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서 관사(觀射)하니, 종친 및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좌의정
정창손(鄭昌孫)·우의정
강맹경(姜孟卿)·좌찬성
신숙주(申叔舟)·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병조 판서
홍달손(洪達孫)·지중추원사
양정(楊汀)·
홍윤성(洪允成), 동지중추원사
봉석주(奉石柱)·한성부 윤
이윤손(李允孫)·인순부 윤
강곤(康袞), 행 상호군(行上護軍)
하우명(河友明)·
김처의(金處義)·
이행검(李行儉)과 승지 등이 입시하였다. 명하여 짝[耦]을 나누어서 과녁을 쏘게 하였다. 겸 성균 사성
김구(金鉤)·
김말(金末)·
김신민(金新民)을 불러 유생(儒生)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오게 하였다. 임금이 친히 을 뽑아서 생원(生員)
최린(崔璘) 등 7인이 나아가서 독서(讀書)한 바를 강(講)하게 하고,
김구·
김말·
김신민 등으로 하여금 어려운 곳을 묻도록 하였다.
최린이
《춘추(春秋)》 《성중구(城中丘)》의 구절을 강하다가, 그 강론이 ‘때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데, 도리어 사치스러운 일을 한다.[時屈擧嬴]’는 데에 이르러, 임금이 그 뜻을 물으니,
최린이 대답하기를,
“정부(政府)와 대간(臺諫)에서 한 사람도 말하는 자가 없었는데, 너는 포의(布衣)의 유생으로 감히 이를 말하니 그 뜻이 가상(嘉尙)하다. 내가 장차 크게 쓰겠다.”
하고, 이어서 명하여 술을 주고, 모든 유생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주었다. 임금이 또 경회루(慶會樓) 아래에 나아가니, 임영 대군 이구(李璆)·정인지·정창손(鄭昌孫)·강맹경·신숙주·박강(朴薑)·양정·권공·윤암 등이 배시(陪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