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자 !!

참되고 바르게

종교·사상·인물

각 종교와 생사관

碧空 2010. 7. 14. 23:32

불교와 힌두교

 

불교는 우리와 가깝지만 힌두교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생소한 종교다.

힌두와 인도는 어원을 같이한다. 따라서 인도의 전통종교는 힌두교다.

힌두교는 인도의 토착종교다.

아리안 족이 가져온 바라문교 와 융합하여 3천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2억 인도 인구의 9할 정도가 힌두교 신자들이다.

신자 수로 볼 때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와 함께 힌두교는 세계 4대 종교의 하나이다.

 

힌두교는 3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불교는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인도의 고대 경전은 힌두교의 일관된 정신을 알려준다.

사람의 신분을 4 계급으로 나누는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의 전통이다.

철저하고 가혹하며 불변의 차등을 두고 있지만, 전생의 업보로 생각하고, 이를 현세에서는 감수한다.

 

힌두교의 이러한 차등인생의 전통종교를 개혁한 것이 불교다.

부처님은

사람은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외쳤다. 부처님은 실제로 왕자의 권위와 계급을 버렸다.

 

불교는 힌두교에서 파생되었지만 불교와 힌두교의 현세관은 차이를 두고 있다.

하지만 내세관은 힌두교의 교리를 그대로 상속받고 있는 점에서 불교와 힌두교는 유사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의 원류는 전통 힌두교에 근원을 두고 있다.

 

힌두교의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사람이 계절에 따라 헌 옷을 벗어 버리고 다른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이 몸 속에 살고 있는 아트만(영혼)도 낡은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다른 새 몸뚱이로 옮겨 가는 것이다.

 

풀벌레가 풀잎 끝에 다다르면 다른 풀잎을 잡고 건너가듯이 이 아트만(영혼)도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육신을 벗어 버리고 다른 육신으로 건너간다.

 

윤회사상은 힌두교와 불교의 바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에서 선업을 많이 쌓아 내세에는 상층계급으로 태어나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상층계급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윤회를 거듭하는 영겁 속의 한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해탈(대자유를 얻음)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현세의 삶은 삶이 아니라 삶을 벗어나기 위한 고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은 곧 잘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잘 죽어야 한다는 말은 곧 다시 태어날 때 더 잘 사는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이런 고통의 세상에는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속세를 끊고 수행 정진하여 극락의 경지에 오르는 죽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대자유의 영생을 얻는 경지다.

극락에 오르지 못한 아트만(영혼)은 이 세상에 몇 번이고 환생해야 한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정진수행을 계속해야 한다.

불교의 목표는 죽음 이후의 해탈이고 극락에서의 영생이다.

 

 

 

 

기독교

 

 

기독교의 어머니는 조로아스터교다.

기독교의 어머니는 유태교다.

기독교의 어머니는 그리스 철학이다.

위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조로아스터교는 서구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미친 종교의 어머니로 불린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이어받고 있다. 실제로 세상의 종말론, 사후 세계의 천당과 지옥 등 많은 교리가 비슷하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법정에서 피할 수도 있었던 처형을 스스로 자초하여 태연히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는

인생이란 고귀한 영혼이 비천한 육신 안에서 옥살이 하는 질곡이요, 죽음은 고귀한 영혼이 비천한 육신 감옥에서 풀려나는 경사

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독배의 선택이 가능했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믿었던 영혼불멸설이 기독교의 정통교리에 자리잡고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 25.26)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다가 죽으면 육신은 썩지만 영혼은 하늘나라(천국 또는 천당)에 올라가서 영원히 산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는 어떠한 신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에 기도하는 것도, 죽은 조상님에게 경배하는 것도, 힌두교 신자처럼 수많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기독교는 영혼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종말이 오는 날,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이 때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는 그 앞에서 심판을 받아,

그 결과에 따라 구원을 받으며,

산 자는 산대로 죽은 자는 다시 부활해서,

들림을 받아 하늘나라(천국)로 올라가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

기독교인의 사도신경에는 이러한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다.

 

또한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로 마감해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으로 구성되는 삼위일체 교리와 심판 날에 인간이 부활한다는 부활교리가 바탕이다.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 등 범 기독교 신자수가 12억이 넘는 거대종교로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최종목표는 세상이 끝나는 날 부활하여 천국에 올라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는 것이다.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유태교, 기독교와 그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교리가 곧 법이고 생활규범이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말한다.

신이 땅을 빚자 땅의 주인은 누구냐고 천사들이 물었다.

신이 대답했다. 나를 대신하여 땅을 다스릴 자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자손이다.

그리하여 하늘에 살던 아담과 하와가 땅으로 내려왔는데 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땅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변태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렇게 해서 땅에 내려온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신의 뜻에 따라 신이 위탁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정해진 임무를 마치면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땅의 환경과 천국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천국에서 내려올 때 변태했던 것처럼 그들도 천국의 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변태를 해야 한다.

이렇게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 위한 변태의 과정이 곧 죽음이라고 믿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은 교리다.

기독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교리를 주장한다.

즉 인간을 처음부터 원죄 속에 가두어 놓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사람의 죄는 현세를 살아 가면서 가정환경에서 또는 사회환경에서 오염되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들어지는 후천적 범죄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나오는 원죄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변태의 과정이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비교적 없는 편이다.

 

이슬람교는 전 세계에서 14억 이상의 신자를 가진 현존하는 최대의 종교다.

이슬람교는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는 유일신인 알라(하나님) 신과 인간 사이에 메시아를 두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부정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메시아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는 알라(하나님) 신을 경배하는 신앙생활은 엄격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교리에 많은 신자를 확보하여 세계 최대 종교의 맥을 잇고 있다.

 

이슬람교의 최종목표는 알라(하나님) 신에게 경배하는 삶을 영위하고 죽은 뒤에 천국에서 알라(하나님) 신과 함께 영생하는 것이다.

 

 

 

 

도교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중국의 전통 종교다.

도교는 내세보다는 현세에 중점을 두고 있는 종교다.

도교는 내세는 볼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영역이라며 현세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로장생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도교의 목표는 인간이 불로장생하여 신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는 육체의 수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나라 갈홍(葛弘)이 쓴 도교의 대표적 경전인 포박자(抱朴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만 천지는 다 함이 없고, 사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만 거북과 학은 오래도록 살 수 있다. 어찌 사람이라고 오래 살지 못 하겠느냐?

 

초기에는 외단(外丹)의 실현 방법으로 불로초나 불사약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끝내 실현을 하지 못했다.

후기에는 내단(內丹)으로 방향을 바꾸어 정신적인 수양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지만 인간이 현실적인 죽음에 봉착하므로 드디어 신선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즉 인간이 육체의 수련을 잘하고 정신의 도를 잘 닦아 신선이 된 사람은

죽은 체하고 평범한 의식에 따라 땅에 묻히지만

자기의 옷이나 지팡이에 시체의 모습을 담아 관 속에 남기고

정작 자기는 무덤에서 빠져 나가

영생하는 사람들이 사는 신선세계로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시해(尸解).

당당하게 선계(仙界)로 올라가지 않고 은밀히 하는 이유는 범인들의 일상사회를 혼란 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도교는 2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심정적으로 도교의 영향을 받아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신도수 면에서 세계종교에는 들지 못하고 있다.

 

도교의 최종목표는 인간이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것이다.

 

 

 

 

 

유교

 

 

유교에서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태초에 무극이라는 극점이 태극이 되고 태극에서 음양이 생기고 음양의 활동이 오행(五行)으로 갈라져 천지만물이 생겨났다.

음양과 오행은 에너지라는 기()의 집합이다.

기의 집합으로 만물의 형상이 생겨나고 기의 흩어짐으로 만물의 형태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기독교의 말씀에 의한 창조론과 다르다. 현대물리학에 적용해도 별로 무리가 없는 설명이라는 과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기의 모임이 탄생이고 기의 흩어짐이 죽음이다.

기에는 밝은 기, 어두운 기가 있고, 깨끗한 기 더러운 기가 있으며, 순수한 기와 추잡한 기가 있다.

즉 淸氣, 濁氣, 明氣, 暗氣, 純氣, 雜氣가 있다.

 

사람은 그 중에서 밝은 기, 깨끗한 기, 순수한 기를 하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하지만 기의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생성소멸의 법칙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괘를 같이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비백산(魂飛魄散)한다고 설명한다.

(精神)은 하늘로 날아가고 (肉體)은 사방에 흩어진다는 뜻이다.

 

혼백은 모두 음양의 기이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에너지 상태에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자연의 상태로 돌아간 기는 다시 동일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교는 내세를 말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모두 내세에 기대고 내세의 영생을 믿는다.

종교의 조직체는 신자들에게 내세를 매매(내세의 천국이나 극락에 가려면 시주 또는 헌금을 내야 한다.)하는 양상을 가지고 있다.

유교만은 내세에 대해 기대지도 않고 보태지도 않는다. 아무런 말이 없다.

 

제자들이 공자님에게 질문했다.

귀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님이 대답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다 섬기지 못하는데 귀신을 어떻게 섬기겠느냐?

 

공자님은 철저하게 현실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죽은 후에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교는 유일하게 내세가 없는 종교다.

유교는 내세가 없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보편적 종교와 공존이 가능하고 인간의 현실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수기안인(修己安人)의 학문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유교는 인간의 사람다운 삶을 강조한 생활철학이다.

하지만 현대종교학이 확립되기 전까지 유교는 역사적으로 중국(, , ), 한국(조선), 일본(에도막부) 등에서 국가가 종교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종교의 범주에 넣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유교에서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인류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자손을 통하여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조가 있어야 후손이 있고 조상이 있어야 내가 있다는 견지에서 조상에게 경배하는 제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면 공동체의 사회적 책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인이 됨을 축하 하는 <관례>를 올리고,

인류의 영속성을 이루려면 남녀가 혼인을 하여 가정이라는 생활의 기초단위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혼례>를 올리고,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혼(魂 정신)과 백(魄 육신)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에 <장례>를 올리고,

돌아가신 조상 덕분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인류문화를 영속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게 위해 조상을 위한 <제례>를 올린다.

 

유교가 말하는 생과 사는 우주의 섭리에 따른 기()의 이합집산이다.

인간의 탄생은 에너지의 집합이고 인간의 죽음이란 에너지의 흩어짐이다.

그리하여 생명은 자연에서 태어나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교는 죽음을 우주 자연과의 영원한 합일로 본다.

모든 존재의 죽음은 우주 자연과의 합일이며 에너지의 변형된 영존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종교의 최종목표는 이 세상에 아닌 저 세상에 있다.

그러나 

유교의 최종목표는 오로지 이 세상에 있다.

유교의 목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에 있다.

그러기 위해 유교는 인간이 성인(聖人)이 될 것을 권한다.

인간은 태어난 본성(仁義禮智)을 지키고 수양을 하면 모두 성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이 세상은 분명 파라다이스에 틀림없을 것이다.

유교는 2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교의 목표는 이 세상파라다이스(理想鄕)를 건설하는 것이다.

유교의 최종목표는 현세의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교는 죽은 다음의 천국이 아니라 살아 생전의 천국을 강조한다.

(김진수 올림)

'종교·사상·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내가 사는 이유  (0) 2010.07.26
법성게도  (0) 2010.07.26
부처님의 법맥  (0) 2010.05.21
檀君 십계명 / 檀童십훈  (0) 2010.03.31
이런 시각으로 보는 이 도 있다.  (0) 2010.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