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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토 대학생, 앞치마 대학생

碧空 2011. 6. 10. 11:49

오후 8시45분쯤, 갑자기 후드득 비가 듣기 시작했다. 집회장이 잠시 어수선해졌다.

 

100 명이 좀 넘을까. 주변에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었다.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

 

2MB 대국민 사과 촉구 국민촛불행동’ ‘6월10일 책을 덮고 거리로 모이자’.

 

시위대를 에워싼 경찰 쪽에서 경고방송이 되풀이해 흘러나왔다.

 

“한국대학생연합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미신고 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참석자 여러분. 불법행위를 멈추고 해산해 주십시오.”

그제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촉구 집회를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나도 두 아들이 대학생이다. 오늘 저녁 집회에는 민주당도 참여해 풀무질을 한단다.

 

어떻게 하든 젓가락을 얹어보려는 정치권의 모습이 꼴사납긴 하지만, 등록금 문제가 온 국민의 절박한 관심사인 것만은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과장과 거짓에 기반했던 광우병 사태와는 성격이 다르다. 나는 이번 등록금 인하 시위를 일종의 관제시위(?)로 본다.

 

대통령 선거공약이었고,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제대로 조율도 안 한 채 불을 확 질러버렸다.

 

민주당은 대표가 하루 사이에 말을 뒤집는 등 허둥대며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청와대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는 그저 국회 타령이다.

 

질러대는 목소리만 높은 가운데 딱부러진 반대도 없으니 누구도 학생들의 ‘미신고 집회’를

 

나무랄 처지가 못 된다.

 

그러니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정부가 ‘관제시위’를 합작했대도 할 말 없지 않겠는가.

“그럼 너는 뭐냐”는 소리를 들어 쌀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생이 너무 많다.

 

사회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애면글면 대학문에 들어선 대학생들 책임도 아니다.

 

순전히 기성세대 책임이다. 꼭 50년 전인 1961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6%였다. 고교 진학률은 21%였다.

 

작가 김승옥이 ‘내가 훔친 여름’에서 묘사했듯 가짜 대학생들이 맹활약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이 되자 대학 진학률 29%, 고교 진학률은 80%로 늘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24년 전의 고교진학률과 똑같은 수준이다.

 

대학은 명색이 ‘고등교육기관’이다. 지난 24년 사이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갑자기 두뇌가

 

신내림 받아 고등교육에 걸맞은 인재가 폭발적으로 많아졌을 리 없다.

 

결국 질 아닌 양만 늘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대학은 더 이상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

 

‘대중교육기관’으로 불려야 맞다.


약 100년 전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번안소설 『장한몽(長恨夢)』의 표지 그림을 기억하는가.

 

망토를 걸치고 등장하는 남자주인공 이수일은 오늘날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고등보통학교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고보 재학생도 망토를 휘날리고 다닐 정도로 희귀했다. 전문학교나 대학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오늘날엔 엘리트의 상징이던 망토는커녕 식당·편의점에서 시급 4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앞치마를 노상 두르고 있는 모습이 더 어울리게 돼버렸다.

 

시급 4500원으로 하루 8시간, 한 달에 20일씩 6개월간 일해 몽땅 모아도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이 될까말까다.

 

그렇다고 졸업하면 일자리가 생기나? 요즘 대학생은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아니라 고진비래(苦盡悲來) 신세다.

 이참에 긴 안목으로 ‘대학 인구 구조조정’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핵심은 문화·경제 두 방향이다.

 

일제 강점기 대학생의 ‘망토’에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에게 내리던 어사화(御賜花)의 기억,

 

즉 뿌리 깊은 학력 숭상 전통이 배어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굳이 대학 안 나와도 떳떳이 살게끔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고졸·대졸 임금 차를 반강제적으로라도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법리상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통령이 학력 차별 풍토를

 

헌법의 ‘내우·외환’으로 규정해 긴급조치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