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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계보

碧空 2012. 7. 7. 22:15

『경주김씨(慶州金氏)』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원조(遠祖)인 김알지(金閼智)는 서기 65년(신라 탈해왕9) 3월 금성(金城)서쪽 시림(始林) 숲속 나뭇가지에 달려있던 금궤(金櫃)에서 태어났다.
탈해왕(脫解王)은 「하늘이 내려준 아들」이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로 사성(賜姓)하였고 또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나라이름을 삼았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 1 신라본기(新羅本紀)에 기록하고 있다.
서기 262년 그의 7세손인 미추(味鄒)가 왕위(王位)에 오르게 되니, 그로부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 김알지의 28세손)까지 38명이 신라(新羅) 왕위(王位)를 계승하였다.
이렇게 신라에서 웅기(雄起)한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하지만 대략 10 ~ 11개 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중에서 대표적인 파로는 영분공파(永芬公派) ․ 태사공파(太師公派) ․ 은열공파(殷說公派) ․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 호장공파(戶長公派) 등을 들 수 있고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파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분공파(永芬公派)는 일세조(一世祖) 명종(鳴鍾)이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로 고려(高麗)에서 경주군(慶州君)에 봉군되었으며, 8세손 의진(義珍)은 유학(儒學)의 종주(宗主)로 평장상(平章事)를 역임했다.
인경(仁鏡)은 명종의 12세손으로 명종(明宗) 때 급제하여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 중서 문하성의 정2품 벼슬)에 이르렀고, 시(詩)와 글씨에도 뛰어나 문무(文武)를 겸비한 명신(臣名)이었다.
대안군(大安君) 은열파(殷說派)는 파조(派祖)인 은열(殷說)이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로 공부 시랑(工部侍郞 : 육조의 하나로 공조의 정 4품 벼슬)을 역임하고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졌으며, 후손 순웅(順雄)은 대장군(大將軍 : 무관의 종3품 벼슬)을 역임하였다.
조선 초기(朝鮮初期)의 의정부 좌찬성(議政府佐贊成)을 역임한 곤(梱)은 은열의 13세손으로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지고, 그의 후손들은 계림군파(鷄林君派)로 대표적인 일문(一門)을 이루고 있다.
그 외 좌의정(佐議政) 명원(命元)과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경천군(慶川君)에 습봉(襲封)된 남중(南重)이 유명했으며, 남중의 손자이고 인원왕후(仁元王後)의 부친(父親)인 주신(柱臣)은 여러 관직을 거쳐 경은부원군(慶恩付院君)에 봉해졌으며, 후손 사목(思穆)은 형조 판서를 지낸 효대(孝大)의 아들로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좌의정(佐議政)에 올랐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정집(鼎集)의 아들 창희(昌熙)는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한 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이르렀고, 한말(韓末)의 총리대신 홍집(弘集)은 홍범(洪範 : 모범이 되는 큰 규범) 14조를 발표하는 등 새로운 국가의 체계를 세우고 갑오경장(甲午更張)의 대업(大業)을 수행했다.
태사공파(太師公派)의 파조(派祖) 인관(仁琯)은 고려 예종때 조산대부(朝散大夫)를 거쳐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 등을 역임했으며, 그의 9세손 자수(自粹)는 고려에서 좌상시 ․ 형조 판서(判曹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安東)에 은거(隱居)하였다가 고려가 망한 것을 비관하여 자결로써 충절을 지켰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황해도 관찰사인 홍욱(弘郁)의 후손에서는 여덟 명의 정승이 배출되어 경주 김씨 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
영의정(領議政) 흥경(興慶)을 비롯하여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주와 육조판서(六曹判書)를 두루 역임한 노경(魯敬)이 있으며, 노경의 아들 정희(正喜)는 역대의 명필을 연구, 그 장점을 모아서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한 명필로서 전무후무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 외 판서 노응(魯應)과 좌의정(佐議政) 도희(道熙) 부자(父子), 영조(英祖)의 장인으로 어영대장(禦營大將)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한구(漢耈), 우의정(右議政)을 역임한 관주(觀柱) 등이 가문을 대표했다.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는 경순왕(敬順王)의 후손 장유(長有)를 파조(派祖)로 하며,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學者)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일컬어지는 정(淨)은 정랑(正郞) 효정(孝貞)의 아들로 동부승지(同副承旨) ․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이조 참판(吏曹判書) 겸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지낸 후, 형조판서(刑曹判書)로 예문관 제학을 겸임했다.
호장공파(戶長公派)는 위영(魏英) 파조(派祖)로 하고, 그의 손자 근(覲)이 학자(學者)로 시문(詩文)에 능해 송(宋)나라까지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아들 부필(富弼) ․ 부일(富佾) ․ 부식(富軾) ․ 부의(富義) 4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나라에 공헌했다.
첫째 부필(富弼)은 고려 선종(宣宗) 때 과거에 올라 예종 때 병마 판관(兵馬判官)으로 여진(女眞)정벌 때 공을 세웠으며,
둘째 부일(富佾)은 보문각 대제(寶文?待制)를 거쳐 직학사(直學士)에 올라 왕을 비롯하여 보문각 유신들에게 경사(經史)를 강론하여 이름을 떨쳤다.
셋째 부식(富軾)은 현존하는 최초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편찬하고 이어, 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을 주재하는 등 이름난 문장가로 송나라에까지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들 돈중(敦中)은 좌승선(左承宣) ․ 돈시(敦時)는 상서 우승(尙書右承)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