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뜻을 품은 사람은 ‘존경하는 인물’도 신경 써 고를 일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롤 모델을 보면 그 사람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그래서 나 같은 기자가 일요일 읽을거리를 만들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존경하는 인물이 윈스턴 처칠(1874~1965)이라고 했다.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을 말한 건 그냥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게 아니었다.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선 자신이 처칠이고, 한덕수 총리는 노동당 당수로 전시(戰時) 내각의 부총리를 맡았던 클레멘트 애틀리였던 거다.
여기서 독자들은, 아니 윤 대통령이 처칠이라니 웬 ‘윤비어천가(尹飛御天歌)’? 비웃을지 모른다. 잠깐 참아주기 바란다. ‘도발’을 좀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도발에 아부는 없다.
올 1월 말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나와 처칠을 존경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라는 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어려웠을 때, 그야말로 그 당시에 나치와 타협하자는 정치권의 요구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국민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확고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들과 함께, 이런 어려움을 돌파해나가서, 이런 자유민주라고 하는 무너질 뻔한 질서를 다시 회복시킨 그런 측면에서, 저는 영국을 떠나서 정말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이 좀 사표(師表)로서 배워야 하는 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는 즉각 맞장구를 쳤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많은분들이 느낄 것 같다”고. 맞다. 검찰총장 재임 당시 문재인 정권의 ‘연성 파시즘’과 타협하자는 주변 요구가 왜 없었겠나.
윤석열은 타협하지 않았다.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전격 사퇴하며 밝힌 입장문을 다시 보면, 처칠을 존경하는 이유와 거의 비슷하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앞으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선출된 권력이 삼권분립을 뒤흔들고 지도자 숭배, 대중 동원, 민족주의, 반(反)지성주의, 일당독재로 치닫는 전체주의가 파시즘이다. 히틀러 아니고도 리더가 자유주의를 파괴하면 파시즘은 좌우 이념 상관없이 언제든 생겨난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는 문재인 정권의 ‘촛불 파시즘’처럼.
미국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파시즘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처칠을 그린 영화 ‘다키스트 아워’도 그때 나왔다. 히틀러와 평화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히틀러는 영국을 노예국가로 만들 것이다…처칠은 자동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가다 돌연 내려선 런던 지하철을 타고는 시민들에게 묻는다. “안돼요!” “싸워야죠!” “빗자루라도 들고 싸울 거예요!”
올 1월 초, 윤 후보는 여의도 지하철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적이 있다. 당내 갈등이 높아지고 지지율은 떨어질 때, 국민의힘 젊고 건방진 대표가 대선 후보에게 출근길 인사를 숙제로 내준 것이다.
이걸 해? 말아? 밤새 고민하던 그는 ‘다키스트 아워’의 지하철 장면을 떠올리고는 지하철역으로 갔었다. “처칠처럼 국민만 보고 정치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존경할 적엔 은연중 배우려 하고, 닮으려 애쓰기 마련이다. 맨 앞에 썼듯이, 어쩌면 윤 대통령은 ‘처칠 스타일’의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헤어 스타일이 많이 다를 뿐, 윤 대통령에게는 처칠과 닮은 점이 없지 않다. 오늘은 심심한 일요일! 그래서 두 사람의 공통된 처칠 스타일을 찾아보았다.
첫째, 누구도 부인 못 할 공통점부터…나이 차 많고 미모의 아내를 둔 애처가다. 윤 대통령은 12살 차이, 처칠은 11살 차이. 그래서 오전 회의에 만날 지각하는 처칠은 남들의 비난을 듣고 이랬단다. “당신도 부인이 예쁘다면 아침에 일찍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술을 엄청 좋아하는 건 똑같다.
둘째, 불굴의 의지와 불충의 이미지. 윤 대통령은 사법시험에 8전9기(8顚9起)를 한 불굴의 한국인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불충(不忠)’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쓴 ‘처칠 팩터’에서 ‘불충’을 발견하고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1900년 건방진 25세 청년으로 의회에 입성한 순간부터 처칠은 불충을 자신의 표어이자 선전의 전략으로 삼았다.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한다며 토리당 지도부를 강타했다. 근로자에게 저렴하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좌파의 편을 들어 보호관세 정책에 반대했다.” 처칠 역시 사람이나 정당에 충성하지 않았던 거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자유’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새삼 일깨웠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함으로써 자유민주세계 공동의 가치 편에 섰음을 확인했다.
처칠도 그랬다. 모두가 히틀러와의 협상을 주장할 때 처칠은 자유, 그 중에서도 사법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체포당하지 않고, 정부에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것도 닮았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처칠은 총선에서 패해 정권을 잃었다. 1951년 노동당 애틀리 총리가 의사당 화장실에서 처칠과 나눈 대화는 유머가 아니라 실화다. 애틀리 옆 소변기가 비어있는데도 처칠이 멀찍이 볼일을 보기에 애틀리가 “혹시 저한테 불쾌한 일이라도 있으신지” 물었더니 처칠이 그러더란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하잖소.”
두 지도자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은 과히 호감 받지 못하면서, 평소라면 가능성이 없었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리더가 됐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비호감도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간절한 열망에 따라 대통령이 됐다. 처칠도 그랬다. 히틀러의 악마성을 일찍 알아봤고, 그 때문에 ‘전쟁광’ 소리를 들을 만큼 대비를 주장했으며, 국민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마침내 자유 세계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처칠 같은 최극단의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정상적 검증과정 없이 국가를 맡게 된다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가우탐 무쿤다 교수는 ‘인디스펜서블’에서 주장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도 성공한 리더가 나올 수 있듯, 최고의 리더는 대부분 검증과정 없이 나온다는 거다.
하지만 꼼꼼한 검증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발견 못 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크게 실패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의 처칠 스타일이 재미있고, 또 겁나는 건 이 때문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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