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자 !!

참되고 바르게

역사·정치·경제·과학

김 구 ( 金 鉤 ) 인물전

碧空 2013. 10. 17. 19:48

 

       김구

 

             [간략정보]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성별
  • 생년
  • 몰년
  • 본관
  • 대표관직(경력)
  • 집필자
 
 
    ♣ 1383(우왕 9)∼1462(세조 8). 조선 전기의 문신.
    ♣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지(直之), 호는 귀산(歸山). 윤상(尹祥)의 문인이다.
     ♣ 1416년(태종 16)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 1435년(세종 17)에 종학박사(宗學博士)에 제수되었다.

 

     ♣1439년 눈병으로 사직하자 종친인 경녕군 비(敬寧君?) 등 19인이 상소해 한관(閒官)에 서용되었다.

 

     ♣1446년 사성으로 있으면서 종학 교수들이 다른 직책을 겸하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소를 올렸다.

 

     ♣1448년에는 상주목사로 나갔다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로 내직에 임명되어 사서언해(四書諺解)의 번역을 담당하였다.
        그 해에 불당의 설립을 반대하는 소를 올렸고, 후에 사간이 되었으나, 당성군(唐城君) 홍해(洪海)의 아들의 고신에

        서명하지 않았다 해서 좌천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사성·부제학에 제수되고,

 

      ♣1454년(단종 2)에 예문제학이 되었다. 그 해에 다시 내불당(內佛堂)의 혁파를 건의하는 소를 올렸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455년(세조 1)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제수되었으며, 1458년 이승소(李承召)와 함께 최선복(崔善復) 등 12인을

           거느리고 『초학자회(初學字會)』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1459년에는 군기부정(軍器副正) 김석제(金石梯)와 함께 새로운 진법(陣法)을 의논하였다.

 

       ♣ 1461년최항(崔恒)·정인지(鄭麟趾) 등 9인과 함께 『손자주해(孫子註解)』를 바르게 고쳐 정리하는 등 한문 국역에 공이 컸다.

  

       ♣1462년 아산현을 회복하고자 도모하다가 사헌부의 탄핵으로 고신(告身)이 삭탈되었다.

 

        ♣ 죽은 후 성균생원 이고소(李古紹) 등의 상언(上言)으로 관직과 과전을 돌려받았다.

 

        ♣김말(金末)·김반(金?)과 함께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고, 특히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당시 성균관에서 후진에 전념해 학문 발전에 큰 성과가 있어,

 

        ♣‘삼김(三金)’·‘경학삼김(經學三金)’ 혹은 ‘관중삼김(館中三金)’이라 불렸으며,

            많은 명사를 배출하였다. 시호는 문장(文長)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전고대방(典故大方)』
  • 『조선유교연원(朝鮮儒敎淵源)』

'역사·정치·경제·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고마비는 중국인들에겐 공포의 계절 이었다.  (0) 2013.10.21
계림 김씨 내력  (0) 2013.10.17
이익 (2)  (0) 2013.09.24
성호, 이익의 학문과 생애  (0) 2013.09.24
중국 과 한국 연구  (0) 2013.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