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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단상 /김영남 선생

碧空 2014. 6. 23. 18:34

남한산성 단상 南漢山城 斷想

                                                                                                                          

  남한산성 전철역에서 버스로 바꿔 타고 시내를 벗어나자 구불구불한 산길을 참 올라가는데

차장밖은 짙푸른 녹색물결이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아래는 깊은 계곡이다. 

오늘 산행 계획은 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수어장대로 서문과 북문을 거처 복원된 행궁을 관람하고 점심식사 후 거시기 공원을 보고 귀가할 예정이다.

 

 산성터널을 지나자 곧바로 정류장, 여기부터 산행시작, 노상 유로 주차장 길 아래 공터가

 비석으로 가득하다. 원래 있던 자리는 아니고 세월이 지나면서 관리하기 쉽도록 모아 놓은 것이 다. 어림 잡아도 30개는 넘는다. 무슨 사연이 있는 비석일까 궁금하지만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지나처 갔다. 높은 관리들이 있던 옛 고을에는 송덕비 선정비들이 많다. 정말 선정을 베풀고 덕을 많이 쌓아서 세워진 것들 이었을까? 

 

 남문(지화문)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산성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이 성문을 통해 차가 다니던 기억이 난다. 수어장대 가는 길 중턱까지는 참나무, 벚나무,밤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밤꽃이 한창이다.밤꽃 내음은 비릿한 것이 묘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 번식을 위해 생태계 복원사업 중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활엽수와 자리다툼에 소나무가 밀리고 있어 안타깝다.

 

수어장대가 가까워 지면서 소나무들이 보인다. 모처럼 보는 소나무 숲, 재선 충 방제 작업중이다. 정오의 햇볕이 따가워진다.

수어장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그늘을 찿아 식탁겸용 테이블에서 각자준비한 간식을

꺼내 놓으니 제법 푸짐하다. 산에서는 시원한 막걸리의 맛이최고다, 그늘진 길을 따라 가니 서문, 정식명은 우익문 右翼問이다.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하러 세자와 함께 성밖으로 나가던 문이다. 엄동설한 이 길을 어떤

심정으로 갔을까? 걸어서 갔을까, 업혀서 갔을까, 눈길에 가마 를 타고 가다, 떨어지면

중상을 당할 만큼 경사가 급하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수 없지만, 폭군이라며 인조가 무력으로 몰아낸 광해군을 생각해 본다.

칠년 전쟁 임진왜란 후유증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조선왕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취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참이다.

 

조선은 명의 요청으로 출병하긴 했으나, 수많은 민란으로 쇠약해진 명나라는 열세에 몰려 있었다. 강홍립 장군 부대는 전투를 피하고 싸우는척하며, 후금에 투항해 화의를 맺도록 한다. 이러한 전략 덕분으로 한동안 전란의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전란에 대비 군사력을 증가시키고 있었다.

 

 사촌조카 능양군의 반정명분은 두마음(중립외교)을 품어 명나라를 배신하고,계모 인목왕후를 유폐하고 형과 아우를 죽인 폭군, 궁궐 재건등 과도한 토목공사(월산대군의 사저를 궁궐로 썼다)로 민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광해군 과연 폭군이었을까? 사냥에 지장이 된다하여 백성들의 집을 헐어내고 주색에 즐길 여인을 징발 하기위해 채홍사를 동원한 연산군과 같은 존재인가? 칠년전쟁 임진왜란을 수습하고 실질적인 군주 노릇을 한 광해군, 중국대륙의 정세 변화와 정치상황을 잘 알고 있어 중립외교와 실용주의 정책으로 전란을 회복해가며 정국을 안정 시킨다.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숙청은 어느 집권자인들 용납 할수 있었겠는가? 친위 세력인 강홍립 부대를 파병하고 궁궐수비가 허술해진 틈을 탄인조반정은 역모행위다.

전란후 국력을 회복해 가던 조선을 일시에 몰락시킨 반정을 합리화 시키려는 서인들의 친명 사대주의는 청나라 와 관계를 급격하게 악화시키고, 명나라와 명분에만 치우처, 청나라 사신을 홀대하고 죽이려하자 밤중에 사신이 도주하는 사건까지 발생, 청 태종이 분노하고 더 큰 화를 부른다.

 

  임진왜란을 비켜간 만주의 후금은 급격하게 세력이 커지면서 명과 전쟁을 벌이는데 대륙의 정세를 오판한 반정 세력은 조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비극을 초래한다.

광해군의 명예 회복과 재평가 있어야 할것 아닐까?

 

  병자호란 청나라와 형제관계를 폐하고 군신의 관계로 격하 공물을 바치고 명나라를 정벌할 군사 3만명을 요구하자, 남한산성에서 항전 45일,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서양의 신식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는 성벽까지 부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청태종에게 항복한 인조,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예(三拜九叩頭 禮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음)를 해야만 했다.

 

항복의 조건을 다 들어 주고 청태종의 송덕비를 세우고 군신의 예를 다하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 왕손들이 볼모로 잡혀가고 척화파인 홍익한 오달재 윤집등은 사형 당한다.

9년여 볼모생활에서 돌아온 세자는 청나라의 신문물을 가지고 온것에 격분한 부왕 인조의 노여움을 사고 두달만에 병사 했는데 배에서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얼마후 세자빈도 사약을 받고세손도 귀양가서 죽는다.

 

  항복후 민초들의 수난, 그 유산이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품행이 나쁜 여자를 비하하는 화냥년 사실은 還鄕女다, 포로로 잡혀가 살기위해 성적으로 문란해저 돌아온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수 있을까? 버릇없고 말성 꾸러기 호래자식 원래는 胡奴子息이다 오랑캐의 씨를 안고 돌아온 여인의 자식이니오죽 했겠는가? 

 

 청나라에 끌려간 부녀자의 수가 50만명, 조정에서는 이들의 귀환을 위해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민초들이 몸값을 지불하며 개별적으로 데려 왔다.

 북문에 전투기록이 있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명이북문을 열고나가 공격하였으나 계략에 빠저 전멸 당한다.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행궁이 복원되어 임금님을모실수 있도록 오밀조밀하게 지어저 있고 종묘까지 있다.

 

 반가운 소식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록 신청 절차가 힘들어진 가운데 도 남한산성이 접수되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역사관 앞 연못 쉼터에서 모여 음식점 차로 이동, 동문 밖 계곡에서 푸짐한 오리백숙을 함께한 즐거운 시간 자연 속에서 축복이다. 식사 장소 인근의 거시기 공원, 정식 명칭은 탑 공원이다. 중간 중간에는 석상들이 많다 돌 하루방, 동물상과 젖을 먹이는 풍만한 어머니상등 조각품이 즐비하다. 조그만 족구장이 나오고 그 옆에 거칠게 다듬어 세워놓은 키 큰 비석이 늘

어서 있다. 십 여개는 족히 되고 그 돌들 측면을 유심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젊은 여자들도 있다.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본능인 남여 합환合歡 모습을 숨김없이 표현하는데, 아주 화려하고 크게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도 그 모습을 공개된 장소에 만들어 놓다니 유교 문화권에도 작지만 변화가 오는 모양이다. 정성들여 쌓아 놓은 돌탑들이 줄을 서있고 과거에 생활필수품인 맷돌이 길을 보강하는 바닥돌로 쓰이고 있다.  짧은 시간에 단편적인 것들만 보았다. 동남측 성벽을 쌓는 책임자 이회장군은 공사가 늦어지고 공사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하였다 하여 참수형을 당한다.

 

 난공사 구간을 튼튼하게 쌓은 이회 장군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자 그를 추모하는 사당 량당 淸凉堂이 세워젔다. 시간을 가지고 여유있는 답사를 다시 해보아야 하겠다.

이회 장군을 죽음으로 몰아간 남동쪽 성벽, 성 쌓기 공사에 전국에서 동원된 승군이 기거한 사찰들,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때 순교한 천주교성지, 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성벽 축조 과정, 배수처리는 어떻게 했는지도 긍금하다. 물을 잘못처리하면 물의 힘은 성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옹성과 암문도 제대로 보고 싶고 하루는 족히 걸려야 하겠다.

 치욕의 역사 기록 삼전도비가 한강에 파 뭍히기도하고 다시 세워지고 좇겨나가도 하면서

  현재는 롯데 호텔 맞은편  석촌호수 언덕에 보존 되어 있다.

 

 얕은 지식이지만 인조와 광해군에 대한 공과를 생각해 보았고, 국제 정세도모르고 능력 없는 정권이 명분만 앞세우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친명 사대주의자들로 나라는 결단이 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지, 통치자의 안목과 결단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현재도 같으리라. 6.25전쟁 휴전 60여년호국보훈의 달 유월이 다 가고 있다.

 

참고문헌 :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남한산성 문화사업단 홈페이지

 

 

 

 

 

 

 

 

인조가 항복허러 나가된 서문 걸어서 갔을까,  업혀 갔을까?

 서문으로 나와 항복하러 나가던길 경사가 급하다.

 

 

 

 

 

 

 오리백숙으로 기운좀 잡고...

 맷돌이 살림 밑천이었는데...

 

 

 

 

 

 

 

 

삼전도비 롯데 호텔 맞은편 언덕에 있다.

 비문은 지워저 읽기가 어렵다.

삼전도비 :  폐기냐 보존이냐 우여곡절을 겪고 역사현장의 현장에 가장 가까운곳에  자리잡음.

 삼배 구고두예 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