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장령(掌令) 소세량(蘇世良)이 아뢰기를,
“정원(政院)은 근밀(近密)한 지위에 있으니 권세를 휘두르려는 버릇을 다스리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원이 기초한 김세필의 추고(推考)에 관한 전지(傳旨)는 과연 허술하였으나,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 승지(承旨)는 추고해야 하지만 전지를 고쳐 지으면 호령이 한결같지 않게 되니, 전의 전지에 의하여 추고하는 것이 옳다.”
하매, 소세량이 아뢰기를,
“김세필의 한 마디 말은 치란(治亂)에 관계되므로 상께서 고치기까지 하셨는데 승지가 살피지 않았으니, 추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영사(領事) 남곤이 아뢰기를,
“대간이 아뢴 것은 다 뒷폐단을 헤아린 것이니 매우 옳습니다. 그러나, 정원은 임금의 명을 출납(出納)할 뿐 나머지 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온편치 못할 듯합니다. 정원은 임금 가까이 있는데 아뢰어서 다시 명을 받는 일을 어찌 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문부(文簿)의 출납만을 맡게 한다면 일이 막히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김세필이 아뢴 것은 어떤 뜻이 있어서 아뢴 것인지 모르겠으나 2품인 재상으로서는 조정과 뜻을 같이해야 하는데 상 앞에서 새로운 의논을 내었으니 어찌 옳다고 하겠으며, 추고 전지(推考傳旨)는 그 죄를 말해야 하는 것인데 허술하게 전지를 지은 것도 그릅니다. 조정이 요란한 듯하면 대신은 뜻을 같이해야 하는 것인데, 그 사이에 이의(異議)가 있으면 조정이 어찌 안정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김세필이, 위의 과실이라고 하였는데 죄준다면 허물을 문식(文飾)하는 듯하므로 감히 그르다고 하지 못하였으니, 정원이 전지를 지은 것은 실로 다른 뜻이 없다.”
하매, 정언(正言) 한승정(韓承貞)이 아뢰기를,
“다른 뜻이 없었다 하여 다스리지 않는다면, 그 폐단은 점점 버릇되어 사사로운 뜻을 두기에 이를 것입니다.”
하고, 소세량이 아뢰기를,
“접때 나라의 일이 글러졌다가 이제 겨우 정해졌는데, 진언(進言)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하고, 남곤이 아뢰기를,
“신과 이유청(李惟淸)이 의논하여 아뢰어 죄주도록 청하여 호오(好惡)을 보이고자 한 까닭은 아랫사람의 의논이 달라서 정해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세필이 아뢴 데에 뜻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때에 새로운 의논을 내서는 안 됩니다. 조정의 의논이 이미 정해졌으니, 아뢰더라도 구제할 수 없고 더욱 어지럽게 할 뿐입니다. 전에 황효헌(黃孝獻)이 아뢴 일에 대하여 신 등이 죄주기를 청한 까닭은 앞장서 말하는 자에 따라서 부화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는 의논을 같이하여, 옳은 일은 옳다 하고 그른 일은 그르다 해야 하며 이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처음 죄를 정할 때에는 의논이 정해지지 않았겠으나, 이제는 국시(國是)가 이미 정해졌으니, 김세필이 아뢴 것은 조정이 함께 그르게 여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생(儒生)·문사(文士)가 저들에게 속아서 의논이 같지 않았으나, 이제는 이미 정해졌으니, 말하는 자가 그르다.”
하매, 한승정이 아뢰기를,
“김세필이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으로 아뢴 것은 옳으나, 사사(賜死)를 지나친 일이라고까지 한 것은 그릅니다. 인심이 처음에 저들이 옛일을 끌어대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성심이 있다고 생각하여 깊이 현혹되었었는데, 어찌 새로운 의논을 내어 어지럽힐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건대 김식과 같은 일로 말하면 무슨 짓이고 다하였을 것입니다. 재상의 말과 아랫사람의 말이 같지 않은데 그런 말이 한 번 나오면 아랫사람이 함께 부화할 것이니, 반드시 그 죄를 사방에 환히 알려야 합니다.”
하고, 남곤이 아뢰기를,
“저들은 다 선비라는 이름을 빌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현혹되었는데, 이제 와서는 다들 참된 선비가 배척당하였다고 하니, 요즈음의 일은 마치 송말(宋末)과 같습니다. 그때 태학생(太學生) 장관(張觀) 등이 상소하여 공박해서 물리치려고 생각하였는데, 그 뒤에 가사도(賈似道)가 유생의 형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태학 유생에게 먹이는 물건을 더 주었더니, 가사도가 거짓으로 사직하여 물러갈 듯이 보이니 유생들이 다 상서하여 머물게 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옛말에 ‘송말 유생의 무리는 이익을 취한 것이다.’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송대의 유생은 다 허명(虛名)을 숭상하고 실지를 힘쓰지 않아서 나라의 형세가 나아지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선유(先儒)가 송이종(宋理宗)은 나라를 망친 임금이라 합니다. 《세사정강(世史正綱)》은 이것을 거울삼을 수 있으니, 경연(經筵)에서 진강(進講)하지 않더라도 한가하신 때에 보셔야 합니다. 그자들은 다 의 설(說)을 빌었으므로 사람들이 다 현혹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처음에는 유생들이 다 현혹되어 참된 선비라 하였으니, 의논이 어찌 귀일할 수 있었겠는가? 의논이 귀일하지 않은 것은 헤아릴 것 없으나, 김세필은 재상이므로 역시 매우 그르다고 하겠다.”
하였다. 대간(臺諫)이 이어서
김구(金鉤)·
김수렴(金粹濂)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강독(講讀)이 파하고서,
《세사정강》을 대내(大內)에 들이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0책 40권 38장 A면
【영인본】 15책 691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