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 모음
國寶 31호 경주첨성대
(慶州瞻星臺)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국내에 삼국시대의 석조 건축물이 몇 가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첨성대(瞻星臺)가 가장 오랜 천문대(天文臺)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더욱 귀중할 뿐 아니라, 현존하는 천문대 중에서는
동양에서 가장 오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첨성대는 선덕왕 재위시(632~646)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國寶 32 호 해인사 대장경판의판고
(海印寺大藏經板)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10 해인사
이 대장경판(大藏經板)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목판(木板)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 또는 일체경(一切經)을 말하며
불교경전(佛敎經典)의
총서(叢書)를 가리키는 말이다.
8만 4천 법문(法文)을 수록했다 하여
8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현존(現存) 최고(最古)의 대장경판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대장경판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文化遺産) 가운데 하나이다
國寶 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이 비(碑)는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16년(555)에
왕(王)의 국경순수기념비(國境巡狩記念碑)의 하나로
북한산(北漢山) 비봉(碑峰)에 세워졌던 것이며,
삼국시대(三國時代) 금석문(金石文) 중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것이다.
1400여년의 오랜 풍우(風雨)로 그 비신의 보존이 어려워
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1972년 8월 25일에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國寶 287호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대향로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國寶 5호 법주사쌍사자석등
(法住寺雙獅子石燈)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법주사
신라(新羅) 석등(石燈)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造成年代)는
성덕왕(聖德王)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國寶 7호 봉선홍경사사적갈비
(奉先弘慶寺事蹟碣碑)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봉선홍경사지(奉先弘慶寺址)가 있었던 곳은 인가(人家)도 드물었으며
잡초가 우거져 가끔 도적이 출몰하여 행인이 곤란을 당하였다고 한다
. 이에 고려(高麗) 현종(顯宗)은 창사(創寺)를 명(命)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 강민첨(姜民瞻)을 감독으로
동왕(同王) 12년(1021)에 200여칸을 완공하였다.
비를 세운 연대는 절을 세운 지 5년 뒤의 일이다.
國寶 8호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聖住寺郎慧和尙白月보光塔碑)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이 석비는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때 당(唐)나라에 수학하고 돌아온
낭혜화상(郎慧和尙)
무염(無染)(801∼888)을 위해 세워진 탑비로
전체높이 4.55m, 비신높이 2.52m, 너비 1.5m로
신라시대의
비석으로는 최대(最大)의 것이며,
최치원(崔致遠) 사산비(四山碑) 가운데 하나로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글씨는 최인곤(崔仁滾)이 썼으며 비를 세운 연대(年代)는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4년(890)으로 추정(推定)하고 있다.
國寶 24호 석굴암 석굴 (石窟庵 石窟)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석굴암(石窟庵)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0년(751)
당시의 재상(宰相)인
김대성(金大城)에 의해서
창건(創建)되었다고 전한다.
석굴암(石窟庵)의 조각(彫刻)들은 심오(深奧)한 믿음과
우아(優雅)한 솜씨가
조화(造化)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가장 뛰어난
세계적(世界的)인 걸작(傑作)으로
한국불교예술(韓國佛敎藝術)의
대표작(代表作)이다.
國寶 25호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 정면
(新羅太宗武烈王陵碑)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이 비석(碑石)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원년(元年)(661)에
무열왕(武烈王)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지금은 비(碑)의 대석(臺石)이었던 귀부(龜跌)와
비신(碑身) 위에 얹혔던
이수(이首)만이 남아 있다.
부(龜跌)의 길이 380cm, 너비 249cm, 높이 103cm, 이수 높이 106cm이다
國寶 29호 성덕대왕 신종
(聖德大王 神鍾)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은 부왕(父王)인
성덕왕의 위업(偉業)을 추앙(推仰)하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들여 이 대종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동왕(同王) 7년(771)에 이 종을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하였다.
종을 만들 때 아기를 시주(施主)하여 넣었다는
애틋한 속전(俗傳)이 있어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 왔다.
915년 종각과 함께 동부동(東部洞) 구박물관(舊博物館)으로 옮겼으며,
박물관이 이곳으로 신축 이전하게 되어 1975년 5월 26일에
이 종각으로 옮겨 달았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25∼11cm,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國寶 280호 성거산천흥사동종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속에 글을 새겨,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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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7호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 좌상
(佛國寺 金銅阿彌陀如來 坐像)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국사 극락전(極樂殿)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높이 166㎝로 이 상(像)은 전체적으로 장중한 모습이며
신체나 옷주름도 비교적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하였다.
불상은 조성연대가 국보 제26호와 거의 비슷한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國寶 64호 법주사석연지
法住寺石蓮池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법주사
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동자주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石欄干) 동자주와 유사하다.
연지의 조법은 정교하고 풍성하고 화려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대표가 될 만한 유물 중의 하나이다.
國寶 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瑞山磨崖三尊佛像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제작시기는
6세기말이나 7세기초로 보인다.
특히 이곳은 백제시대 중국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걸작의 불상이라 하겠다.
國寶 120호 용주사 범종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國寶 125호 녹유골호<부석제외함>
골호란 불교에서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매장하는데 사용된 뼈 항아리로,
삼국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까지 성행하였다
國寶 140호 나전단화금수문경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로
지름 18.6㎝, 두께 0.6㎝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
이와 같은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이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어 특히 주목된다
國寶 146호 강원도출토일괄유물
청동기시대 만든 의식용 유물들로 정교한 제작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신앙이나 의식 연구에도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물들이다.
國寶 162호 석수 (石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이다.
석수(石獸)란 돌로 만든 동물의 상(像)으로 좁게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을 말한다
國寶 164호 두침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비의 머리를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베개로,
위가 넓은 사다리꼴의 나무토막 가운데를 U자형으로
파내어 머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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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165호 족좌<왕>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으로
왕의 발 받침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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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171호 청동 은입사보상당초봉황문합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그릇(합)으로 높이 9.9㎝,
아가리 지름 18.3㎝의
크기이다.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은을 박아 장식(은입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으로,
아래 몸통과 뚜껑의 크기가 같아 안정감 있게 보인다.
國寶 174호 금동 수정감장 촉대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높이 36.8㎝, 밑지름 21.5㎝의 수정이 박힌
금동제 촛대 한 쌍이다.
國寶 195호 토우장식장경호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으로 어떤 형태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한다.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거나
주술적 의미, 무덤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2점의 토우장식 목항아리(장경호)로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34㎝, 아가리 지름 22.4㎝이고,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40.5㎝,
아가리 지름 2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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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198호 단양신라적성비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國寶 205호 중원고구려비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國寶 229호 보루각 자격루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
國寶 230호 혼천 시계
조선 현종 10년(1669)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天文)시계로, 홍문관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쓰였던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만든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로,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모델이었던 물레바퀴의 원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 시계인
자명종의 원리를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세계 시계 제작기술의 역사상 독창적인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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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88호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로, 능산리 절터의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나왔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높이 74㎝, 가로·세로 50㎝인 터널형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 정도로 파내어 턱을 마련하였는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國寶 290호 통도사대웅전및금강계단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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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303호 승정원일기
인조 1년(1623)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명을 담당하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처리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수량은 총 3,243책 393,578장에 이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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