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正殿)에 나아가 문무과의 방(榜)을 내걸었다. 문과는 중시(重試)가 5인이고, 친시(親試)가 9인이었다. 무과도 또한 이 수(數)에 의하였다. 중시 문과 제1등 이조 정랑(吏曹正郞)
김자(金赭)를 직예문관(直藝文館)으로 삼고, 제2등 예문 검열(藝文檢閱)
김빈(金鑌)을 인녕부 승(仁寧府丞)으로 삼고, 제3등 성균 학유(成均學諭)
정광원(鄭廣元)을 경승부 승(敬承府丞)으로 삼고, 제4등 종부 판관(宗簿判官)
김타(金沱)를 이조 정랑(吏曹正郞)으로 삼고, 제5등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안지(安止)를 사헌 감찰(司憲監察)로 삼았다. 친시 제1등
정지담(鄭之澹)을 우정언(右正言)으로 삼고, 제2등
김자돈(金自敦)을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로 삼고, 제3등
김구(金鉤)를 사온 직장(司醞直長)으로 삼았다. 무과 중시 제1등 부사직(副司直)
주맹인(周孟仁)을 호군(護軍)으로 삼고, 제2등 사복 소윤(司僕少尹)
이징석(李澄石)·제3등 호군(護軍)
오익생(吳益生)을 모두 대호군(大護軍)으로 삼고, 친시 제1등 부사직(副司直)
이징옥(李澄玉)을 사복 소윤(司僕少尹)으로 삼고, 제2등 학생(學生)
허수강(許壽康)을 부사정(副司正)으로 삼고, 제3등 부사정(副司正)
배양덕(裵陽德)을 사정(司正)으로 삼았다. 또
윤인부(尹仁富)를 호군(護軍)으로 삼았으니, 수박(手搏)을 잘하므로 상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