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자 !!

참되고 바르게

역사·정치·경제·과학

지진.강우병.천안함 괴담

碧空 2010. 6. 10. 12:38

얼마 전 중국 광둥(廣東)성과 홍콩에서 여성용 구두 매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말이다. “요즘 중국에 지진 괴담이 퍼지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난징(南京)에 대지진이 감지됐다’ ‘6월 13일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괴담들이 나돌았다.” 처음에는 애들 장난이려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으로 포장된 문자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비상식량을 챙겨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게 됐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중국에선 지진을 둘러싼 괴담이 인터넷·휴대전화를 휘젓고 있다. 너무 정교해서 분별이 안 될 정도다. ‘4월 19일 발사한 인공위성은 산시(陝西)성의 지질 이상을 정밀 탐색하기 위한 것’이라는 글까지 등장했다.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지진 예상지만 바꾼 글들이 유행이다. 댓글만 200만 건이 넘었다. 수사망에 잡힌 유포자는 중·고교생들이었다. 몰지각한 십대들의 치기였지만 폐해는 심각했다. 허난(河南)·장쑤(江蘇)·산시성의 주요 도시 주민들은 새벽 댓바람에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대부분 잠옷 바람이었다. 생사가 갈리는 순간이었기에 지체할 일이 아니었다.

2월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에서도 소동이 났다. 새벽 4시에 지진 괴담이 돌면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TV 화면에 비친 겁먹은 주민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제는 쓰촨(四川)성 원촨(汶川) 대지진 2주년인 날이었다. 규모 8.0의 대지진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8만 명에 이르는 참사였다. 이 지진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상당수가 아직도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창졸 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으로 마음의 여진을 앓고 있다. 재기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이런 괴담은 청산가리나 다름없다. 원촨과 지난달 칭하이성(靑海)성 위수(玉樹) 지진의 충격 때문에 중국인들의 자의식엔 지진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괴담은 이런 약점을 파고든다. 과학과 이론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됐기 때문에 일단 믿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판단력이 무력화된다. 무서운 병균이다.

2년 전 이맘때 서울의 도심도 광우병 괴담이 장막을 쳤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단순하고 강한 메시지를 담은 그 괴담으로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다. 괴담에 현혹된 일부 주부들은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경찰에 맞섰다.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며 울부짖던 여중생까지 괴담은 멀쩡한 사람들을 ‘미치지 않을 수 없도록’ 미치게 했다.

그 광란의 기억이 가실 만하니까 이제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두고 전문가적 접근법으로 포장한 각종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괴담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과 결합해 광속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괴담의 폐해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휴대전화가 괴담의 진원지이자 증폭기가 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정용환 홍콩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