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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자 금성 여자 화해 하려면

碧空 2009. 5. 14. 16:47

[이훈범의 시시각각] 화성남자 금성여자 화해하려면 [중앙일보]

오피니언

 

 벌 한 마리가 방 안에 날아들었다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닫힌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신찬선사가 이를 보고 읊은 선시(禪詩)가 이렇다. “열린 문으로 나가지 않고 봉창만 두드리니 참으로 어리석도다. 백 년간 창호지를 뚫어본들 언제나 나갈 날을 기약할꼬(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期).”

지금 한나라당을 두고 하는 소리 같다. 대선 경선 때부터 찾는 출구가 아직도 깜깜하다. 경선 끝난 지가 일년 반인데 여전히 경선 중이다. 제 잇속 따라 친이니 친박이니 나누고 뭉쳐서 싸움질인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가 친이고 누가 친박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국민만 ‘짜증 지대로’다.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말 안 통하는 싸움에서 후자를 두남두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승자가 하는 짓에 실망한 탓일 수도, 패자에 기우는 인정 때문일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그래서) 난 우리의 인기 많은 금성여자 잘못을 좀 짚어봐야겠다. 싸움이란 원래 어느 한쪽 잘못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닌 까닭이다.

우선 친박 좌장이라는 인물의 원내대표 추대를 잘라 거부한 건 잘못이다. 추대가 원칙이 아니라지만 그 원칙이 국정안정이란 대의에 앞세워야 할 명분으론 약해 보인다. 5대0 민심은 변화를 요구하는데, 자신은 흙탕물에 발 담그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면 남자 쪽도 성의 표시를 한 거고 자기편 좌장도 의욕을 보인 일 아니었나 말이다. 남자 쪽이 신뢰를 저버렸다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남자를 국민투표로 뽑힌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당내 라이벌 정도로 여기는 듯한 태도로는 상대의 믿음도 기대하기 어렵다. 경선에 패했으면 승자에게 협조하는 원칙은 없던가. 승자가 촛불정국이라는 늪에 빠졌을 때도 그는 한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주류-비주류 갈등은 있기 마련이라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이건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이 아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의 싸움이다. 그것도 현재권력보다 더 클 수 있는 미래권력이다. 여자는 누가 뭐래도 가장 확실한 차기 대권주자 아닌가. 그가 출국하는 공항에서 눈도장 의원들끼리 발 밟고 밟히고, 월박(越朴)이니 주이야박(晝李夜朴)이니 우스개가 나오는 게 다른 이유런가. 그런 권력이 자신을 도울 의지가 없다는 생각에서 남자는 여자와 국정동반자로 함께 가길 꺼리는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바로 레임덕인데 누가 그걸 하겠나. 남자가 보기에 친박 의원들은 국정의 발목을 잡은 게 없지만 여자는 분명 발목을 잡고 있는 거다. 그게 인지상정인 거다.

이제 출구를 찾아야 할 때다. 두 사람이 만나 ‘통 큰 화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맞는 얘기지만 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안 통하던 말이 갑자기 통할 리 없다. 이미 몇 번 만났지만 그때마다 사이가 더 벌어졌을 뿐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갈등과 차이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 까놓고 계보정치를 하란 말이다. 계보정치가 별건가. 지금처럼 아랫사람 입을 빌려 자기 얘기 하는 게 계보요 계파정치다. 그런데도 헛되이 감추며 말과 속이 다른 정치를 하다 보니 애써 당론을 봉합한 뒤에도 다른 목소리들이 툭툭 튀어나와 도루묵이 되곤 해왔지 않았던가.

여자는 자기 지분에 맞는 권력의 분점을 요구하고 남자도 현실을 인정하고 나눠줄 건 나눠줘야 한다. 172석 거대 여당이 한목소리를 내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다. 속 시원히 계파정치를 선언하고 계파 대표들이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게 효율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자민당이 수많은 비판에도 파벌정치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도 그것만이 거대정당을 나누지 않고 끌고 갈 현실적 대안인 까닭이다.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현실이 그런 걸 어쩌랴. 문을 못 찾으면 창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사람이 벌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