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주인공은 자신들의 사랑을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길 원했다.
그들은
어느 날 사랑의 비밀을 묻기 위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찾아 가서 그 곳 어딘가에 그들의 사랑을 비밀스럽게 묻는다.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앙코르와트, 아마 그들은 그곳이 비밀을 감추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 하였던 것
같다.
지난해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호치민(사이공)에서 버스를 타고 멀고먼 베트남의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갔다. 수도 프놈펜에 도착해서 또다시
지프(Jeep)를 빌려 타고 북서쪽으로 약 300여 ㎞. 열대의 정글을 지나고, 노면 상태가 거의 비포장도로와 마찬가지인 도로를 따라 갔다.
태국(시엠)을 물리친(립) 도시라는 뜻의 자부심 가득한 시엠립(Siem Reap)시는 소도시지만 인류 문화유산을 보러 온 각국
이방인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12세기의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12세기경 쌓아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앙의 금자탑들. 그 중 가장 거대한 유적이 바로 앙코르 와트다.
크메르어로 '사원 도시'란 뜻인 이 잿빛 사원을 보며
나는 숨이 막힐 만큼 흥분해 버렸다. 앙코르와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에 속한다. 이 사원은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콜로세움을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상세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 장식, 부조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200여 미터의 해자를 건너면 3기의 탑과 함께 길다란 익랑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를 따라 500 여 미터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하지만 앙코르
와트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1972년부터 크메르루즈와 베트남 사이에 국지전이 발발하여, 낮과 밤 두 나라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중요한 부분은 외국의 골동품 상들에게 유출된 상태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에는 이끼가 끼고, 열대 우림지역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들의 뿌리가 조각들을
감싸거나 파고들어가 더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하여 캄보디아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털어버리게 되었다.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이전 내가 생각하던 캄보디아는 온통 고지식하고, 무식하고, 융통성 없는 공산당과 ‘킬링필드’만 강렬한 이미지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지금의 캄보디아는 이 전의 무시무시한 킬링필드를 잊고 사는듯 했다. 그 많던 사회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떠나버린 것인지, 자본주의 경제를
열심히 학습하고 있었다.
몇 킬로미터를 걷고도 내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앙코르 와트를 돌아 나오는 길에 보이던 이국의 풍경들이
마치 비디오를 다시 보는듯이 오늘도 눈에 어른거린다. 비에 옷이 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장을 하며 손을 벌리던 천진한 아이들과 야자수,
두리안, 바나나와 이름모를 열대 과일, 조잡한 기념품 등을 팔던 노점 상인들과 길가의 회랑에 주욱 늘어서 앉아 이방인을 멀뚱멀뚱 바라다 보던
원숭이 들, 그리고 가까운 정글속에서 세상이 꺼져라고 짖어대던 원숭이들의 괴성과 그 사이사이 들려 오던 새들의 노래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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