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등은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殿下)는 천지(天地)의 부모(父母)와 같으니 하고자 하는 바의 말이 있으면 감히 진달(陳達)하지 못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신(臣)
김구(金鉤)는 자질(資質)이 순박(純朴)하고 학술(學術)이 정명(精明)하여 누조(累朝)를 역사(歷事)하며 항상 대학(大學)에 임용되어서 자제(子弟)를 교회(敎誨)하는데 하고 게으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 조정의 문사(文士)가 모두 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사문(斯文)에 공(功)이 있음이 매우 큰 까닭으로 우리 전하께서 은례(恩禮)로 특별히 우대하시여 에 발탁(拔擢)하였으나, 근래에 쇠모(衰耗)함으로 연유하여 모람되게 나라의 법을 범하였는데도 특별히 너그러운 은전(恩典)을 입어 단지 고신(告身)만을 거두었는데, 불행하게도 이달 초1일에 병으로 죽었으니, 비록 신(臣)
김구의 마음에야 죽어도 한(恨)이 되는 것은 없겠으나, 그러나 집이 가난하고 아들이 없으며 유상(遺孀)만이 홀로 있으니 상(喪)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신 등은 모두 일찍이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김구의 죽음이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고 스스로 슬퍼함이 깊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신
김구의 죄는 비록 마땅히 징계해야 하나, 누조(累朝)에 온나라 사람의 스승이 되어 그 공이 작지 않으니, 공(功)으로써 허물을 가리어 줌은 제왕(帝王)의 대도(大度)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공을 생각하시고 허물을 버리시어 특별히 큰 은혜를 내리시어 그 작질(爵秩)을 회복하시면 지극한 소원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
김구는 이미 죄(罪)를 지었으니 복직(復職)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치부(致賻)함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좌의정 신숙주(申叔舟)가 마침 예궐(詣闕)하니 전교하기를,
“
김구가 비록 죄는 있다고 하지만 국가(國家)에 관계된 것이 아니고 또 자기의 일로 들인 것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고신(告身)을 돌려주려고 하였는데, 다만 당자가 죽은 뒤이니 비록 준다고 하더라도 무슨 이익됨이 되겠는가?”
“
김구는 이미 죽었다고 하지만 생활의 계책이 하니, 고신(告身)을 돌려주어 즉 예장(禮葬)과 치부(致賻)를 얻는다면 성상의 은혜를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하였다. 이극소 등에게 전교하기를,
“
김구의 죄는 중하나 오로지 어리석고 미혹(迷惑)함으로 말미암은 소치(所致)이므로, 내가 일찍이 고신을 돌려주려고 하였는데, 이제 마침 죽었으니 너희들의 말이 마땅하다.”
하고, 드디어 명하여 이조(吏曹)·병조(兵曹)는
김구의 고신을 돌려주고, 예조(禮曹)는 치부(致賻)하고 관(官)에서 장사(葬事)를 갖추게 하였다.
김구는 성품이 진실 순후하고 소시(少時)에는 배우는 데에 힘써서 오묘(奧妙)한 뜻을 힘써 궁구하여 항상 읽고 설명하며, 만일 입으로 낼 수 없는 것과 어려운 것을 묻는 것이 있으면 문장을 나누고 어구(語句)를 해석하는데 능하여 듣는 자가 하니, 당시에 문학(文學)으로서 진출한 자는 그의 문하(門下)에서 많이 나왔다. 어버이를 섬기는데 효(孝)로써 하였으니, 어렸을 때에는 집이 빈한하여 몸소 를 하여 봉양하였고 만년(晩年)에는 항상 가묘(家廟)에 절하였다. 대대로
아산(牙山)에 살았는데 조정의 의논이 본현(本縣)을 혁파(革罷)하려고 하므로,
김구가 경영(經營)할 것을 힘써 다투다가 마침내 좌죄(坐罪)되어 체직(遞職)하였다가 이에 이르러서 고신을 돌려주고 시호(諡號)를 내려
문장(文長)이라 하였으니, 학문이 넓고 견문(見聞)이 많음을 문(文)이라 하고, 교회(敎誨)하기를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장(長)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