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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 댁

碧空 2012. 7. 14. 23:16

경주 최부자댁  

경주 최 부자의 어리석은 듯 드러나지 않는 버금감- 둔차(鈍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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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불3대(富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듯이 부와 권력은 고금을 통해서 오래도록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운 법이다.아주 가끔 내가 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목표에 미달 되었을 때, 또는 남과 비교하여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내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詩)를 떠 올린다. 글귀 하나하나 상세히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 좋으면 되었지 정자(亭子)까지 좋을 수야 있나?" 하며 위안을 삼는 글이다.
          독소(獨笑, 홀로 웃다 ) --- 정약용(丁若鏞) 有粟無人食 --- 유율무인식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창愚 --- 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 창(春-日+臼+心) 才者無所施 --- 재자무소시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家室少完福 --- 가실소완복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릉지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 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月滿頻値雲 ---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 물물진여차 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 독소무인지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경주 최 부자란 제목에 왠 사설이냐 하겠지만, 이 집안 역시 가실소완복(家室少完福 )이란 말처럼 완전한 복을 갖추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후손이 없어 양자를 들이기도 하였고 과거에 낙방하는 대 (代)도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안이 오랜기간 부와 명예를 지키며 남들로 부터 칭송을 받 아온 연유는 무엇일까? 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하는가?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특권계층의 사회적 책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집안이 경주 최 부자다. 경주 최 부자 집안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인상적인 그 집안의 가훈(家訓)이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 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이 그것이다 '육훈(六訓)'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마라, 과객(過客)은 후히 대접하라, 며느리들은 사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자처초연:自處超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대인애연: 對人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유사감연:有事敢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다. 일반적으로 " 경주 최 부잣집" 하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대로 경주 교동에 소재해 있는 "교촌댁"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 부잣집의 집안 내력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면,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위치한 "충의당 (忠義堂)"을 먼저 찾아가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경주 최 부자는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 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마지막 최 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장군이다. 경주 최씨 사성공파의 한 갈래인 가암파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왜적과 싸우고 나중에 무과에 급제한 뒤 정유재란 때 다시 참전했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전선에서 적 군과 싸우다가 순국하니 그의 나이 예순아홉이었다. 평소의 생활도 청렴하였던 최진립은 이렇듯 일생을 장렬하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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