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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코스가 된 함안보/중앙일보 10.05.13

碧空 2010. 6. 10. 12:36

    * 현지 민심 못 읽는 4대강 반대 이벤트   * 배경만 다를 뿐 그 얼굴이 그 얼굴  * 진보진영, 컨셉트 바꿔야 길이 열린다

4대 강 살리기냐 죽이기냐, 싸움이 한창이다. 다른 강은 잘 모른다. 낙동강, 그중 가장 논란인 함안보(洑)는 다르다. 경남 함안군 대산면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벌초하러 내려간다. 낙동강은 인근 법수면에서 흘러온 남강과 합류해 고향 들판을 스치며 지나간다. 한적한 이곳은 요즘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천성산 도롱뇽으로 이름 날린 지율 스님이 대학생들을 데리고 왔고,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다녀갔다. 함안보는 어느새 야당과 환경단체의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7.5m에서 5m로 낮추었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하다. 지하수 상승에 따른 피해 범위를 놓고 치고받는 중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피해 예상 면적은 0.744㎢. 반면 교수모임 측은 4.1㎢에 이른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알면 부질없는 일이다. 이 일대는 40년 전까지 늪이나 다름없었다. 장대비만 쏟아지면 농사를 망쳤다. 그 후 낙동강 제방을 높이면서 논으로 탈바꿈했을 뿐이다. 함안보는 침수 예정지를 어떻게 보상할지가 핵심이지, 이를 핑계로 낙동강 정비 자체를 무조건 반대할 사안은 아닐 성싶다.

지난 50년간 낙동강은 제방만 높이 쌓았지, 바닥을 준설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들판보다 높아진 강바닥은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2002년 8월 집중호우 때 강둑이 터져 법수면 일대가 쑥대밭이 됐다. 피해액만 1000억원이 넘었다. 이듬해 태풍 ‘매미’ 때는 대산 벌판이 물에 잠겼다. 밤새 배수펌프를 돌려 빗물을 낙동강으로 퍼 넘겼지만 힘에 부쳤다. 높은 강바닥이 장벽이었다. 함안 대산이 비닐하우스 수박으로 유명해진 것은 역설적이다. 하우스 수박은 장마 이전에 승부가 난다. 수박 수확은 2월 군북면 월촌에서 시작해 3월엔 법수면, 그리고 4~5월 대산 벌판에서 절정을 맞는다. 수해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생명줄이 된 것이다. 홍수에 취약한 저(低)지대 들판에서 전국 수박의 16%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도 풍광에 반한 외지인들은 멋진 바닷가에 집을 세워 낭패 보기 일쑤라 한다. 현지 주민들은 기를 쓰고 안으로 들어간다. 심한 바람 때문이다. 낙동강도 마찬가지다. 남지대교나 수산대교에서 굽어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외지인들 눈에는 곳곳의 모래섬이 반드시 지켜야 할 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둑 밑에서 올려다보면 딴판이다.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흘러가는 강물이 끔찍하다. 외지인들은 “4대 강 결사반대”만 외치고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에겐 생활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들끼리는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인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강바닥을 더 깊게 준설해야 한다”고. 이런 흐름은 여론조사에도 나타난다. 4대 강과 별 상관없는 지역에선 반대가 많고, 강 주변의 사람들은 4대 강 사업 찬성이 압도적이다.

4대 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순차적인 개발이 맞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함안보에 내려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영 불편하다. 지난주 TV에서 ‘1박2일’을 보다가 템플스테이 때 108배 대신 103배를 하겠다고 우기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다. 시위 때마다 삼보일배(三步一拜)가 워낙 자주 등장한 탓에 헷갈린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효순·미선양 사건에서 광우병 사태와 4대 강 반대까지, 뒷배경만 바뀌었을 뿐 등장인물은 만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도 이들 ‘꾼’들이 앞에 나서자 곧바로 동력을 잃었다. 진보진영도 발상을 바꿔야 할 때가 된 듯싶다. 현지 민심부터 읽어야 한다. 더 이상 식상한 이벤트로 감동을 줄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려면 논리적인 설득만이 유일한 길이다. 정부와 환경·종교단체의 4대 강 공개토론회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함안보에 몰려와 4대 강 살리기냐 죽이기냐, 선택을 강요할 일이 아니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