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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중종3
碧空
2013. 10. 2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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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에 나아갔다. 검토관(檢討官) 정사룡(鄭士龍)이 아뢰기를,
“송(宋)나라 이종(理宗)이 비록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강목(綱目)》을 진강하게 하고, 또 《강목》을 국자감(國子監)에 보내 간행하게 하였으니 이학(理學)을 높인 임금이라 이를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도 이학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하매, 참찬관(參贊官) 이자화(李自華)가 아뢰기를,
“근자에 이학을 아는 자는 적어서 오직 김응기 한 사람뿐입니다. 제왕의 학문은 심학(心學)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니, 다스리는 도가 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고, 정사룡이 아뢰기를,
“세종 때에는 김구(金鉤)·김말(金末)이 이학을 알았는데, 그 당시 유생들이 모두 이에 감화되어 이학을 아는 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이학을 아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상께서 이미 이학에 뜻을 두셨으니 아래는 자연 이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이자화가 아뢰기를,
“이학을 아는 자가 대마다 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쉽사리 많이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세종 때에는 김구·김말뿐 아니라, 모든 유생들이 많이 이학을 알았던 것은 세종께서 이학을 숭상하시어 상행 하효(上行下效)4757) 한 명확한 징험입니다.”
하고, 검토관(檢討官) 채침(蔡忱)이 아뢰기를,
“세종·성종 때 이학을 아는 자가 많았으니 이는 세종과 성종께서 잘 가르치신 효과입니다. 폐조 이후부터는 이학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임금이 만약 이학에 뜻을 두신다면 사람마다 자연 이학을 일삼게 될 것입니다.”
하고, 정사룡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옛날에 이행(李行)이란 사람이 있어 중국으로부터 이학을 전해 왔고, 중[僧] 만우(卍雨)가 이를 전수하므로, 세종이 문사들로 하여금 그에게 수업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하고, 이자화가 아뢰기를,
“지금의 유순(柳洵)이 고사에 통달하고 또한 이학도 아는 사람이니, 순이 죽기 전에 젊은 문사들을 보내 전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순이 죽으면 전할 수 없을까 신은 걱정됩니다.”
하고, 정사룡이 아뢰기를,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학을 아는 재상이 있을 때 나아가 배우는 것이 옳다.”
하였다. 정사룡이 아뢰기를,
“원(元)은 이적(夷狄)의 임금인데도 요추(姚樞)와 허형(許衡)을 등용하여 도학(道學)을 전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 동방의 나라이겠습니까!”
하고, 채침이 아뢰기를,
“근래 재변이 자주 이르러 성안에서 화재가 많이 나고 한강물이 흐려지는가 하면, 지난해부터는 태백성이 경천(經天)하고 있으니 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다시 조심하고 반성하여 재변을 없애는 방도를 생각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바는 매우 당연한 말이다. 나 역시 항상 이것 때문에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다.”
하였다. 정사룡이 아뢰기를,
세종 때 태백성이 주현(晝見)하였는데, 말하는 자가 ‘우리 나라의 재앙이 아닙니다.’고 하니, 세종께서 ‘어찌 그러랴.’고 하시면서 날마다 조심함으로써 하늘에 순응하는 실지를 삼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야대란 고사를 논란하는 것이니, 치란과 흥망을 논란하여야 치도(治道)에 유익하리라. 승지 및 경연관은 당(唐)·우(虞) 이하 오늘날까지의 치란과 흥망을 불러일으키게 된 그 이유를 논란하라.”
하였다. 이자화가 아뢰기를,
“당(唐)·우(虞)이하의 치란과 흥망은 그 이유가 군자와 소인을 등용하는 데에 불과하였으니, 군자를 등용하면 잘 다스려지고 소인을 등용하면 어지러워지는 것이 고금의 공통된 이치입니다.”
하고, 정사룡이 아뢰기를,
“당(唐)·우(虞) 시대는, 순(舜)임금이 원개(元凱)4758) 를 등용하고 사흉(四凶)을 처벌하므로 천하가 다스려졌으니, 이는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친 것입니다. 은(殷)나라 탕(湯)임금과 주(周)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은 이윤(伊尹)·여상(呂尙)·주공(周公)·소공(召公)을 등용하여서 천하가 다스려졌으며,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임금의 도를 잃어 주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선왕(宣王)이 이를 중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중산보(仲山甫)·방숙(方叔)·소호(召虎)를 등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한(漢)나라의 광무제(光武帝)와 선제(宣帝)는 모두 군자와 소인을 잘 분별하므로 한나라가 잘 다스려졌고, 진(晉)나라에 와서는 세속이 허무(虛無)를 숭상하고 사습(士習)이 크게 변하여 어진이가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어찌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윗사람이 들어 쓰지 못했을 뿐입니다. 수(隋)나라 문제(文帝) 때에는 왕통(王通)이 열 두 가지의 태평책(太平策)을 올렸으나, 봉덕이(封德彝)·우문 사급(宇文士及) 같은 소인이 있었기 때문에 왕통 같은 어진이가 쓰여지지 못하였습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은 능히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여 왕규(王珪)·위징(魏徵) 및 십팔 학사(十八學士)를 등용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어진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허경종(許敬宗)은 음험(陰險)한 소인으로 또한 십팔 학사에 끼어 있었고, 우문 사급은 곧 수나라를 망친 소인인데, 당나라 태종이 친근히 들어 써서 의심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태종의 다스림이 태종에 그치고 말게 된 원인입니다. 현종(玄宗)이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을 등용하여 개원(開元) 4759) 의 다스림은 정관(貞觀) 4760) 때보다 훌륭하였는데, 천보(天寶) 4761) 이후부터 점점 처음 같지 못하여 임금의 마음이 한번 여총(女寵)에 고혹되매 모든 일은 이로부터 무너지고 말았으니, 어떻게 군자·소인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끝내 안(安)·사(史) 4762) 의 난을 불러 일으켜 파천(播遷)의 곤욕을 당하였습니다. 헌종(憲宗)은 두황상(杜黃裳)과 배도(裵度) 등의 어진이를 등용하여 처음에는 잘 다스릴 것 같더니, 끝내는 방사(方士)의 술법에 빠져 금단(金丹)을 먹고 갑자기 죽었습니다. 헌종으로 하여금 시종 여일하게 하였다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습니까! 목종(穆宗)이 임금의 도를 잃어 우(牛)·이(李) 4763) 의 화와 이봉길(李逢吉)의 붕당(朋黨)이 있었고, 끝내는 팔관십육자(八關十六子)라는 말까지 있더니, 문종(文宗) 때 이르러 말하기를 ‘하북(河北)의 오랑캐를 제거하기는 쉬워도 조정의 붕당을 없애기는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는 몹시 미워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붕당의 화는 당나라가 망할 때까지 끌었습니다.
그리고 송(宋)나라 태조(太祖)는 광명정대하여 요(堯)·순(舜)의 기상이 있는 데다가 조보(趙普) 같은 어진이를 등용하였고, 태종(太宗)은 어질다 할 수 있으나 시우석(柴禹錫)의 무리가 그때에 기용되었으니, 이것이 태조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인종(仁宗) 때에 이르러서는, 한 시대의 어진 선비로서 한기(韓琦)·부필(富弼)·범중엄(范仲淹) 같은 이가, 다 등용될 만한 인재인데 능히 전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정치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삼대(三代) 이하에는 이와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신종(神宗)은 초년에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쓰면서 한(韓)·범(范)·구(歐)·부(富)를 등용하였으니 어질다 할 수 있으나, 왕안석(王安石)은 끝내 청묘법(靑苗法)4764) 을 고집하였고 수실법(手實法)4765) 의 화가 극심하였습니다. 그 후 휘종(徽宗)은 안으로 여색에 빠져 타락하고 또 화석강(花石綱)4766) 을 만들었으므로 채경(蔡京)·채변(蔡卞)·동관(童貫)을 써서 군자를 모조리 내쫓았으니, 화가 또한 극심하였습니다. 흠종(欽宗)은 비록 실덕한 일은 없으나, 왕백언(汪伯彦)과 황잠선(黃潛善)을 쓰고 종택(宗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큰 화를 이르게 하였습니다. 고종(高宗)은, 천성이 어둡고 용렬하였기 때문에 진회(秦檜)를 쓰고 이강(李綱)과 조정(趙鼎)을 쓰지 않았는데, 진회는 금(金)의 오랑캐를 몰래 도운 자이므로 사신(史臣)이 ‘여진참군사진회졸’(女眞參軍事秦檜卒)이라고 쓴 것입니다. 광종(光宗)·영종(寧宗) 때에는 주희(朱熹)가 있었으니 당시 임금이 썼더라면 삼대의 성치를 이룰 수 있었을 터인데, 능히 쓰지 못하고 도리어 위학(僞學)이라 하여 배척하였고, 사미원(史彌遠)과 사숭지(史嵩之)를 써서 마침내 큰 난을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대사(大事)가 이미 글러가고 천명이 끊어졌으니, 비록 문천상(文天祥)과 육수부(陸秀夫)가 있을지라도 또한 무엇을 하겠습니까? 원 세조(元世祖)는 비록 이적의 임금이지만 요추(姚樞)와 허형(許衡)을 썼기 때문에 거의 소강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 뒤로는 군자를 쓰고 소인을 물리치는 도리를 몰랐으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자화가 아뢰기를,
“고금의 치란 흥망은 지금 아뢴 바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자와 소인을 밝게 분별해야 합니다.”
하고, 정사룡이 아뢰기를,
“임금이 마음씀을 편벽되이 않으면 분변하기 매우 쉽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하는 자가 많다.’ 하였으니, 한번 편벽됨이 있으면 소인이 그 비위를 맞추므로, 능히 분변하지 못합니다.”
하고, 채침이 아뢰기를,
“치란 흥망은 군자·소인에 매여 있고, 군자·소인을 분변하는 것은 임금의 한 마음에 매여 있습니다. 한 마음이 밝으면 군자가 떼로 나오고 한 마음이 밝지 못하면 소인이 떼로 나오게 되니, 임금이 어떻게 인도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자·소인을 분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거울처럼 밝고 저울처럼 평평하게 마음을 쓴다면 분변하기가 어렵지 않으리라. 한 군자가 나오면 군자가 떼로 나오고, 한 소인이 나오면 소인이 떼로 나오게 되니, 군자·소인의 진퇴는 한 어진 재상을 얻는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밤중에 앞자리에서 옛 역사를 펼쳐 보면서 고금 치란 흥망의 연유를 물으니, 그 치도를 구하는 뜻이 개연(慨然)하고 선단(善端)의 싹이 무궁하다. 아뢰는 자는 마땅히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선후의 요점을 알고, 다스리는 도리의 본말의 순서를 살펴서, 천리(天理)·인욕(人欲)의 구별을 극론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가리우고 막힘이 없게 한다면, 모든 사물이 다 내 마음의 권도(權度)에 제재되어, 사람을 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모두 타당하게 될 것이다.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불초한 사람을 내쫓는 것이 비록 다스리는 도에 중요하다 하지만, 임금을 위하여 다스리는 근본을 논하는 데 어찌 여기에 급히 하랴! 이자화·정사룡·채침은 본래 학술 공부가 없고 모두 평범 구차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언론이 정밀 적절하지 못하여 한갓 외면에 대한 것만 말하고 내면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아서 성상의 큰일할 뜻을 외롭게 하였으니 애석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61장 A면
【영인본】 14책 676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註 4764]청묘법(靑苗法) : 희령(熙寧) 2년(1069)에 설치된 법. 제로(諸路)의 상평창(常平倉)과 광혜창(廣惠倉)의 전곡(錢穀)을 백성에게 대부하였다가 수확 때에 가서 10분의 2의 이식을 붙여서 받아들이는 법인데, 그 목적은 창곡(倉穀)의 손실 없이 백성을 구제하고 고리대(高利貸)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대부·환수는 한 해에 두 번으로, 정월에 대부하여 여름에 환수하고, 5월에 대부하여 가을에 환수하며, 흉년에는 풍년 들기를 기다려서 환납할 수 있게 하였다. 청묘법이란, 푸른 싹이 아직 논밭에 있을 때, 즉 백성이 궁한 시기에 전곡을 빌려 주는 법이라는 뜻이다. 청묘전(靑苗錢)이라는 이름은 당 대종(唐代宗) 때에도 있었으므로, 내용이 다르기는 하나, 전혀 왕안석의 창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송사(宋史)》 왕안석전(王安石傳)·식화지(食貨志), 《구당서(舊唐書)》 대종기(代宗紀). ☞ [註 4765]수실법(手實法) : 희령(熙寧) 7년(1074)에 여혜경(呂惠卿)의 헌의(獻議)로 설치된 법. 수실은 당대(唐代)로부터 시작된 제도로, 이정(里正:지금의 이장(里長)과 같다)이 매년말에 호주(戶主)로 하여금 제출하게 하는 호구(戶口)의 성명·연령 및 전택(田宅)에 관한 신고서인데, 이 수실을 기초로 하여 민정(民政)에 필요한 관(官)의 장부를 만드는 데에 관한 법이다. 이 법의 시행에 따라, 우선 관에서 물가(物價)를 정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제 자산(資産)의 액수를 신고하게 한 다음에 그 액수에 의하여 공과(公課)를 부담시켰다. 《문헌통고(文獻通考)》 직행고(職行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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