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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119-120

碧空 2022. 3. 10. 20:09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제119,120화
?(헌종 3)흉흉해진 민심과 흔들리는 왕실


이후에도 이양선의 출몰은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민심은 흉흉해졌습니다.

외세의 침투가 시작되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들도 서서히 깨달아 갔습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그에 합당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척사 정책을 고수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이 또한 견제 세력이 없는 세도정치의 폐단이었습니다.
한편 어엿한 청년이 된 헌종은 점차 외척인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헌종은 궁에 들어온 외숙 조병구를 불러 그의 죄를 따지며 "외숙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조병구에 대한 경고이자 풍양 조씨 세도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조병구는 황급히 궁을 빠져나와 수레에 올라탔는데,

그런데 그만 수레가 뒤집어져 조병구는 땅에 머리를 박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외척 세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을 펼쳐볼 새도 없이 헌종은 1849년(헌종 15) 6월 6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헌종이 혈육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왕실에는 그의 뒤를 이을 6촌 이내의 친족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은 친족들도 신유박해로 모두 죽고 없었습니다.

이것은 500년 가까이 이어 온 왕실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헌종 사후 그 후사를 잇는 일은 흔들리는 왕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사이의 세력 다툼에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이 죽자마자 옥새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영조의 유일한 혈손인 전계군(全溪君,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아들)의 아들 이원범(李元範)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후사를 잇게 했습니다.

결국 다시 안동 김씨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간 셈이었습니다.

헌종 재위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자연재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역병이 돌아 삶의 터전을 버린 백성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민란도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도층은 권력 다툼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강화도령' 이원범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헌종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 내에 위치한 경릉(景陵)입니다.

?다음 제120화 계속~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제120화
?(철종 1)아무런 준비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 강화도령

철종은 1831년(순조 31)에 전계대원군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전계대원군은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서자인데, 전계군의 일가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와 사면을 반복했습니다.

전계군의 이복형인 상계군(常溪君)은 정조 때 홍국영의 역모에 연루되어 강화도에 유배된 후 죽었고, 아버지 은언군은 신유박해(순조 1) 당시에 부인 송씨, 며느리 신씨(상계군의 부인)와 함께 사사되었습니다.

전계군 본인도 큰아들 회평군(懷平君)이 역모에 연루되어 옥사하는 바람에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전계군은 세 명의 부인으로부터 각각 아들 한 명씩을 낳았으며,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이 철종입니다.

이름은 변(昪), 초명은 원범(元範), 자는 도승(道升).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순원왕후는 영조의 유일한 혈손인 전계군의 아들 이원범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습니다.

<헌종실록>에는 대왕대비가 하교하기를 "종사의 부탁이 시급한데 영묘조(英廟朝)의 핏줄은 금상(今上)과 강화에 사는 이원범뿐이므로 이를 종사의 부탁으로 삼으니, 곧 광(㼅)의 셋째 아들이다." -

당시 이원범은 학문과는 거리가 멀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혀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철종은 헌종이 죽은 지 이틀 만인 6월 8일에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지고, 그다음 날 창덕궁에서 즉위했습니다.

당시 철종의 나이 19세였지만 친정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순원왕후가 처음부터 철종을 왕위 계승자로 점찍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덕흥대원군의 종손인 이하전(李夏銓)으로 후사를 이을 생각이었는데,

항렬상 헌종의 조카뻘인 이하전 주위에 벽파 세력이 많은 것을 염려한 안동 김씨 세력이 순원왕후를 설득해 후계자를 바꾸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만한 왕을 앉혀 놓고 풍양 조씨에게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철종은 학식도 덕망도 부족한 왕이었기에, 덕분에 궁정은 안동 김씨의 손에 좌지우지되었습니다.

철종은 1851년(철종 2)에 순원왕후의 친척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그가 철인왕후(哲仁王后)입니다.

이로써 안동 김씨는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하며 세도정치를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철종에게는 이 밖에 7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철인왕후와 후궁들이 낳은 자식들은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궁인 범씨 소생의 영혜옹주가 철종의 유일한 혈육이었습니다.


?다음 제121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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