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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사천자문_94.紀編綱目 燃藜室述?(기편강목 연려실술) 94.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동사강목·연려실기술-우리의 역사를 기록하다

碧空 2013. 10. 28. 17:13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동사강목·연려실기술-우리의 역사를 기록하다

한정주 한국사천자문

紀編綱目 燃藜室述

(기편강목 연려실술)
기전체·편년체·강목체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 있다.

 

紀(벼리 기) 編(엮을 편) 綱(벼리 강) 目(눈 목)
燃(탈 연) 藜(명아주 려) 室(집 실) 述(펼 술)

 

1).동아시아 역사서의 편집체제 - 기전체·편년체·강목체

유학의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예부터 역사 기록과 역사서(歷史書) 편찬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앞의 여든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살펴보았듯이, 유학자들에게 역사 기록 혹은 역사서란 곧 후대의 사표(師表)일 뿐 아니라 역대 임금과 신하들의 언행(言行)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살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상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유학자들이 정치를 도맡다시피 한 고려 시대부터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여러 서적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저술할 때 김부식(金富軾)이 참고했다는 『삼국사(三國史)』를 고려 건국 초기 편찬했는가 하면, 『칠대사적(七代史跡)』, 『고금록(古今錄)』, 『편년통록(編年通錄)』, 『삼국유사(三國遺事)』, 『제왕운기(帝王韻紀)』, 『본조편년강목(本朝編年綱目)』, 『세대편년요록(世代編年要錄)』, 『사략(史略)』 등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역사서들이 국가 혹은 개인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대사업(大事業)으로 일상적인 역사 기록과 역사서를 남긴 시대는 단연 유학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 시대였습니다. 조선은 개국 초기인 세종(世宗)과 문종(文宗) 때 이전 왕조(고려) 시대의 역사서인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편찬했습니다. 그리고 사관(史官)을 두어 매일같이 조정의 대소사(大小事)와 임금과 관료들의 언행(言行)을 기록해 두었다가, 왕이 사망하는 즉시 그 시대의 역사를 총 정리한 『실록(實錄)』을 편찬·간행했습니다. 역사 기록과 역사서 편찬으로 하루해가 뜨고, 하루해가 지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실학자(實學者)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천하관(天下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개인들이 저술한 각종 역사 서적들이 크게 유행을 이루었습니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발해고(渤海考)』, 『해동역사(海東歷史)』 등이 당시 실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쓰고 발간한 대표적인 역사서들입니다.

여하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예부터 국가 차원에서든 혹은 개인 차원에서든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서를 편찬할 때에는, 반드시 일정한 역사 서술 및 편집 체재(體裁)에 따랐습니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 '紀編綱目(기편강목)'은 동아시아의 역사 서술 및 편집 체재를 대표하는 기전체(紀傳體)·편년체(編年體)·강목체(綱目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 세 체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孔子)가 저술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역사서 『춘추(春秋)』가 취하고 있는 편년체입니다. 편년체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일기(日記)처럼 연(年)과 월(月)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고 기록한 역사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편년체는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하기 전까지, 유일무이한 역사 서술 및 편집 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사기』에서 편년체와는 전혀 다른 기전체라는 새로운 형식의 역사 서술 및 편집을 보여준 이후, 편년체는 기전체에 밀려나게 되고 맙니다. 기전체는 연월(年月)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본기(本紀 : 황제국의 역사)」·「세가(世家 : 제후국의 역사)」·「열전(列傳 : 역사 인물)」·「표(表 : 연대기)」·「서(書 : 국가 제도와 문물)」·「지(志 : 인문 지리)」로 나누어 역사서(歷史書)를 저술하고 편집하는 체재입니다. 사마천이 최초로 소개한 기전체는 편년체의 취약점, 즉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이나 간단한 연대기적 서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와 인물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기전체는 편년체를 대신하여 동아시아 국가에서 정사(正史)를 서술하고 편집하는 대표적인 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강목체는 편년체의 변종(變種)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년체처럼 연월(年月)에 따라 기록하되, 역사 서술의 기본 줄거리가 되는 내용은 큰 글자로 써 강(綱)이라고 하고, 이 강(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내용을 목(目)이라고 했기 때문에 강목체(綱目體)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강목체는 편년체의 형식을 살리면서 앞에서 말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역사 서술 및 편집 체재라고 하겠습니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이 대표적인 강목체 역사서입니다.

그럼 기전체·편년체·강목체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역사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기전체를 대표하는 역사서로는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조선시대에 편찬한 『고려사』를 들 수 있습니다. 또 편년체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목체의 역사서로는 조선 영·정조 때 안정복(安鼎福)이 '고조선(古朝鮮)부터 고려(高麗)까지의 역사'를 다룬 『동사강목(東史綱目)』을 들 수 있습니다.

 

2).기사본말체로 쓰인 또 다른 역사서 -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앞서 말한 기전체·편년체·강목체와는 또 다르게 쓰인 역사서도 있었습니다. 그 서책은 정조(正祖) 시대 이긍익(李肯翊)이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라는 역사 서술 체재에 따라 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입니다. 기사본말체는 특정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서술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그 발생 원인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결과 및 영향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연려실기술』은 조선의 태조(太祖)부터 숙종(肅宗) 시대까지 중요한 사건을 각각의 임금별로 다루고 있는데, 태조 시대에 관한 서술을 예로 들어 소개하면 아마도 기사본말체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려실기술』의 제1권에 실려 있는 「태조조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을 살펴보면, '태조(太祖)', '선계(璿系 : 왕실의 세계)', '잠룡시사(潛龍時事 : 왕이 되기 전의 주요 행적)', '고려정란 왕업조기(高麗政亂 王業肇基 : 고려 정치의 문란과 왕업의 일어남)', '고려수절제신부(高麗守節諸臣附 : 고려에 절개를 지킨 여러 신하들)', '개국정도(開國定都 : 나라를 세우고 도읍지를 정함)', '유배제왕씨(流配諸王氏 : 여러 왕씨들을 유배 보냄)' 등 주요 사건들을 정해 그 원인 → 전개과정 → 결과 및 영향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9권에 실려 있는 중종(中宗) 시대를 다룬 「중종조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을 보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긍익은 이 시대의 주요 사건으로 '심사손위야인소살(沈思孫爲野人所殺 : 심사손이 야인에게 살해당하다)', '삼간용사(三奸用事 : 세 명의 간신이 권력을 잡다)', '박경빈복성군지옥(朴敬嬪福成君之獄 : 경빈 박씨와 복성군의 옥사)', '대소윤쟁권(大小尹爭權 : 대윤과 소윤의 권력 다툼)' 등을 정해 놓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논리와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사본말(紀事本末)' 곧 중요한 사건의 본말(本末 : 원인과 결과)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이 역사기록 및 편집체재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사본말체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기전체·편년체·강목체와 비교해 당대의 학자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역사 서술 및 편집 체재와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특별히 여기에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긍익이 『연려실기술』을 저술할 때 400여 종에 달하는 각종 서적들을 참고했는데, 정사(正史)의 역사서보다는 야사(野史)의 역사서를 더 중요하게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역사서의 한 분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야사류(野史類)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각잡기(東閣雜記)』, 『기재잡기(寄齋雜記)』, 『해동잡록(海東雜錄)』 등은 이긍익이 『연려실기술』에서 특별히 자주 인용한 야사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연려실기술』은 기사본말체를 대표하는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조선 시대의 야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최초이자 최고의 역사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연려실기술』은 조선시대의 야사를 집대성해 놓은 총서(叢書)였던 셈입니다.

 

11 近肖卓識 襛移泗沘 근초탁식 농이사비

근초고왕은 식견이 뛰어났고, 성왕은 사비성으로 옮겼다.

近(가까울 근) 肖(닮을 초) 卓(높을 탁) 識(알 식)
襛(두툼할 농) 移(옮길 이) 泗(물 이름 사) 沘(강 이름 비)

12 人咸服炤 興厚慈悲 인함복소 흥후자비

사람들은 모두 소지마립간을 따랐고, 법흥왕은 후덕하고 자비로웠다. 

人(사람 인) 咸(다 함) 服(옷 복) 炤(밝을 소)
興(일어날 흥) 厚(두터울 후) 慈(사랑 자) 悲(슬플 비)

13 駕露貌偉 動止質儉 가로모위 동지질검

가락국의 수로왕은 생김새가 빼어났으나, 행동거지는 질박하고 검소했다. 

駕(멍에 가) 露(이슬 로) 貌(모양 모) 偉(클 위)
動(움직일 동) 止(그칠 지) 質(바탕 질) 儉(검소할 검)

14 登品叱尸 坐吹銍仇 등품질시 좌취질구

거등왕·마품왕·거질미왕·이시품왕과, 좌지왕·취희왕·질지왕·구형왕이다.(가야국왕) 

登(오를 등) 品(물건 품) 叱(꾸짖을 질) 尸(주검 시)
坐(앉을 좌) 吹(불 취) 銍(낫 질) 仇(원수 구)

15 苔斯多含 倂呑伽倻 태사다함 병탄가야

이사부와 사다함이, 가야를 정복해 신라의 영토로 만들었다. 

苔(이끼 태) 斯(이 사) 多(많을 다) 含(머금을 함)
併(아우를 병) 呑(삼킬 탄) 伽(절 가) 倻(가야 야)

출처 : 시간과공간
글쓴이 : 재휘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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