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회(沈澮)를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권반(權攀)을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화산군(花山君)으로,
정식(鄭軾)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김구(金鉤)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어효첨(魚孝瞻)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심결(沈決)을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조효문(曹孝門)을 대사헌(大司憲)으로,
유수(柳洙)를
문성군(文城君) 겸 전라도 도절제사(全羅道都節制使)로,
황효원(黃孝源)을
상산군(商山君) 겸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로,
이극배(李克培)를
광릉군(廣陵君) 겸 경상도 도관찰사(慶尙道都觀察使)로,
김종순(金從舜)을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이극감(李克堪)을 우승지(右承旨)로,
이교연(李皎然)을 좌부승지(左副承旨)로,
성임(成任)을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윤사흔(尹士昕)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어득해(魚得海)를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겸 경상 좌도 처치사(慶尙左道處置使)로,
김득례(金得禮)를 사간원 좌사간대부(司諫院左司諫大夫)로,
이효장(李孝張)을 우사간 대부(右司諫大夫)로,
신말주(申末舟)를 우헌납(右獻納)으로,
송문림(宋文琳)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