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시강관(侍講官) 임추(任樞)가 임문(臨文)하여 아뢰기를,
“태학(太學)의 유생(儒生)을 가려서 등용하는 법은 오래되었고, 지금 중국에서도 시행하는데, 이 법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우리 나라는 성균관(成均館)의 유생으로서 여러해 거관(居館)하고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획수(畫數)를 많이 얻은 자와 무릇 나이가 40에 차고 일곱 번 과거를 보아 입격하지 못한 자는 다 뽑아 쓰는 법이 《대전(大典)》에 실려 있는데 전혀 거행하지 않고, 문음자제(門蔭子弟)를 이원(吏員)으로 임용하는 법을 쓸 따름이니, 태학생이 어찌 문음자제보다 못하겠습니까? 뽑아 쓰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을 등용하는 법은 이것뿐이 아니라 공천(公薦)하는 법도 있는데, 법은 많더라도 거행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걱정이다. 전조(銓曹)가 잘 거행한다면 다른 법을 베풀지 않더라도 될 것이다.”
하매, 임추가 아뢰기를,
“국가의 법으로는, 무릇 수령(守令)과 첨사(僉使)·만호(萬戶)가 될 만한 사람을 동반(東班) 3품 이상과 서반 2품 이상이 천거할 수 있고, 천거한 사람 중에 죄를 입거나 장오(贓汚)를 범한 자가 있으면 그 잘못 천거한 자를 죄주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거행하면 천거받은 사람이 조심할 것이고 남을 천거한 사람도 삼갈 것이니, 이렇게 하면 조정이 아마도 청명(淸明)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워낙 아름다운 법인데도 거행하지 않으니, 매우 옳지 않습니다.”
하고, 특진관(特進官)
허굉(許硡)이 아뢰기를,
“그 잘못 천거한 사람을 죄주는 것은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전대에도 다 거행하지 않았으니, 대개 남을 천거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용모가 쓸만한 것을 보고서 천거 하더라도 어찌 장래에 하는 일을 미리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잘못 천거한 사람을 죄주면 그 폐단도 많을 것입니다. 다만 수령은 오로지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므로 가려서 제수(除授)해야 할 것입니다. 일곱 번 과거를 보아 입격하지 못한 유생도 뽑아 써야 하겠으나, 거관 유생(居館儒生)이라면 괜찮거니와, 접때 젊은 무리는 아는 유생이면 거관하는 자가 아니라도 곧 6품의 벼슬을 제수하였으므로 그 폐단이 매우 컸으니, 전조가 그 쓸 만한 사람을 잘 살펴서 등용하면 될 것입니다.”
하고, 참찬관(參贊官)
김희수(金希壽)가 아뢰기를,
“법은 아름답더라도 치우치게 쓰면 폐단이 있을 것이니, 일곱 번 과거를 보아 입격하지 못한 사람을 천거하더라도 뭇사람이 추존(推尊)하는 사람을 가려 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접때 젊은 사람들이 용사(用事)할 때 남을 천거하는 자는 이 법을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갚는 자료로 삼았고, 천거받기를 바라는 자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분주하여 동정을 바라는 풍습을 이루었으므로 그 폐단이 매우 컸으니, 공도(公道)로 거행한다면 매우 옳을 것입니다.”
“나이 많은 유생을 때때로 뽑아서 재주를 헤아려 벼슬을 제수하는 것이 마땅하며, 접때의 폐단과 같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성종조(成宗朝)에서는 유생을 발탁하더라도 참봉(參奉) 벼슬을 제수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었는데, 접때 사람들은 제 무리를 발탁하여 썼고 미처 3∼4년이 못되어 문득 당상(堂上)에 올랐으므로 매우 옳지 않았으니, 이제 발탁하여 쓰더라도 그 현부(賢否)를 천천히 살펴서 차차로 높여 서용(敍用)해야 합니다.”
하고, 영사(領事)
이유청(李惟淸)이 아뢰기를,
“일곱 번 과거를 보아 입격하지 못하였으나 경술(經術)이 밝고 행실이 닦인 사람을 천거하여 쓰는 것은 국가의 좋은 법입니다. 그러므로 ·에
안양생(安良生)이 성균관 유생으로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이런 일은 늘 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은 천거할 만한 유생이 없습니다. 있다면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오늘날의 유생은 거의 다 글읽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찌 경술이 밝고 행실이 닦인 사람이 있겠습니까? 또 신이 듣건대, 성균관 동지사(成均館同知事)가 윤차(輪次) 때에만 가서 있고 여느 때에는 전혀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유생들도 그 학업을 게을리한다 합니다. 신이 듣건대,
세종조의
김구(金鉤)·
김말(金末)과
성종조의
임수겸(林守謙)·
홍경손(洪敬孫)은 다 한관(閑官) 기구(耆舊)로서 성균관 동지의 벼슬을 겸하여 그 일을 오로지 맡았으므로 보람을 이룬 것이 매우 많았다 하니, 지금도 이런 사람을 가려서 그 직사(職事)를 오로지 맡아서 보람을 이루도록 하소서.”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5책 50권 63장 B면
【영인본】 16책 310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법-법제(法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