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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碧空 2022. 4. 7. 08:10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왜?? 원수지간이 되었을까?

같은 뿌리를 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왜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을까?

한민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졌듯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는 키에프 공국이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나라이다.

키에프 공국의 수도 키에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다. 같은 뿌리의 국가라서 이 3개 나라의 언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될 정도로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스탈린 시절의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불리는 대기근 사건이 주요 원인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중에 하나이다.  우크라이나 땅은 흑토이며 뭘 심어도 잘 자라는 풍요의 땅이다.

그런데, 
공산혁명후 스탈린이 부농(쿨라크)을 처형하였다.
그들의 가죽을 벗겨서 비누로 만들었다.

쿨라크가 가진 농지를 다 몰수하고 집단농장 체제로 만들어 운영하였다.
집단농장마다 생산량을 할당하였다. 

그러자 농산물 생산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당연한 결과이다.

농사짓는 기술을 가진 부농을 다 처형했으니 그런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자기 것이 안되는데
누가 열심히 농사 짓겠는가?

소련은 농산물이 줄어 들어도 과도한 목표량을 수탈을 하였다.
그래서 그 세계 3대 곡창지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겨났다.

1933년 어느날, 단 하루만에 28,000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집단농장의 인구가 굶어죽는 사람 때문에 1/3로 쪼그라 들었다.

배고품을 참지 못한 우크라이나 인들은 쥐, 개, 고양이, 벌레...등을 닥치는데로 잡아먹었다.

나중에는 사람까지 잡아먹었다. 부모들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인육을 파는 상점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에 소련은 연 천만명의 인구가 먹을수 있는 여분의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련은 식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굶겨 죽었다. 

당시에 약 500만~ 1000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대기근을 홀로도모르 라고 부르고, 매년 기념일엔 곡식 낱알을 흩뿌리며 원혼을 달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크라이나인들의 공산당에 대한 반감은 엄청 커졌다.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처들어오자 해방군이라고 오히려 환영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는데, 유대인만 죽인게 아니고 슬라브인도 엄청 많이 죽였다.

당시에
홀로코스트를 집행하는데
조력을 한 이들이 바로 우크라이나인들
이라고 러시아인들은 주장한다.

어제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친나치 세력이라고 비난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두 나라는 뿌리가 같은 나라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적이 되었다.

최근에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은 왜 화약고가 되었나?

우크라이나의 우측
돈바스지역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지역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두 지역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친 러시아인들이 많이 산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친서방정권이 들어서면서 러시아어를 금지시켜 버리고,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하게 하고 나토 가입을 결정하자 친러시아인은 반발하였고,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정부군과 독립선포한 돈바스지역과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 분쟁지역은 민스크 협정으로 휴전을 했다.

중요한 협정내용은 중화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돈바스 지역은 자체 주민 선거를 실시한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속하지만 연방제 방식으로 자치권을 확대한다... 등등이였다.

그런데 푸틴이 돈바스의 2자치구(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였다.

이에 대해서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돈바스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여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였다고 비난하였다.

한편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 이유는 자체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체 주민투표를 하면 주민들이 크림반도처럼 러시아와 합병을 결의할 가능성이 100%였다.

암튼 푸틴은 돈바스 지역을 독립국으로 인정함으로서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에 이어서 돈바스 지역까지 빼앗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을 제공한 것은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는 파라다이스를 약속하지만 실제는 원한과 분노 그리고 질투심을 부추켜 지옥을 만들었을 뿐이다.

지옥으로 가는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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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없는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면서》

  평화타령 불러대면 평화가 온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아직도 꽤나 많은가 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를 보세요!
우크라이나에 힘이 없으면 우크라이나에 평화도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우크라이나 단독으로는 러시아에 대항할 힘이없으니  NATO에 가입하려고 몸부림치는 저 모습을 보세요!
동맹을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하는군요! 그러나 러시아와 충돌을 원치 않는 NATO에서는 완곡하게 거절했어요!

자~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요?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이라는 동맹을 맺은 후 69년이 지나 거의 70년, 그 동안 한국은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오늘은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글을 써 봅니다. 글의 내용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70년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후 70년을 비교.
읽고 나면 뭔가 명확하게 감이 잡힐 겁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70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70여년 동안 이 땅 안팎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 큰 사건들 중심으로 15 개만  정리해봅니다.

1. 임오군란과 대원군 납치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자 이를 기화로 청나라 군대 3,000명과 일본 군대 400명이 조선으로 들어왔습니다.
청나라 군대는 숭례문(남대문) 밖에 주둔했는데 이 부대를 외교 차원에서 방문한 흥선 대원군을 강제로 납치, 청나라 톈진(天津)으로 압송, 당시 청나라의 실권자였던 리홍장이 멋대로 대원군을 심문하고 톈진 서쪽 바오딩(保定)에 구금시켰어요. 3년이 흘러 1885년이 되어서야 대원군을 풀어주어 겨우 귀국했습니다.

2. 동학란과 청일전쟁
1894년 학정에 못견딘 전라도 고부 농민들이 전봉준과 동학교도들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이를 기화로 일본이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었고 조선에서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 양국 간에 청일전쟁(1894~1895)이 터졌지요.

이 때 일본군이 한양으로 들어와 한양 경복궁을 지키는 조선군과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접전 끝에 일본군이 승리하고 고종은 사로잡혔습니다! 일본군 소좌가 칼을 빼들고 고종을 협박했었지요!

엉터리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서 침묵하는 내용들입니다.

일본군은 이어 평양으로 진격 평양성을 지키던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을 격파했고 청나라 군대는 을밀대에서 항복했어요. 연이어 벌어지는 여러 전투에서 일본은 모두 승리했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했습니다.

조선 안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전쟁터는 조선 땅! 전쟁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인들의 몫이었지요.

3. 1895년 을미사변
청일전쟁이 1895년 4월 일본의 승리로 종결되자 조선 내에서 일본의 위세는 더욱 더 대단해졌고 동년 1895년 10월 8일 일본 낭인(사무라이보다 낮은 계층)들이 경복궁에 난입, 옥호루에 숨어 있던 민비(나는 명성황후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여자가 이 나라 역사에 저지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를 죽였습니다.

고종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지요. 이 사건을 후세 역사책에서는 '아관파천'이라 부른답니다.

당시 경복궁을 지키던 내금위 병사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일본 낭인들과 싸움에 밀려 도망 갔었지요! 자신들이 지키던 왕과 왕비를 버리고 도망간 조선 최고의 무사들...!!!

이런 내용들도 민족주의 역사관에 입각, 자랑스런 역사만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순 엉터리 한국 국사 교과서에서는 철저히 침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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