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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전두환

碧空 2009. 8. 26. 19:02



1. 故 박정희대통령을 비난하는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아!!
금세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 그것도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소득 76불에서 1,500 불,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단기간에 20배 성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정치꾼'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이며, 애국자가 과연 누군지 아느냐 말이다.

실의 도탄에 빠져 나태한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혁명으로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감을 안겨준 지도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젊은이들아!!
그런 그가 독재자였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가장 친근감이 있어 대화하고 싶은 지도자가 박정희라며
그리워하는 이유는 또, 왠지 아는가?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손이 부르트게 일을 하였지만 내일의 희망과 비전이
있었으며 삶의 의욕이 충만해 즐겁고 행복했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독재자 박정희라??
젊은이들아! 당시 독재 시대라 해도 일반 대다수 국민은
생활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독재니 자유니 하며 이론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사람들과 정치를 하겠다는 극소수의 '정치꾼'들을
제압하였으나 그 또한 누구를 위한 억압적 제압이었겠느냐?

부정 축재하려고 그랬느냐?
자식들과 친인척을 도와 주려고 그랬느냐?
아니면 출세하여 족보에 남기려고 억압적 제압을 하였느냐?

젊은이들아!!,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대한민국 그때에서,
자유, 독재,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고 박대통령을 생각해 봐라!!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식욕, 성욕, 금욕, 지배욕, 이라 했다.
그 첫째 '식욕',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선 될 수 없다고 본다.

경제력이 뒷밭임 없는 민주주의!,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민주주의!,
모래사막 위에 탑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당시 우리보다 몇 배를 더 잘 살던 필리핀과 북한을 보고,
타이, 말레이시아를 봐라, 지금 이들 국가들이 어떤가를…….
한 나라의 발전이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독재자 박정희라 폄하 하며,
그의 업적과 공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16,000불에서 살다 보니 76불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보릿고개가 뭔지 모르고 다이어트에 신경 쓰다 보니
과거 60년대가 실제로 어땠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니 독재니 하며 교과서적 정의만을 내세워 따진다.

젊은이들아!!
우리나라 정부 일 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지원으로 살았고
춘궁기가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만,
뉴스거리조차 안되던 때가 바로, 60년대였다.

배를 곯아 봐야 인생이 뭔지 삶의 철학도 깨우칠 수 있음에
너무나 잘 먹어 뱃살 빼기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아!!


그때는 여성은 살이 쪄야 맏며느리 감이라 인기가 있었고,
남자는 살이 찌고 배가 나와야 사장이며 인격, 신분 상승으로 여겨
겨울이면 옷을 많이 입고 살쪄 배 나온 시늉을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웃긴다고 할까?
눈물겨운 일이라고 할까?


젊은이들아!!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으며, 과거를 모르면 현재의
풍요로움 또한, 그 가치를 모르는 법!!.

1960년 4월19일 학생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때, 각종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농민, 상인, 이발사, 식당주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데모…….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조회 시간이 너무 길다 데모,
짧은 머리 기르자 데모, 공부시간 단축하자 데모,
하다못해 초등학생, 선생들까지도 데모, 데모,…….

온 나라가 일 년 열두 달 365일 데모로 지새워 오죽하면
데모를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였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였겠는가?

이를 지켜본 세계에서는 KOREA는 '데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최루탄 가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밤이면 마음 놓고 밖을 나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치안은 여기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무법이 판을 치던 그때,
하다못해 깡패도 주먹으로 정치를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더욱이 기가 막힐 노릇은 이승만 독재로부터 자유를 찾았으니,
모든 것이 자유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주먹을 휘둘러대며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국민들이 많았으며, (당시에는 초등학교 무학자가 대다수였다.)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서울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북한에서
라디오로 생중계하여 현장 실황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남파 간첩들이 포진되어 안보가 위태로웠는지,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김일성 자서전에 당시 남침하지 못한 것 후회한다 했지 않은가.
그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아!!

이렇듯, 굶어 죽지 않으면 공산화되기 일촉즉발의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하고자 구국에 일념으로 박정희가 나타난 것 아닌가.

역사에 만약 이란 없다 하지만 당시에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 출세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고 보면 지금쯤 이 나라는 어떻게 되였을까?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가 월드컵 세계 4강에 올라 대한민국,~,
짝, 짝, 짝~, 하며 즐거움을 맞볼 수가 있었을 것이며,
올림픽을 개최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을까?
또,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아,
사업가는 10년, 정치가는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으로 받은 돈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호텔 짓고, 백화점 짓고, 선박 구입 등, 비생산적인 곳에 썼지만,

박대통령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며
이승만정권 때부터 14년간이나 지지 부진하게 끌어 오던 한일수교를,
결단, 결행, 단행하여

산업의 쌀이라 일컫는 제철공장 짓고, 고속도로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 지금은 조선업, 철강업, 기타, 중공업 분야에서
세계 1, 2위로 일본과 경쟁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동맥으로 토목 건설
기술 축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건설수주 외화 획득,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 지금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대통령의 업적을 기반으로 가 아닌가.

젊은이들아!!
그런 그를 사후 2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청산이란 명제하에
알 수 없는 정치적 잣대로 재고 재단하여 매도하고자,

공(功)은 빼고 과(過)만 조명하는 '친일파 박정희' 만화책 만들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세뇌시키려 하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며

세계 수십여 개 국가, 수만 명이 하루가 멀다 날아와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배워간 새마을운동까지도
사실 왜곡되게 가르치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박대통령에 탁월한 지도력을 배우고자 연수용
교재로 '박정희 전기'란 책이 중앙 위원회 산하 당정 고위 간부들의
교과서가 되였으며 서점에서는 베스트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어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함인데,

이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님'을 꼬박꼬박 붙여가며
존칭을 쓰고 통큰 지도자라며 추켜 세우면서도

박대통령에게는 '님'은 커녕, 그가 쓴 친필이라 해서 광화문,
운현각 현판을 뜯어내 부시고 빠개고, 하다못해 그 시절에
심어졌다해서 나무까지 뽑아내 그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려 하니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어디 또 있는가 말이다.

또, IMF 때보다도 살기 힘든다고 아우성인 경제는 뒷전이요,
진보라 자칭하며 개혁하겠다고 과거 캐기에 국론 분열을 일삼으며

국민 80%가 반대하는 국보법을 김정일이가 원하는 대로 폐기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 그래서 국민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그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전직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건국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각계 원로 9,000여 명이
시국선언을 하였으니 도대체 이들이 누구며,
왜 이러는 지 진짜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좌파들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이들아!!,

한 번의 실수는 5년이 아니라 10년이 갈 수도 있으며
한번 잘못 선택한 지도자로 겪어야 할 고통의 대가는
자손 대대로 후회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천하에 사기꾼 김대업을 이용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정권을
휘어잡고선 탄핵 땐 예수 부활을 비교하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좌파정권, 그 배후세력들이 지금까지의 언행을 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독재자 부인 육영수여사 살해했다고
살인범도 의인으로 추대하여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 철거하고
문세광 동상 세우자고 촛불 든 젊은이들 선동할까 정말 걱정된다.

똑바로 알아라!!
비록 한 인간이 죄가 있다고 하여도 그 죄를 불공평하게 들추어내는
행위는 죄악이며 어떤 사회든 부조리가 있고 사회적 병리가 없는
문제없는 사회가 없는데,

역사 바로 세워야겠다며 유독, 하나만 싸잡아 성토하고, 그래서
갈아 치우고자 한다면 이는 인정될 수 없는 반, 민주적 행태가 아닌가.

개혁이란 명제하에 법을 현실보다 고도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매달아 놓고 그 기준에 걸리면 모조리 갈아 엎어 버린다면,

칼자루를 쥔 쪽에서 의도적으로 휘둘러대는 알 수 없는 심판의 잣대로
매장시키려 한다면 이 어찌 민주를 부르짖던 자들의 행태란 말인가!!

그런 기형적 사고의 두뇌로 개혁이다 역사 바로 세우겠다 한다면
그 누구도 '왕따' 시켜 매장시킬 수 있으며,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아세우고 그분의 많은 업적을 모조리 비판하여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어야 하며 한글도 때려 치워야 되는 것 아닌가.

젊은이들아!!
사람의 가치관은 정권이 바뀌고 물질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간다 할지라도 바뀔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라!!.

권좌, 출세를 위한 일이면 그 어떤 가치와 업적도 부정하려 드는
부도덕한 정치인들과 그 배후 세력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오늘의 잣대로 비판하려 애쓰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살던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신앙을 굳게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노라고 떳떳하게 대답하자.'라고 한 민족중흥의 시조,
박정희 대통령, 서거 27주년이 되어 생각해 본다.

젊은이들아!!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알자!!

-촌장-(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해병가족모임  (부)314기아버지-

 

 

 

 2. 전두환 전 대통령 명예회복

 

全斗煥 전 대통령을 독재자가 아니라고 하면 화를 낼 분들이 많을 것이다.

全斗煥을 쉽게 독재자라고 규정하면 화를 낼 사람은 적을지 모르지만 말이 안되는 구석이 생긴다.

독재자의 定義는 장기집권이다.

헌법을 마음대로 고쳐서 죽기까지 물러나지 않으면서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본다.

그런데 全 당시 대통령은 장기집권이 가능하던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설정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더구나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자 6.29 선언을 결단하여 이를 수용했다.

이것도 독재자가 할 일이 아니다.


누가 '6.29선언은 국민이 全당시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한테 항복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全斗煥의 집권과정에는 유혈사태와 하극상과 위법이 있었다. 이 시기만 본다면 그는 독재자이다.
1980-88년의 5공화국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는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독재자로 등장하였으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민주적 개헌을 하고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독재자라고 단정하려면 독재자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 정치인의 한 시기를 잡아서 극단적인 말로 단정해버리면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위험한 과장이다.

좀더 깊이 全斗煥 시대를 분석해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계승하여 성공적으로 완성시키지를 못했다면

그 위대성은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5공화국 관련 경제정보: 박정희 정권 마지막 해와 전두환 정권 마지막 해의 비교표
 (박정희 정권의 경제초석을 전두환 정권이 효과적으로 완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

1. 1979년 1인당 GNP: 1,546 달러
  2. 1988년 1인당 GNP: 3,728 달러
  3. 1980년대 경제성장률: 연평균 10.1%로서 200여개 국가중 1위
  4. 1979년 수출 147억 달러, 수입 191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 41억5100만 달러.
  5. 1988년 수출 600억 달러, 수입 52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138억 달러.
  6. 1979년 국민저축률: 25%
  7. 1988년 국민저축률: 34%
  8. 1979년 도매 물가상승률: 20%, 1980년은 44%
  9. 1983-87년 도매 물가상승률: 연평균 2.7%
 10. 1988년 채권과 채무: 외채 320억 달러, 대외자산 253억 달러. 1989년에 순채무국으로 전환.
 11.전화대수: 1982년 300만 대에서 1988년 1000만 대 돌파.
 12.소득격차:1980년에 지니계수가 0.39, 88년엔 0.34로 축소(수치가 낮으면 격차가 줄었다는 뜻).



全斗煥 정권은 1980-88년 사이 세계 1위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이 기간 국민소득은 2.3배로 늘었고 무역적자 구조는 무역흑자로 바뀌었다.

두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은 2%대로 안정되었다.

외채도 크게 줄었고 국민저축률은 일본을 앞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1980년대 全斗煥 정부는 통신망 설치와 전자산업 육성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여

1990년대의 세계적 인터넷-전자산업 강국을 예비했다. 

이 경제성장으로 해서 한국사회에 중산층이 두껍게 등장했다.
1980년대 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70%가 되었다.
이들이 민주화의 주력부대가 되었다.
이들의 온건성향이 6.29선언으로 나타난 타협적 평화적 민주화의 엔진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이 만든 쿳션이 한국사회의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민주화의 열풍을 견뎌냈다.
1985년 2.12 총선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혼란기에 경제성장률이 피크에 달했다.

 경제호황기에 민주화 시위가 절정기를 맞았다는 것은 행운의 타이밍이었다. 

全斗煥 대통령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경제를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이를 수습
한 뒤 물가를 잡고 고도 성장과 흑자를 이룩했다. 全斗煥 대통령이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
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정치는 상당부분 경제를 관리하는 기술이다.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은 정치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경제는 성공했는데 정치는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부는 잘했는
데 시험은 잘못 쳤다는 말처럼 모순이다. 

경제 성공의 공을 전두환 대통령이 아닌 金在益 경제수석한테 모두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金在益씨를 잘 부린 사람이 全 전 대통령이었고, 金수석은 1983년10월에 아웅산 테러로

타계했기 때문이다. 

이 경제성장은 평화적 민주화와 全대통령의 단임실천을 가능케 했다.

동시에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뒷받침했다.

이런 호재로 安保면에서도 對北우위를 확보했다. 

그에게는 물론 12.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으로 집권한 과오와

비자금 모집의 과오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년간 백담사 귀양,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들 과오를 한쪽으로 놓고 그 반대편에 경제적 성공과 튼튼한 안보, 그리고 단임실천 및

6.29 민주화 선언(직선제 개헌이 핵심)을 놓으면 저울은 어디로 기울 것인가. 

全斗煥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를 남긴 사람'이란 대목을 검토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아니면 대단한 일인가.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 지표이다. *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은 철권통치자 프랑코가 죽은 2년 뒤인 1977년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추방 이후 그렇게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해보인다. 


*한국은 1988년 全斗煥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놓고본다면 민주주의의 발달사는 길지만 의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은 길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17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볼 수 없는 조건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북한과 중국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정권교체는 옛날엔 전쟁이나 암살, 쿠데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엔 선거가 전쟁을 통해서 했던 일을 대신한다. *
그만큼 선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17년밖에 되지 않은 정권교체의 전통을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나가야겠다.

동시에 全斗煥 정권이 만든 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에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갑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