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사신(史臣)이
성균관(成均館)에 가서 를 끝마치고
명륜당(明倫堂)에 앉으니, 생원(生員)·진사(進士)·유학(幼學) 4백여 인이 동서로 나누어 차례대로 서서 재배례(再拜禮)를 행하였다.
명나라 사신이 동서의 생원을 불러서 신선한 생선 두 쟁반과 기장쌀 한 쟁반을 주었다. 호조 판서
박원형(朴元亨)·예조 참판
노숙동(盧叔仝)과 좌찬성(左贊成)
신숙주(申叔舟)·예조 판서
홍윤성(洪允成)·겸 성균 사성(兼成均司成)
김구(金鉤)·
김말(金末) 등이 들어가서 보고 예(禮)를 행하였다.
신숙주가
명나라 사신에게 고하기를,
“전하께서 대인(大人)들의 알성(謁聖)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신(臣)들을 보내어 왔습니다.”
하고, 함께 각각 자리에 나아갔다. 다례(茶禮)를 행하여 이를 끝마치자, 고윤(高閏)이 붓[筆]을 잡아 출제(出題)하였다. 가 셋이었는데, 첫째는, ‘천승지국(千乘之國)을 다스릴 때에는 일을 경건히 행하여 신(信)을 지킬 것이요, 용도를 절약하여 백성들을 사랑할 것이요, 백성들을 부릴 적에는 때를 맞추어야한다.’이고, 둘째는, ‘공자(孔子)는 우리가 미쳐 따르지 못할 분이니, 마치 하늘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이고, 세째는, ‘학문에 있어서는 나도 남만 못하겠는가? 그러나 군자(君子)답게 실행하는 데는 아직도 충분치 못하다.’이었다. 시제(詩題)는, ‘의 문묘(文廟)를 배알(拜謁)하였다.[謁先聖廟]’이고, 대구(對句)는, ‘우거진 송백(松柏)이 하늘 높이 솟아 무성하다.[森森松柏參天茂]’이고, 또 ‘비와 이슬로 재배(栽培)한다.[雨露栽培]’이고, 〈대구는〉 ‘천상(天上)에서 은혜의 물결이 넓도다.[天上恩波闊]’이었다. 이리하여 여러 생도들로 하여금 제술(製述)하게 하여 이튿날 태평관으로 보냈다. 임금이 좌승지 조석문(曹錫文)에게 명하여 선온(宣醞)과 을 가지고 가서 진감(陳鑑) 등에게 주고 드디어 술자리를 베풀었다.
진감 등이 시(詩)를 짓기를,
“이른 새벽에 재계(齋戒)하고 문묘(文廟)의 뜰에 절하니
몇길 담장이 높아 엿보기 쉽지 않네.
근래 이러한 때에 상고(上古)를 되새기니
바로 중국에서 변이(邊夷)에 이르렀다오.
서로 오고 가고 한 것이 처음 어느 때부터였던고?
옥경(玉磬)을 치고 금성(金聲)을 내니 다시 무엇이 더 있으리오?
항차 이곳은 우리 조정의 문교(文敎)가 먼 곳이련만
또한 곳곳마다 아님이 없네.”
하였다.
진감 등이 태평관에 돌아가니, 임금이 명하여 황서 모필(黃鼠毛筆) 1백 40매(枚)와 10홀(笏)과 동로구 자석현(銅鑪具紫石硯) 2벌과 2천 폭(幅)과 자소주(紫燒酒) 2병[壜]과 청귤(靑橘) 2궤(櫃)를 나누어 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3장 A면
【영인본】 7책 202면
【분류】 *외교-명(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