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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41~42화

碧空 2022. 2. 1. 23:19

?조선왕조실록 제41화, 42화

?(연산군일기 7) 패악의 절정

  *그리고 몰락의 시작 

갑자사화가 시작된지 70일이 지난 후 연산은 이만하면 백성과 신하들이 정신을 차렸을 것이라는 매우 조심스런 대신들의 간언에,

“10년은 풍속을 바로잡아야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대신들을 아연실색하게 하였습니다.  

연산의 자칭 개혁은 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졌고 잔혹해졌습니다.

연산은 죄인을 잡아올 때 손바닥을 꿰어 끌고 오게도 하고, 배를 가르고 뼈를 바르는 광인과도 같은 형벌을 가하였습니다.  

또한 연산은 어미인 폐비 윤씨의 제삿날엔 후원에서 여럿이 보는 가운데 성관계를 갖기도 했고, 조참에 백관을 꿇어앉도록 하고, 하급 문신과 대간들을 자신의 가마를 메게 하는 등 하는 짓이 점점 해괴해졌습니다.  

조선의 태종이나 세조 그리고 중국의 예에서 보면 신하들에게 매우 가혹했지만 명군으로 평가받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어찌되었든 나라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는 점에 있으나, 연산에게는 가혹한 권력만이 있을 뿐 그렇게 강화시킨 왕권을 가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설계가 없었음은 물론, 오히려 백성들의 땅을 빼앗고 이유 없이 죽이는 등의 가혹한 행위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행하였습

니다.  

이와 같은 연산은 점점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흥청망청(興淸亡淸)”입니다. 

그런데, 연산은 과연 미친 것일까요?

아니면 <연산군 일기>에 기재된 내용이 과장된 것일 뿐 실제는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연산이 미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른 야사에도 연산의 위와 같은 행위가 많이 나오고 역사가들의 이견도 없는 것을 보면,  아무리 어미인 폐비 윤씨의 일이 있다 하더라도, 연산이 수백 번 죽어도 마땅한 패악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생각컨대, 연산은 가혹한 통치만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한 왕권을 유지시켜주는 길이라고 믿었고, 연산은 포악한 권력을 아무런 견제 없이 휘두르다 스스로 휘두르는 권력이라는 괴물에 이성이 마비되어 사실상 미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뭏든 연산은 자신을 견제하는 모든 장치가 해제되자 더욱 향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급기야 신하들의 부인까지 수시로 탐하고 나들이하는 길 위에서 교합을 하는 등 연산의 타락은 끝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임금이 신하를 파리 죽이듯 하고 여색에 절도라곤 없다”라는 익명의 투서가 전해지고,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옛 글에도 있는 것이다.

가엾은 백성들아 나의 의병을 따르라”라는 익명서 등이 붙으니, 이는 연산이 몰락할 필연의 조짐이었습니다.  

연산은 이런 조짐에 내심 큰 두려움을 느꼈으나, 이러한 두려움이 오히려 연산을 더욱 광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즈음 연산을 오랫동안 모셨던 내시 처선이 연산에게 충언을 하다 팔 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신하들대로 두 가지 걱정과 근심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는 연산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이요, 둘은 어디선가 정변이 일어나면 자신들도 연산과 함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산의 광폭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기에,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정변의 기운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이제 누군가 그 팽팽한 줄에 칼을 대기만 한다면, 정변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즈음 연산을 몰아내는 반정을 구체화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중종반정의 주인공  박원종입니다.  

?다음 제42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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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42화

?(중종 1) 연산의 죽음, 중종 등극  

박원종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부인인 박씨의 동생으로서, 성희안, 신윤무 등과 반정을 논의한 후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하나씩 물었는데, 조정 대신들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반정계획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올 것이 온 것으로 판단한 것이지요.

비교적 연산으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았던 박원종이 왜 반정을 시도했는지, 우국충정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야사에는 연산이 박원종의 누이인 월산군 부인을 겁탈했다고 하나, 월산군 부인의 나이를 보나 그즈음 <연산군일기>의 내용을 보나, 이런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쨌든 박원종은 신수근, 임사홍 등 극소수의 연산 측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하들의 호응을 얻어 경복궁에 무혈입성하였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시종이나 내관들, 갑사들 모두 도망가 버린 궁궐에는 연산만이 남아 있었고, 연산은 옥새를 내어 놓으라는 반정군에게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순순히 옥새를 내놓고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합니다.  

박원종은 곧바로 대비전을 찾아 연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성대군이 이 날로 즉위하니 이 사람이 곧 중종입니다.  

이후 연산의 여인 장녹수는 반정군의 칼을 맞은 후, 분노한 군중으로부터 돌을 맞아 순식간에 돌무덤이 만들어졌으며, 연산의 아들들은 각기 따로 유배되었다가 곧 사사되었고, 연산 역시 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에 안치되었다가 두 달 만에 역질로 죽고 말았습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자기 세력도 없이 오직 피바람만으로 절대권력을 향해 질주했던 최악의 군주 조선 10대 왕 연산, 20세에 왕위에 올라 12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피바람으로 세운 절대권력을 오로지 자기의 향락에만 사용했기에 사후 보호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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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종 등은 연산의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13세)을 왕위에 옹립하고 실권을 거머쥔 채 모든 것을 연산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산 치하에서 연산에 붙어 영화를 누린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박원종 세력 등 상당수가 그런 자들이기도 했고, 또 다른 반정을 예방하기 위해 적을 만들지 않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박원종 등은 대부분의 신하들을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중종의 부인인 중전을 연산의 측근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비시켜버렸습니다.  

연산의 치하에서 목숨을 겨우 부지하느라 노심초사했고, 이제 연산도 죽고 본인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박원종 등의 무시무시한 눈길에 어깨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연약한 왕 중종, 어찌되었든 이제 1506년의 조선은 11대 왕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다음 제4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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