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이야기
☆여름엔 妾팔아 부채사고~!
오늘은 우리민족의 오랜 風流 와 멋, 부채에 대해서 알아 볼까요!
몇일전 KBS의 珍品名品 (2020년 7월19일 방영)에서 그림이 그려진 合竹扇 2점이 출품 되었는데, 한점은 1910년 에 貫齋 李道榮(心田 安中植의 제자)이 大韓民報 新聞창간 1주년을 맞아 그신문 사장인 葦蒼 吳世昌 에게 그려준 것이고 '漢水如帶 終南如砥' 라는 題畵詩가 써있고 한강과 남산.수양버들 이 그려져 있는데, 한강물과 남산을 숫돌 삼아 칼날을 갈아 直筆言論을 유지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또한점은 紅梅花가 그려진 劍如 柳熙綱의 작품인데 작가가 왼손으로 쓴 멋진 봄에대한 내용의 題畵詩가 특히 인상적 이었으나 詩句는 기억나지 않는다.
패널로 출연한 國樂人 남상일 이 소지하고 나온 합죽선도 눈에 띄었는데 '天生我才 必有用' 이라는 큰글씨가 扇面에 그림같은 필치로 쓰여 있었고, 이 文句는 李白의 將進酒辭의 한 귀절이라 눈에 들어 왔는데, 합죽선은 또한 국악인들의 필수품 이기도 하지요!
출품된 두작품은 300만원 이라는 高價의 監定價가 나와서 한편 놀랐다. 이렇듯 부채는 실용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멋과 풍류가 넘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40년가까이 古美術을 취미로 愛好하다 보니, 저도 그동안 여러가지 合竹扇을 다수 수집해본 경험이 있는데, 역시 합죽선은 최고의 멋과 풍류를 느낄수 있는 우리 민족의 훌륭한 창작품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그 전통이 끊기지 않고 영원히 우리 후손들이 이어 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자료를 모아 정리해 본다.
●단오부채(端午扇) =人情
'冬至달력에 端午부채' 라 했듯이 단오가 지나면 바로 여름철이 되므로, 단오 부터는 부채가 인사이다. 수릿날(端午節)은 설. 대보름. 한가위와 더블어 4대 명절이어서 잘 차려입은 단오빔에 창포잡이와 씨름, 그네 등의 풍속이 함께 했다.
궁중에서도 이날 임금님은 부채를 臣下들에게 下賜 했는데 이를 단오부채 端午扇 라 하였다. 仁祖임금은 평안도 변방을 지키는 安州의 군사들에게 부채 370자루나 내렸다(1637, 인조15)는 기록도 있는걸로 봐서 朝廷의 신하들에게만 하사 한것은 아닌것같다.
백성들도 친지나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하고 서로 살가운情 나누며 오가는 人情物이 부채였다. 노부모, 이웃 어른께 孝道부채 드림이 참 효도되고, 손님오면 찬물冷水 보다 먼저 내놓는게 부채였다.
이밖에도, 宮에서는 端午帖 이라 하여 祝詩를 적은 帖子를 각 殿의 기둥에 부치고 또, 붉은 글씨로 벽사문을 쓴 端午符도 문설주에 붙였다.
●부채 --- 부+채(부+체)
扇曰 孚采(鷄林類事, 北宋 孫穆)
扇 부체 션(訓蒙字會, 崔世珍 1527)
扇=戶+羽 :날개같이 움직이는 외짝門.
< 紙竹合婚 生子淸風, 종이와 대가 얼려 맑은바람 낳는다> 부채를 상징하는 말이다.
부채(fan, vannus)는 [ (바람을) 부치는 채] 의 준말로 부채가 되었다.
바람이란 부정거리 뜻도 들어 있어 박수무당이(서양에서도 샤먼) 반드시 지니는것이 부채이기도 하다.
"여름엔 妾팔아 부채사고~~"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채를 귀하게 여겼고, 여름 한철 지낼려면 반듯이 갖춰야할 물건이였다!
경남 의창 다호리 무덤 1호憤 에서는 BC1세기 때의 깃털부채羽扇 옻칠자루 2점 (33.6cm, 12구멍)이 나와 눈길을 끌었고, 高句麗 안악 3호분(357년) 벽에 그려진 주인남자도 깃털 부채를 쥐고 앉아있다.
三國史記에는 수(놓은)부채 (繡扇, 애장왕 807년)와 孔雀扇(918년, 고려太祖 즉위에 견훤이 보낸)들도 보여 우리의 부채가 매우 오래전 부터 있었음을 알겠고, 중국.일본 에서는 高麗扇, 朝鮮扇으로 이름이높았고 다투어 구입코자 해서 金값 이었다.
●그럼 부채의 종류에는 어떤것이 있을까요?
○우선 그호칭을 알아보자~!
白扇, 漆扇, 油扇, 羽扇, 皮扇, 竹扇, 草扇, 松扇(소나무살), 玉扇, 螺鈿扇, 華角扇, 象牙扇, 骨扇, 絹扇, 繡扇, 苧扇, 布扇, 紙扇, 梧葉扇, 蓮花扇, 蓮葉扇, 芭蕉扇, 仙女扇, 孔雀扇, 편복扇(박쥐), 太極扇, 알태극선, 尾扇, 細尾扇, 까치선, 호박부채, 방아실부채 =花扇(輪扇), 八德扇=八用扇, 드림(듸림)부채, 團扇, 摺扇, 摺疊扇, 貼扇, 쥘부채, 高麗扇, 朝鮮扇, 방구부채 등등 일반적인 부채의 호칭도 굉장히 많다.
別扇(부채살이 50.40살), 班竹扇(생漆, 朱漆=王), 五明扇 (舜임금), 遮面扇, 婚扇=眞珠扇, 孝子扇=忠孝扇, 合心扇= 一心扇= 畵摺扇, 書畵扇, 百扇(여러 종류의 그림), 烙畵扇 = 僧頭扇, 魚頭扇, 蛇頭扇, 百摺扇(50살), 曲頭扇 (곱장선)= 軍扇, 舞扇, 巫扇 등 특수용도의 부채도 참 많다.
색깔, 재질, 모양, 용도, 그림 등에 따라 그 호칭이 달라지고 많기도 한데 일반 부채의 종류를 크게 분류하면,
대략 <방구부채(團扇,圓扇, rigid fan> <접부채(摺扇, folding fan)> <쥘부채> 이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방구부채는 막부채이고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부채인데 우리가 알고있는 모양이 고정된 일반 부채이다.
타원형의 둥근부채 날개에 자루가 큼직막하고 둥굴다. 대나무 자루에 붙은 살을 쬬개여 만든것이 가장 서민적이고 대다수 인데, 노란 치자물을 들이고 식물성 기름칠을 하여 사용하면 때가 덜 탄다.
일바쁜 농부들이 부들같은 풀로 그자리에서 바로 엮어 만들어 햇빛도 가리고, 깔고도 앉고, 불도 일구고, 벌레도 잡는등 무려 8가지 용도로 쓴다고 해서 이걸 八德扇 이라고도 했다.
○접부채(摺扇, folding fan) 는 폈다 접었다 할수있는 부채다. 모두 접선摺扇 이라고 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펴서 모아쥐는 쥘부채도 여기에 해당된다. 모양이 可變的인 부채다.
접부채는 막쓰기에는 조심 스러워 한가한 상류층에서 많이 쓰였다.
만드는 재료.접는 방법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조선 왕조실록등 기록에는 摺扇, 摺疊扇이 많이 보이는데, 아마 합죽선을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쥘부채는 펴서 모아쥐는 부채로 펴졌을때 윗쪽이 둥근 삼각형을 이룬다. 대표적인 것이 合竹扇이다.
대나무 외의 재료로 만든 쥘부채가 많기 때문에 합죽선이 곧 쥘부채라고 할수는 없지만, 쥘부채 하면 합죽선이 대표된다.
●合竹扇
○우리나라의 문화가 대부분 중국에서 전래되어 우리것으로 승화 시겼는데, 합죽선은 한국 고유의 창작품으로 중국에서 인기가 많아 중국인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한국이 宗主國이다.
조선 15세기초 중국에서는 高麗扇 한자루에 黃金 2냥에 팔렸고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
중국에 가는 使臣을 隨行하는 사람들은 합죽선을 많이 소지 해야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이 번지자, 朝鮮 3代王 太宗은 1人當 200個 미만으로 所持 하도록 지시한다 (1410년 4월 朝鮮王朝 實錄).
○書畵扇 또는 摺扇畵를 남긴 조선시대 有名인사는 恭齋 윤두서, 謙齋정선, 豹菴 강세황, 檀園 김홍도, 秋史 김정희등 수도없이 많은데, 산수와 인물을 함께 그리거나 난초, 물새, 자연풍경 등을 주로 그렸다.
한국의 합죽선이 선비들의 멋과 風流를 살리는 남성적인 장신구 였던데 반해, 유럽의 부채들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소도구였다.
○부채살의 數에 따라 사용 하는 사람의 신분이 달랐다. 왕. 세자등 왕족들이 쓰는것은 대나무살이 50개로 종이가 100번 접히는 百摺扇을 썼고, 사대부 兩班은 살이 40개, 일반 良民들은 30개이하 (대부분 25개 정도) 의것을 썼다.
합죽선은 扇面에 그림이나 글씨로도 멋을 냈지만, 부채 손잡이 끝에 선추扇錘를 달아 극도의 멋을 부렸는데 벼슬이 있어야 扇錘를 달수 있었고, 職位의 高下에 따라 扇錘의 재질이 다르고 끈의 길이가 달랐다.
고위직 일수록 끈의 길이가 길었고, 政丞.判書들은 扇錘가 玉이나 象牙등이고, 그길이가 땅에 닿을 정도라는 기록도 있다.
1124년 北宋의 使臣으로 高麗를 다녀간 徐兢은 皇帝 보고서인 [高麗圖經]의 '畵摺扇' 편에 "한겨울에도 들고 다니며 접었다 폈다하는 신기한 물건"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합죽선을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생활용품, 그 이상의 愛玩用 예술품으로 여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扇子廳
조선시대에는 觀察使 監營이 있는 전라도 全州와 경상도의 晉州, 두군데에 扇子廳을 두어 王室에 進上하거나 朝貢品, 官用, 사대부 등이 쓸 부채를 만들어 公納케 했다.
합죽선을 잘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대나무. 종이, 장인정신이 어우러져야 훌륭한 예술품이 탄생한다.
전국에서 簡壯紙. 扇子紙를 가장 잘만드는 匠人이 전주와 남원에 가장 많은 23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전주에서 품질좋은 종이를 많이 만들었다.
대나무는 지금과는 기후가 달라 남원以南 에서만 무성하게 잘 자랐다. 이런 사유로 전주와 진주에만 선자청이 있었다.
全羅監營의 선자청은 4개棟의 건물이 있었고 그옆에 종이 만드는 紙所가 있었는데, 1920년까지 선자청의 기능이 계속 되었던것 같고, 진주 선자청은 훨씬전 조선시대에 이미 폐지 되었다.
전주는 일제때 선자청이 폐쇄된뒤 全州의 5個洞에서 扇子廳 匠人들이 기술을 傳承 시켜 최근 까지도 합죽선을 만들어 내고있으며, 무형 문화재 扇子匠이 기술을 전승시키고 있다 .
1941년 신문보도를 보면 전주에서 년 약70만 자루의 합죽선을 만들어서 전국에 공급하였는데, 70년대 이후 선풍기가 보급된 이후 합죽선 수요가 급속히 줄어, 지금은 그명맥만 維持하고 있는 실정이다.
傳統文化의 繼承 次元에서 심히 아쉽고,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합죽선의 살은 대나무 속살을 쓰고, 양측 갓대에는 短節이라는 病이든 대나무 마디를 쓰는데, 마디가 보통 5節.9節.11節.13節의 대를 붙인다. 마디가 짧고 수가 많을수록 고급으로 친다. 9마디가 있는것은 '九折(節)竹 合竹扇' 이라고 한다.
갓대와목살(종이가 없는 손잡이 쪽)에는菊花. 박쥐문양을 烙竹(인두로 지짐)한다.
살에 붙이는 종이를 속딱紙라 하는데 전주.남원은 조개지, 나주는 속딱개지 라한다.
한국은 부채살에 한쪽만 조개지를 바르는데, 중국은 양쪽에 다 바른다.
사복砂卜은 합죽선의 가장 중요한 공정으로 모든살과 갓대를 고정하는 역활을 하는 못釘 인데, 이걸 잘못 시공하면 접었다 폈다도 잘 안되고 부채를 접었을때 부채끝이 오므라 들어 날씬한 모양을 오랫동안 유지 하기가 어렵게 된다.
砂卜에 연결된 둥그런 고리에 扇錘를 끼우게 된다.
갓대 손잡이 밑 부분에는 검은 먹감나무나 먹물먹인 버드 나무를 아교로 붙여 까맣게 보이게 하는데 이걸 貫子(水沈木: 검은 단단한 나무사용)라 한다.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붙이니까 하얗게 보이지만...
○합죽선은 큰것 보다는 작은것이 만들기가 더 어렵고,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전주에서 만든 합죽선을 비교해 보면, 70년대 까지 만든것은 그래도 잘 만들어 졌고 전통미와 장인정신이 아직은 살아 있는데, 8.9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는 기계를 많이 써서인지 날림 시공이 눈에 띌 정도다.
합죽선을 소장하실 분은 70년대 이전제작, 약50년 이상 된것을 구입하는것이 소장 가치가 좋다. 최근에는 중국, 베트남 등에서 들어오고 재료도 대나무가 아니고 플라스틱 등이 사용되기도 하여, 전통적인 우리 합죽선의 가치도 덩달아 같이 추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16세기후반 동양에서 포류투칼로 부채가 건너가 유럽 여성의 필수품으로 17~8 세기부터 유행하고, 상아같은 뼈와 향나무를 앏게 저민쪽을 잇대어 살이 곧 부채面이 되는 '片살부채' 와 '레이스부채' 의 유행도 19세기에 성행 하면서 이것들은 중국.일본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끝으로 부채의 九德을 열거해 본다. 즉, 바람을 일으키는 風德, 예술품으로 감상하는 藝德, 공연.巫俗의 도구로 쓰이는 具德, 가리고 피할수 있는 隱德, 접어서 지휘봉으로 쓰이는 指德, 임시 방석이 되어주는 席德, 물건을 임시로 담아두는 盤德, 해충,猛犬 등을 막아주는 攘德, 가려울때 긁는 도구가 되어 주는 搔德 등이 그것이다.
우리 전통 民俗品중 가장 한국적인 것을 꼽으라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合竹扇, 小盤, 조각보 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韓國的 이라는 말은 한국인의 혼과 美感.情緖가 베어 있고, 한국傳統의 맥을 연연히 이어온다는 의미 이며, 한편으로는 세계에 내놓으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뜻 입니다.
이렇듯 世界人이 주목하고 있는 우리 민속품을 우리가 먼저 소중히 保存. 發展. 繼承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부채와 특히, 合竹扇을 중점으로 호칭, 쓰임새, 優秀性, 선비들의 멋치레와 風流, 전통적인 가치, 제작 포인트 등을 설명 하였습니다. 價値를 아는것 보다 더 중요한것은 그것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保存 하여 지켜야하고, 後代에 傳承 시키는 것입니다.
내것이 아무리 좋고 훌륭해도 배우지 않고 맛들이지 않으면, 부뚜막에 소금일 뿐이다!!!
한겨울 부채 보낸 뜻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타는 불을 끄라고 보내셨나?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인들
어이하리!
(黃眞伊)
☆혹시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고증이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 하겠습니다!
庚子年 季夏上澣 永湖齋에서
서울시 문화해설사 金向柱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