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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명당은 만들어 가는 것” 현대 풍수 대가
지난달 31일 별세한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사진은 1997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의 북한 문화유산 조사를 위한 방북팀에 합류해 공민왕릉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이다. [중앙포토]
한국의 대표적 풍수 연구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74세.
‘명당은 만들어 가는 것’ ‘나에게 맞는 땅이 명당’이라는 자생 풍수 개념을 정립했던 이론가다. 무덤을 잘 쓰면 자손이 잘된다는 음택(陰宅) 풍수에 반대하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드는 풍수의 지론을 널리 알렸다. 조상들도 음택 대신 양택(陽宅), 즉 지금 사는 터의 풍수를 중시했다는 설명이었다.
고인의 풍수 이론은 실용적이고 긍정적이었다. 땅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가 있는 땅은 고쳐 쓰자는 것이 자생 풍수 이론이다. 2009년 본지 인터뷰에서는 개발과 관련해 “자연은 늘 선이고 인공은 언제나 악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철저한 계획과 관리에 따른 친환경적 개발에 찬성하는 풍수학자였다.
1950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81년 한국국토개발원 주임 연구원을 거쳐 전북대(1981~88년), 서울대(1988~93년) 지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학계에서 풍수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 대해 “씨름 선수가 권투 하는 것 같아서”라며 서울대에 사표를 쓰고 연구와 집필에 몰두했다. 이후 이론 연구와 더불어 대중 강연에도 나섰다.
2007년 낸 에세이집 『도시 풍수』에서는 “현대에 유용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풍수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풍수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가 주장한 도시 풍수는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 도시를 고향으로 삼고 풍수 또한 도시를 기반으로 닦아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빌딩을 산으로, 도로를 물로 보고 건축·조경·원예 등으로 구체화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고인이 큰 주목을 받은 계기는 2004년 논의 중이던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다. 그는 당시 계간 ‘황해문화’에 ‘풍수로 본 청와대 비극과 천도 불가론’을 썼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강행하면 앞으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반대한 이유는 이념보다 실용적인 것이었다. “우선 용수가 부족하다. 금강은 아직도 물 부족에 시달린다. 또 수도가 분할되면 두 집 살림의 낭비가 심각해진다”는 이유였다. 고인은 “정치적 이유로 강행하면 안 된다”고 했고 당시 친정부 세력의 반발을 샀다.
또한 청와대의 터가 나쁘다는 주장도 했다. 고인은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땅”이라며 “경복궁의 뒷문 신무문 위쪽은 죽은 자들의 땅이고 이쪽에 일본이 총독 관저를 지은 후 역대 조선 총독들은 전원 옥살이했고 암살당한 사람도 있다. 한국 대통령들의 말기와도 닮았다”고 지적했다.
남긴 책으로는 『한국의 자생풍수』 『한국풍수인물사』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한국의 풍수사상』 등이 있다. 모두 한국의 풍수 연구에서 중요한 토대가 되는 자료로 꼽힌다.
고인은 최근에 파킨슨병을 앓았고 1년 전부터 증세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화장(火葬)에 대해서도 열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풍수의 그 어떤 책을 봐도 화장하면 안 된다는 말은 없어요. 나도 화장할 겁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일 예정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증숙씨와 아들 준보(경찰)씨, 딸 전경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