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우리 먹으려 했던 중·일·러 견제 위해 주한미군 주둔해야”-김대중 육성 회고록〈1〉
입력 2023.05.16 05:00
김대중(DJ·1924~2009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의 80여년 삶을 반추하며 생생한 육성 구술과 함께 동영상을 남겼다. 자신이 헤쳐온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10월 유신과 신군부 정권, 민주화 시대와 대통령 통치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간들을 회고했다. DJ의 인생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관통한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는 이념과 관점에 따라 평가가 충돌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역사적 기록과 실체적 교훈으로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동영상을 보존하고 있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육성 회고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58)을 매주 1회씩 독점 연재한다. 보다 상세한 회고록 내용과 DJ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은 중앙일보 홈페이지 ‘The JoongAng Plus’(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58)에서 우선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직접 영접 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 6월 14일 오후 평양 백화원 초대소. 방북 이틀째, 김대중 대통령(DJ)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존칭 생략)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마주 앉았다. 화해와 통일, 긴장 완화와 평화 등 남북 관계 개선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오갔다. 회담이 2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갑자기 김정일이 뜻밖의 말을 던졌다. 예상치 못한 파격적 발언이었다.
“주한미군이 북한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하지만 중국·일본·러시아 등 우리를 먹으려 했던 나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미군)이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남아야 합니다.”
DJ는 귀를 의심했다. 미군 철수는 북한의 숙원이다. 조국해방전쟁(6·25 한국전쟁)이 미군의 개입으로 좌절됐다고 믿는다. 미군은 ‘한반도의 외세 점령군’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남북 간의 전쟁 억지와 한반도 주변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취지로 김정일은 말했다.
“김 대통령께 비밀사항 말씀드리겠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1953년 김일성이 공식화한 이래 일관된 원칙이자 김일성의 유훈(遺訓)이다. 대외적으로는 변함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발언이 나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김정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통령께 비밀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며 미국 공화당 조지 H W 부시 정부 시절에 있었던 비화를 털어놨다.
김정일: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입니다.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았으면 한다.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용순 조선노동당 국제비서는 1992년 1월 22일 뉴욕 주유엔 미국대표부에서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만났다. 사상 첫 북·미 고위급 회담이었다. 생존해 있던 김일성과 김정일 수뇌부가 김용순을 보내 ‘미국 수교와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놓고 빅딜을 시도했다. 김일성이 대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탈냉전 이후 고립 위기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은 우여곡절 끝에 결렬됐다.
“인민 감정 달래기 이해 해달라”
DJ: “그런데 왜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습니까?”
김정일: “그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겁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군 철수 주장은 북한 사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정치적 선전이라는 얘기였다. “대한민국은 미·중·일·러 4대국과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그중에서도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곳은 미국이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게 DJ의 지론이었다. 대화가 이어졌다.
김정일: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 통일이 돼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남측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DJ: “민족 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주변 강국들이 패권 싸움을 하면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 균형을 유지하면 우리 민족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김정일: “한반도 문제는 외세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DJ: “동의합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힘을 합쳐 주도하되 주변국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 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구술에서 DJ는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화제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논지를 놓치지 않고 이어갔다. 용하다고 느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군 주둔 발언이었다. (미국의 외교적 활용과 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해)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박정희 참배할 테니 김일성 참배해달라”
평양으로 향하기 전 DJ는 극도로 긴장했다.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머리로 잘하고 돌아오겠다”고 국민에게 장담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분단 이후 사상 첫 정상회담인 데다 김정일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공항에 영접을 나올지, 무엇을 논의할지, 공동선언문은 낼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었다.
큰 걸림돌은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여부였다. 북한은 DJ에게 김일성의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참배는 상징적이고 민감한 사안이었다. DJ 측은 한국 국민의 부정적 여론을 들어 양해를 구했지만, 북한은 완강했다.
김정일이 “내가 서울을 방문하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겠다. 안 된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라”며 대놓고 언성을 높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정일이 순안공항에 영접을 나와 DJ를 모시고 영빈관으로 가는 도중에 금수산궁전에 잠깐 들러 참배한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한국 국민에게는 “그냥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일정이 잡혀서 같이 들어갔다”고 해명하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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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측은 난색을 표했다. 방북 당일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길에 올랐다. 김정일 설득 과정을 DJ는 증언했다.
“우리가 남북 간 평화를 마련하고, 교류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하더라도 금수산 참배를 하면 (한국의) 반대 세력들은 천지가 뒤집힐 듯 떠들 것이다. 언론도 (부정적으로) 써 댈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지하에서 어느 쪽을 바라겠느냐. 내가 참배를 안 하고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남북 간 화해와 협력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김일성은) 생각할 것이다.”
회담 결렬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했던 참배 논란은 의외로 싱겁게 풀렸다. 김정일은 14일 저녁 평양 목란관 만찬장으로 가는 DJ 차에 동승했다. DJ는 “김정일 위원장이 백화원 초대소로 갈 때 내 손을 잡으면서 ‘금수산은 안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일, 말 많지만 총명한 사람”
정상회담 전까지 ‘은둔의 나라’ 지도자 김정일은 참을성 없고 신경질적이라는 인물로 알려졌다. DJ가 대면한 김정일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김 위원장은 상대방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다. 리더십을 갖추고, 판단력이 확실했다.” 김정일은 말 많은 사람이었다. “대화 중 7할은 김 위원장이, 나는 3할 정도 말했다.”
DJ는 6·15 공동선언이 성사된 날을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이라고 자평했다. DJ의 방북 이후 이산가족 상봉, 철도·도로 연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와 교류 협력이 확대되고, 화해 무드가 형성됐던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핵 개발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결과였다.
주한미군 묵인 발언은 왜 흘렸을까
김정일은 중국·러시아가 불쾌하게 여길 주한미군 발언을 왜 흘렸을까? 이 궁금증에 관해 DJ는 구술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반복했다.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났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미국)가 한국에 군을 주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들 김정은도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중국 공산당은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처럼 다루기 위해 미군 철수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회고록에서 “김정은은 자신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021년 8월 10일 담화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화근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철수론을 또 꺼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주한미군 용인 발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심인가?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한 떠보기 전략인가? 핵 개발에 시간을 벌기 위한 의도적 립서비스인가?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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