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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에 부서진 넋이여!

碧空 2009. 6. 10. 11:05

鄭在虎
헌정회 부회장 [9·10대의원, 대한언론인회 논설위원]

 

勳章처럼 빛난 "바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찌 이런 일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님이 고향마 을 뒷산에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했다.(1946.9. 1-2009. 5. 23 향년 63세)


그의 생애는 한 뼘의 여백도 허락지 않는 꽉찬 파노라마 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필자는‘바보 노무현의 승리’라는 제하의 칼럼을 썼다.

잠시 몇 대목을 인용해 보자. “정치인 노무현은‘바보’로 통한다. 지역주의라는 광적인 분열인자와의 끔찍한 투쟁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그의‘우직함’을

빗대어 한 말이다.

냉소적 시각이 아니다. 뜨거운 애정을 역으로 수사(修辭)한 반어법적 표현이다. 노무현은 색깔이 진한 사람이다. 그의 빛깔은 여러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보처럼 비쳐진 색상(色相)이다. 질 것을 뻔히 내다보면서 싸움을 걸었다. 시계제로(zero)상황에서 자신의 알몸을 드러낸

전투는 애시 당초 승산이 없는 게임이다. 그렇게 싸우기를 여섯 번. 2승 4패를 기록한다.

 반타작에도 훨씬 못 미친다. 도전의 변은 하나같이‘하나’다. 지역주의와 부딪치는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열중한 노무현을 바보로 불렀다.

 ‘바보’는 훈장처럼 빛나는 노무현의 대명사다”


‘노무현스러움’이란 낯선 화두(話頭)는 청와대 언저리에선 익숙한 말이었다. 예측불허의 돌출적인 언동을 즐긴 대통령을 향한 숱한 풍자언어 중 하나다.

 피의자 심문 동의서에 지장을 찍고 검찰을 나선지 23일만에 노전대통령은 육신으로 바위를 치고 산화했다. ‘노무현스러움’의 마침표다.

그는 바보인가? 죽음으로 맞선 특유의 승부수인가? 훗날 역사가 입을 열것이다. ‘인간 노무현’사(史)는 짧되 굵은 글씨로 쓰여 질 것이다.

파란만장의 궤적이었다. 그래도 유서는 짧았다. 열네 줄 171자의 단문 속에 농축된 당신의 사생관은 일체의 굴레를 벗어 던진 해탈의 경지에 벌써 닿아 있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무신론자인 노무현은 사신(死神)과의 대화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문답을 이미 끝낸 뒤였다.
봉하산 기슭에 안개가 채 걷히기 전이다. 꼭두새벽 여느 때와 똑같은 산 오름이었다. 마음은 저승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화장하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평소 말에는 굽이마다 토 달기가 장기였던 그가 아니던가.
얼마나 단출한가. 유별난 결백증 하나만은 저무는 순간에도 기어이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비석 마져‘아주 작은 것’으로 하라는 당부를 끝내 매달아 놓았다. 구차한 변명도 항변도 부재(不在) 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

죽음 뒤 혹여 사회적 풍랑(風浪)을 아서라 손사래 친 깊은 속이 반사되고 있음 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 5년의 추억은 명암기복(明暗起伏)이 거칠게 덧칠된 미완의 유화 한편과 만나는 기분이다.

 

양(陽)과 음(陰)이 사납게 부딪친 상혼(傷魂)들이 지워지지 않을 문신(文身)마냥 진하게 박힌 세월이었다. 그의 야심찬 정치 실험은 바람 잘날 없는

뒤틀림속의 몸부림 이었다. 소용돌이 속 분열의 대립각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편 가름의 아픈 상처는더욱 번지고 있는 오늘이다. 딱딱한 마네킹을
닮아버린 대통령문화의 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탈 권위 작업은 정치사에 깊이 각인될 노무현의‘명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감출 줄 모르는 직선적 솔직성

탓에 전라(全裸)의 파격적 언행은 용케도 쌓아 올린 약자(弱者)의 성(城)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좌파정부로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실패작”이다. 노전대통령은 퇴임직전 언론과의 공개 대화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노무현 스러움’이 물씬한 고백이다.


풍우대작(風雨大作) 그 중심의 풍운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불태우고 한줌의 재가 됐다. 국민장 추모의 발길은 백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짱’의 상징인 노사모의 노란풍선이 봉하 마을을 수놓았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어떤 경우든 노무현의 비극은‘찬미’될 수없다. 어떤 핑계도 궤변도 비극적 주검 앞에함부로 까불지 말아야 한다. 산산히 부서진 넋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통곡의 민심을 헤집고 이 판을 노리는 천골(賤骨)의 모사(謀事) 따위가 기웃해서는 더욱 안된다.

그의 영전에서 깊이 숨 들어 마시며 생각해야 할‘생각’들이 많다. 고민해야 할 숙제다.
고인의 죽음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오죽했으면 하는 한숨이 따라 붙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나 국가원수를 지낸 ‘나라어른’ 으로서 그 막중한

무게를 허망하게 산산조각 내서 옳았느냐는 물음은 당당할 수도 있다.
노무현의 본격적인 세상 출현은 인권 변호사 때다. 인권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시원적 사상에서 다짐 된다. 인권은 노무현의 깃발이었다. 그러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심이 더 슬피 울고 있는 까닭이다.


심금을 울린 유서지만 한 가닥 아쉬움도 없지 않다. 유서는 사적(私的)인 테두리에 머물렀다. 온 집안 식솔들이 줄줄이 얽혀버린 비리혐의가 죽음의

동기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변론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태평을 심량(深量)하는 대목이 자리 잡았더라면 하는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필자의 과욕일까?


봉하산 부엉이 바위에 오른 당신은 경호관에 게 담배를 찾았다. 담배는 없었다. 담배연기 한모금 마시고 싶어 했다. 담배 태우는 이는 그
목마름의 유혹을 안다. 애고지고 그래서 더욱슬퍼라. ‘인간 노무현’의 노래솜씨 18번은 조용필의 허공이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또 하나의 애창곡은 박재홍의‘울고 넘는 박달재’다 특히 2절의 노랫말을 좋아 했단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님의 꿈은 허공에 부서졌지만 노무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태어난 곳 꿈을 익혔던 부엉이 우는 산골에서 고이 잠드시구려. 담배 한 개비 빨간 불 붙여

영전에 올립니다. 이제 당신이 뿌린 모난 씨앗들도 말끔히 걷어 가시구려.

 

내일이면 8순인 이 나이에 오늘 내일 해 떨어지면 노래방 찾으려오. 진한 술 몇 잔 들이키고 ‘허공’과‘박달재’에 푹 빠질 생각입니다.

진혼곡으로 소납(笑納)해 주시구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참 멋진 말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