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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후유증

碧空 2024. 4. 16. 18:29

방랑시인 김삿갓(60)

 南漢山城(남한산성) 丙子胡亂(병자호란) 지도층의 무지가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
 이때 조선(朝鮮)과 청나라가 맺은 강화 조약(講和 條約)의 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몇 가지는


1. 조선(朝鮮)의 국왕(國王)은 청나라에 대하여신(臣)의 예(禮)를 행할 것.
   (형제의 관계가 아닌 군신의 관계라는 뜻)
2. 조선(朝鮮)은 명나라와 국교(國交)를 단절(斷絶)함은 물론이고 이제부터는 청나라 연호(年號)를 쓸 것.
3. 조선(朝鮮)은 왕세자(王世子)와 차자(次子)를 청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낼 것, 등 등이었다.
   또 이러한 강화 조약(講和 條約)과는 별개로 더욱 막심(莫甚)한 피해(被害)가 있었으니,그것은 백성(百姓)들의

   피해(被害)였다.
   오랑캐 군사(軍士)들이 전국(全國)을 휩쓸고 돌아다닐 때 백성(百姓)들의 재산을 닥치는 대로 약탈(掠奪)해

   갔을 뿐 아니라, 무고(無辜)한 백성 오 만여 명을 포로(捕虜)로 납치해 갔다.
   그렇게 납치(拉致)해 간 사람 가운데서 남자(男子)는 종으로 부려 먹었고 젊은 여자(女子)는 노리개로 삼았다.
 

  전쟁(戰爭)이 모두 끝난 뒤, 납치(拉致)해 간 우리 백성을 돌려 달라는 조선의 요구(要求)에 청나라에서는 신분(身分)의    차별(差別)을 두어 일반(一般) 백성은 100냥에서 부녀자(婦女子)와 지위(地位) 가 높은 사람들은 1500냥까지의
  속환금[贖還金·보상금(補償金)]을 요구(要求) 했다.


   오 만여 명이나 되는 포로(捕虜)의 보상금은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金額)이었다.
   가족(家族)을 데려오려고 어떤 이는
   가진 것 모두를 내다 팔았는데 이러한 속환금 때문에 우리가 가진 재산(돈)은 갈퀴로 솔갈비를 긁듯 남김없이

   모두 다 긁어 갔다.
   그 결과 조선(朝鮮)의 경제(經濟)는 전쟁(戰爭)의 피해(被害)와 함께 형편없이 피폐(疲弊)해졌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餘波)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환향녀"(還鄕女)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포로(捕虜)로 잡혀간 사람들 가운데 속환금을 내고 돌아온 여자들을 특별히 환향녀로 불렀다.
  환향녀(還鄕女)란, 글자 그대로 청나라 군사에게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軍士)에게 끌려갔던
  여자들이 깨끗한 몸으로 돌아왔을 리가 없다.
  그러니 환향녀(還鄕女)라는 말 가운데는
  정조(貞操)를 되놈에게 잃은 여자(女子)라는 뜻도 들어있다.
  또 그렇게 정조(貞操)를 잃고 임신(妊娠)이 돼서 낳은 자식(子息)을 청나라사람의 자식(子息)이란 뜻으로

  “호로자식”이라 불렀다.
   이후로 세월이 지나면서 환향녀는 잊혀 갔지만,말의 씨앗은 계속 남아 오늘날까지도 “환향년”,
   “호로자식”이라는 말이 아주 부끄럽고 정말로 나쁜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보탬] :
환향녀, 호로자식이 누구 때문에 생겨났나?
환향녀나 호로자식 그들에게 책임이
있었다 해도 그렇게 멸시(蔑視)하고 핍박(逼迫)해야만 했을까?
나라를 이끌었던 군신들의 지혜가 모자랐고
그래서 나라가 힘이 없었고 그래서 빼앗겼던 내 딸, 내 며느리, 내 누이
내 고모였고 내 이웃이었다.
어제까지 내 가족(家族)이었고 그래서
돈을 주고 되사왔으면 그들이 그 지경
(地境)이 되도록 겪었을 고통(苦痛)과 공포(恐怖) 아픔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조선(朝鮮) 사회(社會)는 또 한 번 짓밟았다.
오늘날도 화냥년과 호로 자식은 있다.
인권유린(人權蹂躪)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탈출(脫出)해온 탈북(脫北) 여성(女性)과
인신매매(人身賣買)됐다가 자유대한
(自由大韓)의 품에 안긴 이들이다.
그들이 그런 지경(地境)을 당한 것은
김일성 집단(金日成 集團)의 직접적
(直接的)인 책임(責任)이고 그들은 지도자(指導者)를 잘못 만나 겪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직접적(直接的)인 책임(責任)이 없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정부(政府)는 정부(政府)대로 살길을 열어 줘야 하고 민간차원
(民間次元)에서도 그들을 따뜻이 안고
보살펴야 할 것이다.
핵(核)을 가진 나라가 위협(威脅)을 해 오더라도 저들이 요구(要求)하는 대로 끌려갈 수만은 없다.
불가피(不可避)하다면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莫上) 전쟁(戰爭)이 벌어지면 단시간(短時間) 내에 모든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총결집(總結集)하여 승리(勝利)를 하여야 한다.
아니, 그런 것보다는 지나온 역사(歷史)의 교훈(敎訓)을 잊지 말고 만전(萬全)의 사전(事前)태세(態勢)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有備無患(유비무환)"
우리 조선이 1592년 임진왜란
(壬辰倭亂)과 1598년에 벌어진 정유재란(丁酉再亂)의 원인(原因)을
살펴 방비(防備)를 갖추었다면,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남기신 징비록(懲毖錄)이나 충무공
(忠武公)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의 난중일기(亂中日記) 등(等)을 깊이 연구(硏究)하고 대비(對備)했다면~
겨우 38년 뒤에 벌어진 (1636년)
병자년 호란도 없었을 것이고 청나라가 전쟁을 일으켰다 해도 우리는 충분히 격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안타까운 가슴을 안고, 치욕의 현장인 남한산성을 내려오는 김삿갓의 발걸음은 모래 자루를

매단 듯 한없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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