고, 다투어 이의(異議)만을 숭상하면서 성리(性理)의 학문을 탐구(探究)하지 아니하므로, 인재(人才)가 날로 수준이 낮아지고 있으니, 정말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고, 시독관(侍讀官) 민보익(閔輔翼)은 아뢰기를,
“유생들이 책을 끼고 다니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모두 녹봉(祿俸)을 구하고 사진(仕進)을 도모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은 충순위(忠順衛)·충찬위(忠贊衛)에 소속되어 자급(資級)을 취하기도 하고, 혹은 4, 5품(品)에 이르러 하루 아침에 등제(登第)하게 되면 전일(前日)의 사장(師張)도 도리어 그 아래 있게 되니, 유생들이 사장을 경멸(輕蔑)하는 것이 모두 이 때문입니다.”
하였다. 조문숙이 아뢰기를,
“요즈음 사학(四學)의 장관(長官)이 혹은 출사(出使)하고 혹은 다른 일에 종사하여 한 사람도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유생들이 게을러져 학업(學業)에 전념(專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방(外方)의 훈도(訓導)들이 처음에 시재(試才)할 때에는 혹 남을 사서 대강(代講)을 시켰다가 그 직임(職任)에 제수(除授)되고 나면 반 줄의 글도 모르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글을 이해하는 자가 있어도 마음을 다하여 가르치지 않고 날마다 재산을 늘리는 것을 일삼고 있으며, 새로 급제(及弟)한 자로서 훈도에 제수된 자는 유관(儒冠)을 벗자마자 지기(志氣)가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내가 이 자리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며, 수령(守令)도 또한 빈례(賓禮)로 대우하며 날마다 술마시고 즐기는 것을 일삼고 있으니, 이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놀아나면서 교훈(敎訓)에는 아예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비록 학문에 뜻을 두는 선비가 있어도 성취(成就)할 길이 없습니다. 신은 생원(生員)·진사(進士)의 은 반드시 청강(聽講)하는 날부터 계산하고, 사학(四學)의 관원(官員)은 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과 나누어 차견(差遺)하여 외방(外方)의 훈도(訓導)를 항상 담당케 하고, 감사(監司)로 하여금 고강(考講)하게 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직첩(職牒)을 거두어 충군(充軍)시키고, 생원·진사는 비록 취재(取才)하지 않았더라도 훈도에 제수시킨다면 교양(敎養)의 방법이 있게 되어 인재(人才)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자, 동지사(同知事)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선왕조(先王朝)에서는 향촌(鄕村)에서 사표(師表)가 될 만한 학행(學行)이 있는 자를 선발하여 학장(學長)을 삼았으므로 유생(儒生)들이 모두 심복(心服)하고 존경(尊敬)하면서 학업(學業)을 하였었는데, 요즈음 유생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훈도가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생각으로서는 훈도를 바꾸고 학장(學長)제도를 설치하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 아뢰기를,
“한 가지 법이 생기면 한가지 폐단이 생기게 마련이니, 그 많은 군(郡)·현(縣)에서 어찌 다 적임자를 얻을 수 있으며, 훈도(訓導)도 또한 어찌 모두가 배우지 아니하고 재산을 늘리는 데만 골몰하는 사람일 수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제도(諸道)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고강(考講)케 해서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충군(充軍)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홍귀달이 아뢰기를,
“신(臣)이 젊을 때에 보니,
김구(金鉤)·
김말(金末)이 겸 사성(兼司城)이 되어 항상 출사(出仕)하여 교회(敎誨)하였으므로 유생들이 배우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극증(李克增)·
성현(成俔)도 또한 교회(敎誨)를 맡길 만한 자이고 겸 사성으로 있으니, 그에게 맡겨서 인재 양성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조위(曺偉)가 아뢰기를,
“교수(敎授)·훈도(訓導)는 사람들이 모두 천(賤)하게 여기므로, 사류(士類)들이 모두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문신(文臣)들에게 돌려가며 제수(除授)하되 고만(考滿)이 되면 즉시 체임(遞任)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라.”
하였다. 조문숙(趙文琡)이 또다시 아뢰기를,
“에 제도(諸道)의 감사(監司)가 말을 진상(進上)하는 것이 예(禮)입니다. 그래서 제읍(諸邑)의 수령(守令) 등이 민간(民間)의 말을 선발하여 도회관(都會館)에 보내면 도회관에서 선발하여 감사(監司)에게 보내고, 감사가 또다시 거기에서 우수한 것을 선발하여 사복시(司僕寺)에 보내면 사복시에서 더욱 우수한 것을 선발하여 진상하는데, 그 선발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감사가 장부에 기록하여 다음번 진상에 대비합니다. 그러니 그 말 주인은 말 때문에 양식을 싸가지고 왕래(往來)하는 것이 해마다 상례(常例)가 되어 폐를 받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마(良馬)를 얻어도 즉시 팔아버리니 군사(軍士)들이 양마가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청컨대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감사가 말을 진상할 때에 민간(民間)에서 취하지 말게 하소서.”
하자, 윤필상(尹弼商)이 아뢰기를,
“감사(監司)가 말을 진상하는 것은 한 필뿐이니, 수령(守令)이 관아(官衙)에서 말을 길러 진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내용을 제도(諸道)에 유시(諭示)하라.”
하였다. 윤필상이 아뢰기를,
“현재 여러 목장의 양마(良馬)를 목자(牧子)들이 몰래 팔아서 그 이익을 차지하고 노마(駑馬)로 바꾸어 바치고 있습니다. 세조(世祖) 때에 어떤 사람이 밀고(密告)하기를, ‘양마(良馬) 5, 6필이 목자(牧子)의 집에 있습니다.’고 하므로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게 했더니, 10필이나 있었습니다.”
하자, 조위(曺偉)는 아뢰기를,
“제읍(諸邑)의 수령(守令)이 목장(牧場) 감독의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단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생긴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해마다 관리를 보내어 점마(點馬)하게 하면 그러한 폐단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3책 275권 12장 A면
【영인본】 12책 285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교통-마정(馬政)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